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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J K직장녀 May 21. 2023

보홀에서 생긴 일

나의 애도일지 4편 - Part 2

보홀로 떠났던 여행은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예상대로 시간을 쉬고 마시면서 흘려보냈다. 이 여행이 마지막 대목이 되어서야 생각지도 못한 국면으로 빠져들어 내게 의미를 부여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나도 다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아주 감정이 혹은 연애세포가 다 죽어 없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 가장 충격적인 것은 누구보다 사랑으로부터의 배신에 누구보다 사랑을 믿지 않도록 딱딱하게 마음이 굳어버렸지만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바라는 나를 발견한 것.


이 무렵엔 처음 별거를 시작할 때의 자신만만한 확신은 반쯤 날아간 채 ‘내가 남편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다시 믿고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결정적으로 설렘이란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와 같은 의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아마 따지고 보면 별거를 통보받은 남편 입장에서 당연히 상처와 갑작스러움이 있었을 테니 그의 굉장히 쌀쌀맞고 매몰찬 태도 - 마치 벌써부터 정을 떼고 정리하려는 듯해 보였다 - 기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5년을 부대끼고 산 가족이자 친구가 없어진다는 그 막연한 상실감이 많이도 두려웠던 것 같다. 가장 크게는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감정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과 신뢰가 사라졌다. 내게는 그냥 5년, 길게는 10년이면 사라지는 호르몬 작용에 불과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간절하게 구애하고 마침내 사랑해서 ‘아, 이 사람이라면 날 언제까지라도 사랑해 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결심했는데, 그의 사랑이 어느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니, 바로 그 점이 너무 억울하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오랜 시간 부정하고 ’내가 잘하면, 내가 조금만 더 참고 잘해주면, 남편의 사랑이 돌아오겠지.’라는 생각만 하며 버티고 현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그 시간 동안 참 많이도 외로웠다. 나는 이제 사랑을 믿지 않으니,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만나고 싶은지 아주 많이 생각해 본 것 같다. 그리고 늘 내가 그렇듯 내 남성관이 꽤나 뚜렷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계획 없는 여행에 유일한 일정이 있었는데 새벽같이 시작하는 스노클링 호핑 투어였다. 하지만 투어 전날, 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고 풀사이드바에서 푸에르토리코 친구들에게 얻어 마신 필리핀 가짜 양주로 예정 없이 만취하여 숙취로 인해 투어를 결코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약금도 날리고 울며 겨자 먹기로 오후에 출발하는 투어에 끼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지독했던 숙취에  감사라도 해야 할 만한 내 남성관에 꼭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A를 만나게 되었다. 이동하는 봉고차에서부터 배에 오를 때까지 그는 처음부터 ‘언제 돌아가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어깨에 타투는 진짜예요?‘ 등등 많은 질문을 했다. 나와 친구는 여행지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기에 관심 없이 무신경하게 대꾸했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그가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동안이라 너무 어려 보여서 나는 더욱 관심이 없었는데, 나는 맨 얼굴로 어디 나가면 이십 대 초중반으로 알만큼 동안이라 그도 내가 어리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두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스노클링 스폿 근처에서 통통배로 갈아탈 때가 되어 A가 상의를 벗었다. 발리를 꽤나 다니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서핑으로 윤기 나게 그을린 몸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다져진 늘씬하고 탄탄한 몸이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바로 허리는 한 줌인 것처럼 늘씬한데 어깨는 넓고 자연스럽게 생긴 뚜렷한 식스팩을 가진 A가 그때부터 달라 보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은 통통배에서 A와 마주 보고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이곳에서 저곳으로 호핑을 하는 동안 사소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가 나처럼 발리를 좋아하고 역시나 긴 시간 서핑을 다녀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오른손에 낀 파도 모양의 반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호핑을 할 때 나는 수영을 할 수 있지만 겁이 많아서(운전도 장롱면허이다.) 유아용 팔튜브를 끼고 스노클을 하는데 그는 일행 중 혼자 멋들어지게 전문가용 수경을 끼고 프리다이빙을 하며 자유롭게 물고기와 호흡하였다. 이것을 보고 올해는 꼭 프리다이빙을 배워야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의 모습을 바닷속에 머리를 넣고 스노클 마스크 너머로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작은 통통배에 오르고 내릴 때마다 A는 내 손을 잡아주고 자신의 허벅지를 밟고 내가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 사람이 내게 관심이 있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 관심이 싫지 않았고 괜한 긴장감과 살짝의 설렘은 분명했다. 배에 무게가 실려 흔들려 넘어질 뻔할 때마다 그의 어깨와 팔에 의지하여 기대기도 하며 은근한 스킨십이 이루어졌다. A는 배에 올라 낑낑대며 빼는 내 팔튜브를 빼주며 내게도 프리다이빙과 수영을 배우라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관심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은 포토 스폿으로 유명한 버진 아일랜드에 도착해서였다. A가 갑자기 자신의 휴대폰으로 내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여 나는 내키지 않는 듯 멋쩍게 포즈를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을 보내주려고 하니 배에 올라 SNS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나는 없다고 하면 될 것을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인 탓에 당황하여 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직 천 개도 넘게 쌓인 내 결혼과 삶의 흔적을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고 지울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에 알려드릴게요.’하고 메신저 ID를 알려주었는데 그는 이걸 이상하게 여겨 왜 SNS를 못 알려주는지 우스갯소리로 ‘혹시 방문판매 하시냐고’까지 물어봤다. A가 호핑 투어 끝난 후 A의 일행과 내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여 그러기로 했다. 내가 나간 이유는 물론 그가 궁금해서였고, 바다 한 복판에서 느낀 이 설렘의 감정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낯설어 정체를 알고 싶어졌다. 나갈 때 까지도 아직 한 번도 낯선 사람에게 내 별거와 이혼 예정인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기에 툭툭이를 타면서까지 어떻게 할지 고민했고 역시나 ’아 될 대로 돼라 ‘하고 만났다.


