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hoon Lee Jul 16. 2018

미국에서 의료정보학자로 산다는 것

산골짜리 의료정보학 이야기 번외편 #2

산골짜기 의료정보학 블로그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미국에서 의료정보학 커리어를 어떻게 시작했고 이어가고 있는지 물어보시는지라 이번 번외편에서는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편에서 언급되는 사례들, 생각들은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인지라 많은 편향이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특히 필자는 미국에서 스몰타운에 해당하는 유타주 이외의 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고 뉴욕 등의 대도시의 삶은 많이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원체 큰 나라라서 한군데에서의 경험을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입니다. 그냥 필자의 블로그가 늘 그렇듯 이런 얘기도 있구나 하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의 사회생활은 물론 한국과 많이 다르며 사람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읍니다. 하지만 의료정보학 커리어로 말하자면 장점과 단점이 특히 도드라지기 쉬운데 그만큼 이 분야가 특수한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특수하다는 것이 뭐 이를테면 아주 특별한 기술 같은 것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입니다. 후술하겠지만 의료정보학은 직무범위가 너무 넓어서 특수합니다.


특수하다고 해도 이정도는 아니고요


일단 의료정보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Job description에 잘 정의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인만큼 직무 정의가 잘 되어 있으며 실제로 하는 일도 이 범위 안에 다 있습니다. 만약 이 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회사에서 시키거나 한다면 법적으로 회사에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거죠 필자의 정식 직함은 인터마운틴 헬스케어의 Medical informaticist이며 재미삼아 아래 Job description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모든 문항에 Under mentoring 또는 supervison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채용 당시에 Junior레벨로 뽑았기 때문입니다. Senior 레벨정도 되면 혼자서 뭔가 책임지고 팀을 이끌수 있으며 그 위에는 Director, 그 다음은 Chief Medical Informatics Officer의 레벨이 있습니다.


한줄로 요약하면 의료정보관련 일은 (시키면) 다 합니다


Mentoring이라고 하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 이유는 인터마운틴이 수련병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필자와 같이 순수 공학계열에 있다가 보건의료분야로 온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 중의 하나가 이 수련이라는 개념입니다. 인터마운틴은 University of Utah School of Medicine의 수련병원 (Teaching hospital)이고 그 말은 Med student, 인턴, 레지던트 받아서 가르칠 의무가 있으며 저희 병원의 Phycisian들이 유타대학교의 Faculty를 겸할수 있습니다. 정보학에서는 임상과목처럼 엄격하게 티칭의 의무가 있지는 않지만 문화적으로 그걸 이어받은지라 어느 정도 도제식 전수 문화가 있습니다. 어차피 의료정보학 박사학위까지 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 오면 말귀도 못 알아먹는 상태인지라 몇년 빡빡 굴려서 제구실 할 때까지 붙잡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대목에서 눈물좀 닦고 이런 관계를 이어보면 누구에서 누구로 지식이 전수되는 관계인 정보학 계보가 나오는데, 그게 필자의 블로그 첫번째 글에서 소개했던 Homer Warner로부터 나온 계보 그림입니다. 필자의 경우, 첫 PI가 Stan Huff이긴 했으나 새파란 주니어 Informaticist와 CMIO의 레벨차이가 너무 커서 실제적인 일은 Nathan Hulse로부터 대부분 배웠다고 봅니다. Nathan의 스승은 유타에 있다가 지금은 하버드로 옮긴 Roberto Rocha이고 Roberto의 스승은 Stan이기에 결국  Stan -> Roberto -> Nathan -> 필자 이렇게 수련이 이어져왔습니다.


저렇게 수련을 받는 이유는 그 긴 학위과정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일을 배워야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건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이며 전문직들도 의사든 변호사든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가치를 제공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어느 정도는 일이라는 걸 따로 또 배워야 합니다. 의료정보학도 마찬가지로 세부분야가 표준이든 CDSS이든 Analytics든 간에 조직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어느 프로젝트에 들어가서 몇년간 일하며 배우다 보면 자기 분야라는 것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Medical informaticist라도 하는 일이 전혀 다른 경우도 많고 심지어 몇년을 같이 지냈는데 프로젝트는 한번도 엮이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또 MD냐 Physician이냐 PhD냐 MD/PhD, PhD/MBA, PhD/MPH, PharmD, PharmD/PhD, RN/PhD... 고만해 에 따라 하는 일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Medical informaticist의 배경과 분야가 얼마나 다양한지는 아래 홈페이지 소개자료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https://intermountainhealthcare.org/about/transforming-healthcare/innovation/medical-informatics/our-team/our-informaticists/


그러면 대략 서두는 여기까지하고 구체적으로 많이 받았던 질문 위주로 설명해봅니다.


