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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Jan 02. 2020

일요일

그 달콤한 나태에 얼굴을 듬뿍 묻고 평온하게 잠들었다.

게으름을 피우며 일어나 보고 싶던 영화를 보러 나갔다. 둘 다 느릿하고 느긋해서 하마터면 상영시간에 늦을 뻔했다. 함께 있으면 좀처럼 시간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둘은 충만함에 사로잡혔다. 들뜬 문장 서둘러 입 밖을 빠져나갔고 부지런히 눈 맞춰 대화했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느리던 이들의 얼굴에 맑은 생기가 돌았다.


둘 중 한 명은 먹는 것에도 게으름은 예외라 점심을 먹고 나왔지만 치킨집으로 향했다. 치킨에 맥주가 빠질 수 없지, 새로 나온 맥주를 시켜 살점을 뜯었다. 테이블에 안주가 즐비했다. 영화와 생각이 넘실대며 옆 테이블 까지, 앞 건물까지 넘쳐흘렀다. 밖은 아주 한낮이었지만 모든 테이블에 치킨 앞에서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맥주잔이 놓여있었다. 그 순간이 근사하게 느껴져 기름 냄새가 가득한 공기를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둘은 영화를 볼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손을 놓지 않았다. 몸의 어딘가 한쪽은 반드시 닿아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일부를 자꾸 접착했다.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른 채로 종로에서 안국까지 걸었다. 혼자 걸을 때는 어쩐지 쓸쓸하다며 싫어하던 거리였다.

집에 돌아온 둘은 다시 게을러졌다. 서둘러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옆사람의 팔과 어깨와 가슴은 평생 게을러도 좋다는 유혹 같았다. 그 달콤한 나태에 얼굴을 듬뿍 묻고 평온하게 잠들었다.


처마에 물방울이 정신없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들리는 빗소리가 몽롱한 정신에 스몄다. 잠과 빗소리에 취해 감은 얼굴에 입을 맞췄다. 쏟아지는 빗내음과 간간이 내리치는 천둥과, 잠인지 생신지 모를 키스를 나누며 하나로 엉겨 붙었다. 그날 둘은 비가 그쳤다 다시 내리고 수많은 우산들이 지나가는 동안 서로의 몸을 끼워 맞춘 채 노곤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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