관광지의 흔한 스페인 음식점에서 파에야에 레드와인을 마시며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A는 나보다 2살이 많았고, 나처럼 비슷하게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평소에는 열심히 일하는 현생을 살고 휴가를 내서 서핑을 하고 바다로 섬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함께하고 싶었으나 남편이 절대 해줄 수 없었던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내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아쉬탕가 요가를 하는 요기니이고 나는 발리에 요가를 하러 간다고 했더니 본인도 아쉬탕가 요가를 배웠고 아쉬탕가는 원래 남자들이 잘할 수 있는 요가라서 자기는 언젠가 배워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남성관 중에 한 가지 강하게 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나와 함께 요가를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요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다음 대목인데, 나는 파이어족을 목표로 열심히 서울에서 벌어 마흔 이후에 내려가 제주도에 요가명상 스튜디오를 차릴 거라고 했더니 본인도 파이어족이 꿈이고 요즘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정말 묘한 감정에 빠졌다. 나는 별거 중이지만, 아직 법적으로 싱글이 아니고 이혼까지 전 과정을 마치려면 한참 남았는데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분명히 설레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감당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마음조차도 절대로 외도를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하기에 이 감정은 내게는 날 것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이 사람이 내가 찾던 그런 사람인가’라는 김칫국까지 마시면서 그 감정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만큼은 이 보홀 여행의 마지막 밤이 마치 운명적인 것 마냥 느껴졌다.


A는 내게 왜 SNS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식사 중 다시 물어보았는데,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는 나답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A의 무심한 말이 위안이 되었다. ‘요즘 그런 사람 많은데요 뭘‘ 그 이후로 나는 이제 어떤 낯선 이를 만나도 아무렇지 않게 별거와 이혼 사실을 숨기지 않고 먼저 말하게 되었다. A는 그날 밤비행기로 돌아가야 해서 아쉬운 대로 우리는 칵테일 한잔을 더 마시고 그는 ‘아쉽네요, 다음에 한국에서 또 봐요.’하고 헤어졌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이후에도 그는 연락을 해왔는데 정말 가볍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여행지에서의 가벼운 인연과 단순한 관심이었는데 나는 내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 연락하면 A와 남편 모두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인천에 도착해서 그의 연락에 웃기지만 꽤나 긴 답장을 했다. 채 정리하지 못한 내 SNS를 그제야 보내주며 이걸 보고도 계속 내가 생각난다면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 상황이 모두 정리가 되면 한번 보자고 보냈고, 그때는 내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정리해야 할 감정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연락을 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리무진을 타고 가며 맞팔로우한 그의 계정의 여행 사진들은 그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섬과 바다로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때부터 SNS를 정리하기 시작했으니 모든 것은 계기가 있어야 시작하기 쉬운 것은 옳은 말이다.


돌아온 전날은 서울에 눈이 가장 많이 온 날이었다. 더운 여름에서 날아와 빙판길이 된 길을 혼자 캐리어를 끌고 가며 마치 여행의 끝자락에 일어난 일이 날씨의 온도차만큼이나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도 숙소를 구하지 못한 남편과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는 밤이었는데 말없이 돌아와 캐리어를 정리하고 그가 자고 있는 킹 사이즈 침대 빈 내 자리에 소리 없이 가지런히 누워 보홀에서의 순간순간을 곱씹고 되감기를 했다. 나는 무엇이든 연결 짓고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곤 하는데, 그래서일까 습관적으로 계속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나 이번에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마치 여행에 가져간 불안을 없애주기 위해 이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내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남편 없이 살 수 있을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자신감 없었던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었고 그 ’설렘‘의 순간을 잊어버리기 싫어 여행의 장면을 되감기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또 빠르게 판단하고 결론을 냈다. A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 사건 덕분에 내가 다시 사소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 연애세포가 아직 다 죽은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라고. 내게 매력적인 사람이 내게 관심을 보이고 다가왔다는 점도 오랜 시간 외로워서 많이 자신감이 없어진 내게 ‘아, 내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라는 여자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라이프스타일과 미래관, 외모와 조건까지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도 하는구나 싶어 다행스러웠다. 언제가 이렇게 여행을 떠나면 분명히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크게는, 이미 내가 먼저 내뱉은 이혼은 정말 이뤄내야 할 것 같아서, ‘반드시 남편이 아니어도 되겠구나, 남편을 내가 먼저 정말 놓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안심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 우리집은 언덕이라 빙판길에 캐리어를 끌기 힘들어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러 오면 안 되냐는 나의 물음에 남편은 그 답지 않게도 단호하고 냉정하게 ‘아니, 나 잘 거니까 너 혼자 알아서 와’라고 해서 ‘그래, 내 욕심이지’하고 쓸쓸하게 낑낑대며 집에 오니 그는 이미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홀로 이러한 마음속 결말을 내고나니 모로 누운 그의 등을 바라보며 그와는 다르게 묘하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날 밤은 여행의 여운에 취해 여독으로 곤히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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