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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Dec 30. 2019

2019년을 함께 배웅하는 사람들

덕분에 올해도 잘 토닥여 보낸다

2019. 12. 08



12월이다. 당장 13월을 수소문해서 구해다 이어 붙이고 싶지만 2019년은 단호하다. 처음부터 모두에게 열두 달을 선물했었다.
딴 소리 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것 같은데, 시간은 야속하고 인간은 어리석다.
이제 시작이라고 어깨에 힘을 뺄 때도, 연인들 사이에 껴서 몽글몽글한 꽃잎을 맞을 때도, 내리쬐는 해가 푸른 세상을 녹일 때도 몰랐다. 이렇게 올해가 빨리 갈 줄은. 연말과 한파와 스물다섯의 마지막을 직면할 줄은.
매년 식상하게 꺼내는 말이지만 시간 참 빠르다. 아무리 식상해도 찾아오는 캐럴처럼 어쩔 수 없이 입에 달게 된다.
한 게 많든 없든 계절이 바뀌면 연말이 되면 하품처럼 내뱉는다. '시간 참 빠르다.'
그 시간을 타고 금세, 스물다섯 해가 갔다.

이제는 연초 계획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연말에 한숨을 푹푹 내쉬거나 내년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수년을 1년 장기 프로젝트로 -하기, -잘하기, -이루기로 시작했다가 지지부진 쉬쉬하며 접다 보니 이제는 한 해를 시작할 때 소원이나 빌고 만다.
기왕이면 1년보다는 훨씬 오래 걸릴 소원으로 빈다. 이번 해의 나도 부담 없길 바라면서.
나한테 부담 줄 게 얼마나 많은데 나까지 짐을 지우겠는가. 훌훌 거리면서.

그럼에도 13월을 이어 붙이자 질척이는 이유는 다만 아쉬움이다.
2019년이 순식간에 지나가서. 나의 젊음이, 계절의 묶음이, 자꾸 찾아오고 멀어지는 사람들이.
잘 마무리하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에는 도망칠 곳이 없다.
이대로 12월 25일이, 31일이 곧이어 2020년이 올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지난하고 와장창 대잔치였든 간에 먼지 쌓인 연초부터 하나씩 보듬어 잘 정리해 보내고자 한다.

이번 한 해는 유독 뜨겁고 차가웠다. 뜨거워보니 아주 추운 곳까지 갈 수도 있었다.
새로운 얼굴들을 깨나 마주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한 아름 들고 왔다. 말수가 적었던 사람들도 내 위에 많은 문장을 남겼다. 얼마나 지냈냐, 얼마나 듣고 말했냐 와 그 깊이는 별개였다. 타인의 삶을 이해해 보려 했고 안되면 존중했다.
전에는 누군가 찾아오면 힘껏 안으려 애를 썼었는데 막상 꽉 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답답해졌다. 우리의 굴곡이 꼭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각자가 꾸려온 삶을 바짝 끼워 맞추려 하면 어디든 이가 나갔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은 이를 너무 세게 안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부작용이 있었다. 거리를 둠으로써 함께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이가 나갈까 봐 늘 두려워했다.
그게 무서워 바짝 붙지 않았으니, 헐벗은 관계를 마주하지 못했다.

올해 초, 목표는 아니어도 아 당연히 이루겠지- 속 편하게 했던 말이 있다. '애인 생기겠지.'
그 애인이라는 게 겁 없어야 만들 수 있다는 걸 깜박했다. 진득한 우정은 쉬운데 연애는 왜 이렇게 안되는지
막상 깊숙하게 들어올 관계를 만들자니 헐벗기 무서워 뒷걸음질만 쳤다.
또 자유롭고 외롭게 연말과 연초를 맞이할 테니 이번엔 안일한 짐작은 꺼내지도 않겠다 다짐한다.
같은 짐작을 듣고 말한 이들이 있는데, 우리는 사이좋게 2019년에도 의리를 지켰다.
수빈이가 일본으로 떠날 때 우스갯소리로 거기서 좋은 사람 만나라 덕담 한 마디씩 던졌다. 그는 늘 그랬듯 곁에 좋은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들고 있다.
윤서는 달이 거듭할수록 완전체가 되어 연애 없이도 튼튼한 사람이 되었다. 윤서 곁에는 따듯한 가족과 너무도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있다.

이렇게 나름의 혼자를 쌓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열심히 참견했다.
주마다 각자 되고 싶은 모습을 공유하며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나란히 반복했다.
어떨 때는 넘어져놓고도 질펀하게 앉아 뻔뻔한 몇 주를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부대끼며 밋밋한 얼굴을 질리도록 마주할 때와는 다르게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에 소질 없는 나에게 쑥주 프로젝트는 소중한 이들과 꾸준히 연결할 수 있는 매개이자 넉살 좋은 변명이었다.
각자 잘해보려 서로를 부둥켜안는 동안 많은 것이 말랑하고 또 단단해졌다.
올해 잘한 일을 꼽아보라면 녹두가 된 일으로 서두를 열겠다.

여전히 이토록 혼자, 잘 뿌리내리는 법을 배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주말마다 깨닫는다.
운동하는 동안, 물구나무를 서고 책을 읽고 끼니를 신경 써 챙겨 먹는 동안 그들이 옆에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린다고 틈만 나면 스스로에게 소홀한 나를 묵묵히 다시 끌어다 앉혀주는 녹두들에게 감사와 애정을 고백한다.

2019년에 얻은 하나가 다양한 관계와 태도라면, 다른 하나는 그걸 버티게 해 준 너희겠다.

덕분에 올해도 잘 토닥여 보낸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nock-do&logNo=221731106236&navType=tl

친구들과 한 주 단위로 좋은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약속 프로젝트, 쑥주프로젝트의 30주를 기념해 적은 글입니다. 사실 녹두가 자라 숙주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데요, 저희는 30주째 여전히 밍기적거리며 나아가는데 쭉 뻗은 줄기를 가진 숙주가 되려면 한참 남은 것 같습니다. 내년에도 둥글고 덜 여문 녹두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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