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어 Mar 13. 2024

마지막 편지

2023, <무토와 미토>


 새 학기가 시작됐다. 오랜 겨울잠을 끝내고 일을 해야 할 때. 긴 휴식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열정도 체력도 받쳐주고 있다. 2개월 뒤면 학원을 시작한 지 만 2년을 넘기고 3년 차에 접어든다. 사업이 흥하고 망하고는 3년 안에 결정이 된다고 한다. 올 초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가득했지만 잘 넘겼다. (과연 이게 진짜로 잘 넘긴 건지는 지금이 아닌 후에 알게 되겠지만) 여전히 매일 매일 같은 고민을 하는 느낌이지만 작년 이맘때와 비교했을 때 약간의 대담함과 약간의 여유는 생겨난 듯하다. 여전히 착하기만 한 같이 사는 엄마와 호락호락하지 않은 직원 사이에서 엄마라는 이름은 인간을 어디까지 이기적이게 만드는지 하루하루 느끼는 일상이지만 분명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스무살이 되고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문제에 똑바로 직면하고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번 달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요가 지도자 과정의 개강이 밀렸다. 우선은 지금으로부터 2개월 뒤인 5월로 밀리기는 했으나 5월에 모집이 안 되면 그때는 취소가 확정된다. 그렇지만 이미 연기가 아니라 취소가 될거라고 반 이상은 포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대출금 이자는 한달에 만원 좀 넘게 나가지만 다행히 지도자 과정이 밀린 만큼의 요가 원비는 받지 않겠다고 하셔서 나에게는 이득이다. 이 소식을 접한 남자친구는 그래도 남는게 있냐면서 요가 원장쌤의 경제상황을 걱정했다.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로지 내 이익만 생각하고 좋아한 내가 이기적인걸까 생각이 들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런 일이 생기자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생각이 많아졌다. 결국 신은 비올라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도피하려던 나에게서 도망칠 구멍을 막아버린 걸까 싶은 그런 생각.. 그렇게 생각은 입시로 이어졌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6월 연주 프로그램이 너무 재밌다. 처음으로 해보는 6중주도, 베토벤 중기 작품도 모두 즐겁고 하루하루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산다. 막상 연주 때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스트레스도 덜 받고 몸도 덜 아프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갈등을 크게 빚어내지 않는 내 자신이 대견하다. 그렇지만 어찌됐든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릴 만큼의 학력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 이런 작은 일에 이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효능감을 느껴도 되는걸까 싶은 고민이 있다. 내가 진짜 이 분야의 전문가라면 이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해도 되는가 싶은 그런 고민 말이다. 입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는 여기에 적지 않겠다. 자꾸만 내가 허언증 환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너와 편지를 나누는 이 시기가 지나가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증명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도피를 아예 안 하고 있지는 않다. 문화재단 사업에는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았다. 간간히 지원 금액이 적고 정산과정이 복잡하지 않은, 그러나 그렇기에 경쟁률은 무척이나 센 현실 가능성 없는 사업들에 도전은 해보고 있지만 사실상 안 될걸 알고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하는 거라 도피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 또한 의미있다. 작년까지 너무도 많은 일정들에 치이고 지쳤어서 올해는 반드시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실질적 능력을 키우고 내실을 갖추는 시기를 만들고 싶어서이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로 성장한게 맞고 전문가라면 그까짓 재단 사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견뎌내는 게 맞는 걸텐데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무시당하는 게 싫다. 자존심과 고집, 이기심을 낮춰야 하는 것도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시는 싫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능력을 키워야한다. 가장 쉽고 기본적인 건 학력이다. 그리고 돈. 돈이 있어야 한다. 오늘도 말도 안되는 학부모와의 통화를 마치고 생각이 많았다. 하루종일 생각하며 내린 결론은 결국 내 잘못은 없고, 이해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했는데 뭔가 찜찜하다. 비난 받는 일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시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상대의 과실을 100으로 두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지만 아프지 않을정도로만 탓해야지. 그리고 전보다 나아졌음을 칭찬해야지. 내일 오전에는 여유있게 차 한잔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거다. 부정적인 감정들로 아프지 않게.


 지난 편지들을 쭉 훑어보니 너도 나도 1년 반만큼의 성장은 해냈음을 느껴. 퇴고하는 기간에도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 나와 감정을 터놓고 공유할 용기를 내주어 고마워. 나에게도 많은 용기를 주는 시간들이었어.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편안해지길 빌게. 성미가 빌려준 물건은 카메라 외에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최근에 다시 달라고 하더라고. 그전에도 준 게 아니라 빌려준거라는 얘기를 했었어.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3.03.20

작가의 이전글 5월의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