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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비 Jun 10. 2020

나래씨, 미안!

<나 혼자 산다>  를 보면서 느낀 생각들

나는 '나혼자 산다‘ 애청자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서 올해의 프로그램이 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해왔다. 노홍철이 무지개회원 초대 회장이었고 김용건 배우가 1인가구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육중완, 강남, 김광규 등의 회원들이 서투른 1인 가구의 삶을 보일 때부터 함께 해왔다. 어떤 회원은 혼자서도 깔끔하고 럭셔리하게 사는 반면 어떤 회원은 초라한 단칸방에서 서투르게 살기도 했다. 그러나 무지개회원들은 삶의 구색과는 상관없이 행복한 삶을 보여줬다. 자신이 가장 행복할만한 것이 무엇인지 늘 찾고 그것을 실천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나혼자산다는 그런 과정을 보여주며 애청자인 나에게 힐링을 선사했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그램을 향한 프로불편러들의 논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각각의 삶의 모습을 통해 내 삶에 새로운 환기를 일으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묘미인데, 출연자들의 태도논란이나 스캔들 따위에 더 큰 집중을 하는 게 불필요하고도 피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는 한다. 이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일거다. 무지개회원들, VCR을 시청하는 출연자들의 티키타카 또한 이 예능 프로그램을 이루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지난주 논란이 되었던 기안84왕따설 논란은 정말이지 피곤한 논란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논란 측에도 못 끼는 것들을 논란으로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논란은 오히려 논란을 제기한 사람들을 의심하게끔 만든다. 지금 사는 삶에 만족을 못해 어딘가 화풀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연예인들을 향한 열등감 같은 것이 불편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토록 사소한 것에 논란을 제기할리가 없다.


하지만 나혼자산다는 논란도 재치 있게 해명했다. 그리고 논란의 시발점이었던 ‘혼밤’을 특별기획으로 삼는 센스를 발휘했다. 올해의 프로그램다운 센스였다. 혼밤 특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박나래 회원이었다. 그녀는 방송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지우지 못한 채 퇴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야 분장을 지워내는 그녀의 모습은 고통 그 자체였다. 머리, 겨드랑이, 다리를 둘러싼 분장을 알코올 약품으로 문지르고 떼어내기를 반복했다. 따갑고 쓰라린 것이 덩달아 느껴졌다. 그 장면을 보는 무지개 회원들도, 나도 모두 안쓰러움을 표했다. 남들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인의 뒷 사정이 이렇게나 고단했다.


박나래 회원은 1시간이나 넘게 분장 정리와 샤워를 겨우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한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 앉아 겨우 한숨을 돌렸다. 밤 12시가 한참 넘은 시각, 반짝이는 한강대교를 배경으로 드라마 ‘미생’의 유명한 OST가 흘러나온다. 미생의 OST를 들으며 TV를 향했던 나의 시선이 다시 나의 삶으로 향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나 싶었다. 나래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한강이 훤히 보이는 집에 살잖아요. 퇴근 후 전철에서 한 시간 동안 서서 오진 않잖아요. 그녀는 내일 아침 9시까지 나가야 하는 스케쥴이 있다고 했다. 직장인들은 매일 그보다 이른 시간에 나가는 걸요. 그렇게 싫어하던 불편소리가 내게서도 나오고 말았다.


시청자들이 박나래 회원을 보고 느꼈을 안쓰러움 조차 시기가 났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그 자리에 올랐을지 안다. 그러나 삶의 역경이란 타인의 것보다 나의 것이 항상 컸다. 그래서 균형을 잃고 말았다. 그녀의 고단함 앞에서 나의 고단함을 떠올려봤다. 나의 고단한 삶은 버티고 이겨내도 괜찮은 집에서 살기가 어렵다. 누가 운전 해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내 차 한대 가지기도 힘들다. ‘힘든걸로 따지면 나 같은 사람들이 더 힘들텐데...’ 웃자고 보는 방송을 보며 삼켜도 될 말을 기어코 뱉어냈다.


프로 불편러들이 싫으면서 내가 굳이 이 감정을 꺼내는 것은 여전히 나는 나혼자 산다의 애청자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저마다 행복의 기준을 찾고 그것을 실행하는 한 가구마다의 삶은 나에게 힘이 되고 힐링이 된다. 그런데 나는 그릇이 작아서인지 친한 친구는 일이 잘 풀리는데 나는 안풀릴 때 친구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열등감을 나혼자산다에게도 느끼고 말았다. 감추면 그만일 감정이었다. 그러나 감추지 않음은 내가 솔직해져야 이 프로그램을 더 오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래씨, 미안. 이번 에피소드에선 힐링하지 못했어. 나는 아직 나의 역경만 너무 커서 그래. 우리 그냥 조금 더 성공한 사람이 그러지 못한 사람 좀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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