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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Aug 23. 2020

산책 셀럽

자유롭고 비좁은 무대에 온 걸 환영해

- 왜 싫어? 정계 욕심까지 있게 생겨먹어 놓곤.

- 산책을 못 하잖아.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봤다. 없는 마이크도 만들어 잡고 맨 앞에서 사람들과 마주 보는 그가, 없는 끼도 얼기설기 엮어 웃기게라도 만들어내는 그가, 유명인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고작 산책을 못해서라니.


- 욕심이야 우주정거장에 고척돔 지었지만, 못해. 마음대로 산책할 수 없잖아. 넋 놓고 사회성 없는 표정으로 걸을 수 없잖아. 그걸 포기하고 사람 없는 그늘만 찾아 겨우 고개를 드는 꼴은 어휴, 갑갑해.

견딜 수야 있겠지. 하지만 견디는 삶은 많은 걸 무디게 만들어. 그런 걸 잃은 손에 뭘 쥐어도 좋을 것 같지 않아.

- 산책으로 뭘 얻을 수 있는데?

- 뭘 얻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얻지. 그 시간 동안 누리는 생각과 기분을.

알잖아. 나한테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고하지 않으면 고장 나는 느낌이야. 걷는 시간은 내게 생각의 돗자리야. 그 멍석을 포기할 순 없어.

- 아이고, 그러네. 너 유명인 되기는 글렀다. 그렇게 나서고 눈에 띄는 거 좋아하는데 어떡할래?

- 우리끼리 유명 인사시켜줘. 조금만 잘해도 기막힌 탁월함이라고 칭찬해 줘. 그런 무대에서도 나 충분히 신날게.

- 그래. 자유롭고 비좁은 무대에 모시게 돼서 영광이야.


손을 맞잡고 걸었다.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고, 우리는 무엇이든 함께 봤다. 그날은 나뭇잎 사이로 반짝거리는 석양이 꼭 잎 따라 춤추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해 지는 내내 했다. 석양을 따라 바람에 맞춰 춤을 췄다. 아무나 우리를 봤고, 금방 잊을 터였다.

해가 닳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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