1. 미국에서 의료정보학 커리어를 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일단 기본적으로 MD/PHD 둘중의 하나 정도 Doctorate degree 또는 그 이상의 학위가 있어야합니다. 필자는 인터마운틴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받은 Industrial engineering PhD 배경의 Medical informaticist인데, 이 분야 10년 넘게 있으며 필자와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보기 힘들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필자가 채용될 당시 원체 특이하게 운때와 그 밖의 요인들이 싹다 맞아떨어졌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건 일반화가 안되는 케이스고 필자가 시간을 돌려서 커리어를 다시 해야한다면 비트코인부터 사야죠 백프로 TOFEL과 GRE 점수 열심히 올려서 의료정보학 MS나 PhD 하러 올 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한국에서 최종학위가 있다면 해외포닥을 오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만만찮은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미국내에서도 매년 박사가 쏟아져나오고 좋은 랩이나 병원, NLM Fellow 등에서 베네핏 받으면서 포닥하려고 지들끼리도 피터지게 경쟁하는 판에 거기서 외국인이 경쟁을 뚫으려면 어지간하지 않으면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만약 포닥이 여의치 않고 최종학위 후 아직 공부를 더 할 기운이 남아있다면 미국에서 Advanced degree를 받는 것도 권장합니다. 못해못해 더이상은 난못해 예를 들어 MD나 PhD에 MPH나 MBA, 리서치에 관심이 있으면 Mstat 등 2년정도 공부 더하면 길이 많이 넓어집니다. 공부가 징글징글하겠지만 이 분야는 학위 두세개 있는 사람들이 씨글씨글하게 많고 더 하는 만큼 대우도 받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일단 미국땅에 발을 걸치고 영어가 익숙해지고 인맥좀 생기고 수련과정이 끝나면 잡을 알아보는 시기가 옵니다. 이 분야에서는 크게 네가지 정도 커리어 패스가 있습니다.


1. 학교

2. 정부

3. 인더스트리
4. 병원


1번 학교는 PhD를 받고 대개 몇년간의 포닥 생활을 한 후 교수가 되는 것입니다. 전미에 있는 Biomedical informatics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학부가 없는 대학원과정이며 리스트를 보려면 아래 AMIA 사이트에 가서 보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 Biomedical informatics 프로그램은 School of Medicine 산하에 있고 그 말은 그 학교에 의과대학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수업료가 다른 단과대에 비해 오지게 비싸며 반대로 말하면 Faculty가 되었을때 급여가 높은 편입니다. 물론 능력에 따라 Case by case입니다. 사립대라고 하더라도 거의 호봉제에 가까운 우리나라 대학에 비하면 미국의 교수는 급여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필자가 본 중에서 같은 학과의 Assistant professor중 가장 연봉이 낮은 경우와 높은 경우의 차이가 세배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https://www.amia.org/education/programs-and-courses


2. 정부: National Institute of Health나 Center for Disease Control, 각 주정부의 Health department, 재향군인병원 등으로 갑니다. 특히 미 재향군인병원은 의료정보학에 투자도 많이 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정부 일자리는 대우가 좋고 안정적입니다. 문제는 정부기관은 외국인에게 채용 기회가 없고 시민권자만 뽑습니다. 이게 시기적으로 애매한 것이, 보통 미국에서 공부를 끝마치는 시점에서는 학생비자로 와서 시민권은 고사하고 영주권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애초에 외국인들은 이 길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다른 곳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시민권까지 받고 난 후 옮기는 경우는 있습니다.


3. 인더스트리: 의료정보관련 솔루션 회사로는 Epic, Cerner, Allscripts, 3M HIS, GE Healthcare 등이 대표적이고 컨설팅 회사는 Leidos, Optum등이 있습니다. Microsoft, Google, Apple, Oracle 등 회사는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워낙 높고 명절때 친척들한테 자랑하기도 좋고 대우도 좋으나 헬스IT 관련 사업하는 족족 망한 이력들이 있어 이 분야에서 그닥 선호하지 않습니다. 제약회사, Johnson & Johnson 등의 회사들은 베네핏이 매우 좋으며 요새 Data science 관련분야 많이 뽑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일단 인더스트리는 평균적으로 4가지 커리어 중에 돈은 가장 많이 벌수 있습니다. 특히 컨설팅 업계는 일주일에 비행기 다섯번타고 저녁이 있는 삶과 주말을 회사에 갈아넣으면 미국살면서 헬조선 젊을때 빠짝 벌수 있다고 선호하는 독신들이 있습니다.


4. 병원: 필자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개별 병원이 정보학을 하는 곳은 없으며 대부분 Healthcare system, 간단히 설명하자면 병원+클리닉+보험회사 연합인 시스템에서 합니다. 인터마운틴 헬스케어, 카이저 퍼머넌트, 파트너스 헬스케어, 가이징거, 수터 헬스 등 모두 Healthcare system입니다. 병원에 따라 포지션 명이 Medical informaticist, Medical informatician, Clinical informaticist, Manager/Analyst of Medical informatics등등 다양합니다.


