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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Dec 04. 2019

나를 이뤘던 어른

무서웠고 안쓰러운 그들

어릴 때 나를 이루는 어른들은 내 의지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덜 자라서 의존적인 나는 그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그저 어른이 말하잖아, 어른 말 들어야지 하면 그런가 보다, 했지.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부산의 한 섬 동네인데, 섬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게 발달했으며 아니라고 하기엔 지리학적으로 너무도 섬인 곳이다. 그곳에서 4학년 때 정철어학원에 다녔다. 원장은 섬 동네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늘 권위를 뽐내고 싶어 했기에 자주 교실로 들어와 학생들을 격려하거나 거창해 보이는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 모습은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단상에 선 사람의 눈 뒤집어진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하루는 그가 우리에게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줬다. 모두 오른쪽 상단에 크고 빨갛게 매겨진 점수를 받아 들었다. 그중 나는 단연코 하위권, 20점대의 낙인이 찍혔다. 원장은 시험 점수가 낮은 학생이 학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생각했기 때문에 아래에 '깔린' 아이들을 단상에 세우고 우리의 격 떨어짐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연설했다. 나는 그때부터 깝죽거리는 데에 소질이 다분했기에 원장이 한 마디 꺼낼 때마다 어휴 공부가 다는 아니니까요~ 대학은 뭐 한참 남았죠, 아 배고프다 하는 헛소리로 빠짐없이 대꾸했다. 그로서는 자신의 권위에 유사 공격하는 작은 피라미가 미더울 리 없었다.

- 조용히 해!

그가 소리쳤다.

- 네 그럴게요.

내가 대답했다.

- 말대꾸하지 마.

- 대답한 건데요?

- 대답도 하지 마!  입 뻥긋하지 말라고!

이상한 문장들이 오갔다. 그는 이미 안면이 시뻘게져서는 씩씩거리고 있었고 거친 숨소리 외에 주변의 모든 것이 조용했다. 몇 가닥 없는 머리를 살살 들어 올려보면 정수리까지 빨간색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분에 못 이긴 원장은 인신공격을 시작했다. '너 같은 애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같은 뻔 한 말들이 침과 함께 터져 나왔고 곧이어 '가난한 데 산다고 불쌍해서 오냐오냐 했더니' 하는 말까지 입 밖에 내었다.

그는 우리 아파트 맞은 편의 단독주택에 살았다. 18층에서 내려다보면 잘 꾸민 옥상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그와 아내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나는 댁이 좋은 데 산다고 싹싹하게 군 건 아니었는데.

원장은 나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을 기를 쓰고 찾았다. 열 살 배기의 표정 변화를 정신없는 눈에 담으며 복종하는 얼굴을 하기를, 한낮 어린애 따위라는 걸 인식하기를 뚫어져라 기다렸다. 대답할수록 원장이 흥분했으므로 말미에는 입을 꾹 닫고 그를 가만히 봤다. 눈을 깔라고 했다. 어린 자존심에 생채기가 나서 눈알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욕 비슷한 걸 읊조리며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어른 한 명이 나가자 교실에는 그 공기를 떠안은 어린이들만 남았다. 그중 특출 나게 삐져나온 어린 중생이 있다면, 비련의 주인공은 나였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자 문 앞에서 원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비상계단으로 데려가 아까는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났었다고, 이해하라고 했다. 어깨를 적당히 토닥이며 이제는 그럴 일 없을 거다, 했다.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는 말도 클리셰처럼 덧붙였다.

엄마에겐 말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냥 몇 번 더 다니다가 영어학원을 수도 없이 쨌고, 두어 번 크게 혼나고는 학원을 끊을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학원 밖에도 그런 어른들은 도처에 숨어있다는 걸.

대학 총장상을 무대에 올라 받고 싶지 않다던 내 귀를 잡아 찢은 담임, 보충수업에 안 왔다고 추운 겨울밖에 세 시간을 세워 둔 선생님, 화가 치미면 무언가를 부수거나 던지던 아빠.

이들은 나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권한을 가졌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여겼을까? 그게 사람의 문제였는지 시대의 문제였는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이제는 무시할 지 담을 지 선택할 수 있다. 분에 못 이겨 못된 말만 서둘러 골라 질러대는 사람이 무섭지 않다. 벌게진 얼굴, 부라리는 눈, 분노와 함께 튀는 침이나 바락 거리는 핏줄을 볼 때면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고 따듯한 차를 내줘야 할 것만 같다. 진정해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안쓰럽거나 착잡하다.

사람의 문제라고 하기엔 책임감 없고, 시대의 문제라고 하기엔 이토록 여전한 어른들이 아이들 곁에 가지 않기를 바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이들에게 닿지 않길. 즉흥적 분노나 폭력이 시대를 따라 계승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른에게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자라 세상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수 있을까. 아주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는 기어코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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