병원의 장점은 임상에서 실제로 정보학을 적용하기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부분 Informatics research도 병행합니다. 즉 모든 면에서 학교와 인더스트리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면 되며, 근무도 회사에 비해 자유로운 편입니다. 병원이라는 특성상 회사만큼 경기를 타지 않아 안정적인 편이며 비슷한 경력의 (동일한 학벌, 능력이라고 가정했을때) 대학의 Faculty에 비해 페이가 높은 편입니다. 병원의 단점은 정보학자로서 커리어 패스가 개발이 잘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큰 Healthcare system의 경우 CMIO까지 올라갈 여지 자체는 있으나 현실적인 한계가 있고, Informatics가 CV나 Oncology같은 부서내에 개별 포지션으로만 운영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답답해 하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연구실적을 쌓아 Clinical professor를 밟아 아예 학교의 Tenure track으로 가거나, 회사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새는 병원에서 사내 벤처를 만들어 내보내면 그걸로 사업하는 경우도 많은데 인터마운틴의 경우 대표적으로 정밀의료 스타트업인 Navican이 있습니다. 물론 Informatics director정도까지만 바라보고 워라밸을 추구하며 잘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유타에서는 답답하면 집근처 산에 바람 쐬러 갑니다


2. 근무환경은 어떤가요?


인터마운틴에서 경험한 것만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단 미국회사에서는 공과 사가 철저히 구분됩니다. 업무 시간외에 회식한다고 오라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고, 휴가는 규정에 정해진 일수만큼 아무때나 제 마음대로 쓰는 것이며, 상사가 사적인 일은 시키거나 인종차별, 성차별을 당하면 HR 핫라인에 전화하거나 변호사를 부릅니다. 물론 여기도 사람사는데인만큼 상사든 PI든 팀원이든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밥도 같이 먹고 집에 가족끼리 초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개인의 소셜활동이고 회사일과는 구분됩니다.


* 대부분 칼퇴근하며 아예 새벽에 일찍 나와 3시에 퇴근하기도 합니다. 올해 기준으로 필자의 부서는 주 5일 중 하루를 선택해서 재택근무할수 있습니다. 다만 제시간에 퇴근하기 위해서는 업무의 강도가 당연히 세며, Project manager들은 하루 8시간 근무에 한시간짜리 회의 8개 있는 것도 봤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뉴트리션 바가 박스로 있어서 점심은 왠만하면 회의실에서 그걸 먹는 PM들 많습니다. 


* 직무정의와 분담이 잘 되어 있어 잡무가 없습니다. 필자는 몇년 전에 R01이라는 그랜트를 쓴 적이 있는데, 말 그대로 딱 본문만 썼습니다. 나머지 예산계획, PI들 프로필, 실적, 시스템에 넣는 작업까지 비즈니스 매니저와 전문적인 Research staff들이 분업하여 작업하고, 그러니 연구자는 연구에 관련된 내용만 집중하면 됩니다. 아마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 가장 부러워할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 여기까지만 들으면 좋은 점만 있는 것 같지만 무서운 점은 미국회사는 철저히 성과 위주이며 직업 안정성이 (영어로 Job security) 매우 낮습니다. 평가가 매우 객관적이고 모든걸 기록으로 남기며 저성과자는 퇴출되고 자기가 잘해도 사업부가 성과가 나쁘면 통편집됩니다. 물론 사람 사는데인만큼 평소에 잘하면 사업부가 날라가도 데려가는 곳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찌보면 미국회사가 공과 사가 확실한 이유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평소에 성과 만들어놓고 혹시 모르니 항상 CV 갈아 놓고 있어야하는데 불필요한 사적 관계가 회사생활에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50 - 70 명이 아니고요 50 - 70%를 짜릅니다


필자가 유타에 막 왔을때 인터마운틴은 GE Healthcare와 조인트 벤처로 Caredigm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오피스 한 층을 쓰고 있었는데, 그 파트너십이 깨지면서 그 층에 있던 캐러다임 직원들이 통째로 Layoff당했습니다. 어느날 아침 와보니 한 층이 텅 비어있는걸 봤을때의 그 충격이란. 직업안정성은 심지어 공무원에게도 없으며 연방공무원도 필요하면 정리해고 당합니다. 인터마운틴은 상대적으로 안자르는 편인데, 작년과 올해 대규모 조직개편하면서 Revenue cycle management 직원 2300명을 통째로 아웃소싱으로 넘겨버렸습니다. 


오늘의 알아두면 좋은 영어표현: shed (one) for..


3. 어려운 점은 없나요?


물론 많습니다!! 일단 아무리 열심히 해도 Non-native English Speaker에게 영어는 평생 넘을수 없는 거대한 벽입니다. 특히 순수과학/공학 분야에 비해 의료정보학은 영어실력이 더 요구됩니다. 또한 Clinician들과 직접 소통해야 하는 Front-end쪽 일할 때는 일상 업무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두세배의 노력이 더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되는 것 같습니다. 영어뿐 아니라 애초에 학교에서 공부 끝마친 후 바로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경우란 없으며 항상 계속 배우고 경험을 쌓은 후 그걸 어떻게 써먹을 것인지 고민해야합니다. 병원, 특히 수련병원의 좋은 점은 뭔가 배울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인더스트리는 상대적으로 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당장 비즈니스가 안되면 문닫는게 회사이기에)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성과에 따른 보상이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도 다른 Degree사이에 Tension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MD는 PhD에 비해 대우받는다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꼭 PhD에게 유리천장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래의 역대 CMIO를 보면 1,2대는 PhD였습니다) 또한 미국은 PhD가 의과대학의 Clinical professor를 할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미국은 같은 MD라도 정보학 프로젝트를 서브로 하는 Practicing physician과 MD Informatics (정보학 전임)사이의 Tension이 있습니다. 또 주립대 출신과 동부의 사립명문대 출신 사이의 Tension도 있습니다. 하여간 사람마다 부서마다 또 시기에 따라 다 다르지만 어딜가든 Tension은 항상 있습니다. 그게 한국에서 겪던 것과는 종류가 좀 다르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영어가 안되서 캐치를 못해서 그렇지 사람 사는 곳은 대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인터마운틴의 역대 CMIO: 1대 Al Pryor, PhD; 2대 Paul Clayton, PhD; 3대 Stan Huff, MD


마지막으로 외로움은 기본 앱으로 깔려오며 삭제도 안됩니다. 가족이 있으면 본인의 외로움은 훨씬 덜해지나, 가족들의 외로움 문제 및 아이들의 정체성 문제가 함께 따라옵니다. 목표가 있어서 한참 달릴때는 오히려 못느끼다가 자리좀 잡고 살만해지면 뒤늦게 갑자기 외로움에 백태클을 당해서 멘탈이 무너져 짐싸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러다가 50대가 되면 이제 돌아갈수도 없고 밤마다 응답하라 1987보며 가시지 않는 향수병을 달랩니다. 너무 심했나


필자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고, 대학원 생활과 짧은 벤처 생활, 미국에 건너온 후 수련생, 병원의 정보학자 생활까지 하고 있으니 다양한 커리어 패스를 두루 겪은 편입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때 어딜가나 어려운 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어려움은 갖가지 종류의 어려움을 다 합산한 후 시간 t를 무한대로 놓고 적분하면 임의의 상수로 수렴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먼 소리여 다만 그때그때 어려움의 종류와 크기는 다르기에 어떤 경우는 상대적으로 극복하기 쉬웠고 다른 경우는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비해 학벌과 학위에 대한 차별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그건 주니어/시니어 레벨의 얘기고 위로 올라가면 또 다릅니다. 아무튼 쉬운 일은 하나도 없고, 예전에 오바마가 어느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이 기억나는데 사회에 나가면 누구도 앞에다 유리계단을 깔아주지 않습니다.


없어서 그냥 내가 깐다 유리계단


다행히도 인터마운틴에서의 의료정보학 커리어는 필자에게 잘 맞는 일이었는데, 이유는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의료정보학, 특히 병원에서의 의료정보학 연구는 하나의 이론을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학제간 융합을 통해 발전하는 응용학문의 성격이 강해 백그라운드와 경험의 스펙트럼이 상대적으로 넓은 필자에게 익숙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여기가 워낙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다보니 필자의 별난 이력과 배경도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고 무난히 조직에 어울릴 묻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미국에서의 의료정보학 커리어는 장점도 단점도 많기에 이것이 나에게 맞는 옷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부하고픈 것은 간혹 미국에서의 커리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환상을 갖고 있는 학생들도 계신 듯 한데, 비단 저뿐 아니라 다른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길 현실은 엄혹합니다. 농담조로 이민와서 고생할만큼 한국에서 고생했으면 진즉에 성공해서 굳이 이민 안와도 되었을거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새로운 기회를 찾아와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고생하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유타의 초창기 이민자들 사진 하나 올립니다. 다들 표정으로 모든걸 말해줍니다. 유타에서는 조상들의 이 고생을 기념하기 위해 7월 24일에 Pioneer day라는 기념일이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 어머님 무섭습니다 (출처: KUED)



매거진의 이전글 씹고뜯고맛보는 구글 EHR 딥러닝 논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