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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on Lee Feb 10. 2020

Epic과 골리앗의 싸움: 의료정보 주도권 전쟁 #1

산골짜기 의료정보학 이야기 번외편 #5

2020년 새해초 Healthcare IT 업계 최대의 이슈는 Epic의 CEO Judy Faulker가 보낸 자사의 클라이언트 의료기관들에게 보낸 짧은 이메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의료정보 업계와 연관된 의료기관, IT업계 테크 자이언트들, 미국 정부는 원하건 원치 않았건 두 편으로 갈라져 현재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현 디지털 헬스케어의 시대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 어디이며 앞으로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미국의 의료 IT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사실상의 컨트롤 타워 ONC (Office of National Coordinator of Health IT, 전미의료정보조정기구)에서는 작년부터 일명 Interoperability Rule이라는 정책(규제)안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 안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의료기관 (병원 / 의원)들의 시스템에 저장된 정보는 법적으로 환자의 소유이기에 의료기관은 환자가 자신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제한해서는 안되며 (Information blocking의 금지), 구체적으로 의료정보시스템에서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제공해야 한다는 등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항목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는데 일단 얼개는 의료정보시스템 안에 저장된 환자 데이터를 담아두지 말고 밖에다 풀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라 뭐 이런 방향입니다. 


이러한 "정보의 공개와 활용"이라는 추세에 그동안 초지일관되게 태클을 걸어온 Epic은 자사의 EMR을 도입한 클라이언트 의료기관들에게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보냅니다. 


이 이메일은 여러모로 쇼킹한데 일단 아무리 요새 많이 컸다고는 해도 일개 EMR 벤더가 미국의 메이저 헬스케어 시스템들에게 정부의 안에 같이 반기를 들자고 촉구하고 있으며, 영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정중하게 부탁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등 떠밀고 있습니다. 비트컴퓨터가 빅5병원에다가 이거 보냈다고 상상해보면 한국과는 좀 다르다고는 해도 어쨌든 미국도 의료기관과 벤더는 갑을관계이며 의료기기나 다른 시스템 벤더에 비해 EMR회사는 규모도 작은 편이라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끝에 보면 보건복지부 (HHS)에다가 보내는 연판장에 싸인하라고 압박하고 Very little time is left -> 내가 지금 좀 급하니까 꾸물대지 말라는 건 덤입니다...


이후 현재 시점으로 HHS에 보내는 서한에 약 60개의 병원들이 사인하였다고 합니다. (병원 리스트는 아래 기사 링크에 첨부) Epic의 손을 들어주고 싶긴한데 여기에 싸인하는 건 뭔가 모양빠진다고 생각하거나 껄끄러운 병원들은 자체적으로 따로 서한을 만들어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Partners Healthcare, Kaiser, Gyesinger, Mayo등의 대형 헬스시스템은 이 건에 개입하지 않고 관망하는 듯 합니다. 이들은 심지어 ONC나 Epic 어느쪽도 주도권을 잡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한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cnbc.com/2020/02/05/epic-about-60-hospitals-sign-letter-opposing-hhs-proposed-data-rules.html


이러한 Epic의 도발에 그동안 공들여 Interoperable rule을 준비해온 ONC와 헬스케어 공공부문 최대 Stakeholder인 CMS의 수장 Seema Verma, HHS의 의료정보담당관인 Alex Azar등의 인물들은 물론 발끈하였습니다. 특히 Seema는 공개석상에서 Epic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은채 "Bad actor"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로 인해 Epic이 공공부문과 완전히 결별하고 마이웨이를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The sort of consumer- oriented revolution that will make the health care system more affordable and accessible is undermined by those bad actors throughout the system that continue to guard the status quo because it’s in the interest of their short-term profits"


또한 Epic의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여 Apple, Microsoft, IBM등이 주축인 된 30여개의 테크 자이언트 연합은 (따로 Carin Alliance 라는 모임까지 만들었습니다) ONC의 Interoperability rule의 지지를 천명하는 공개서한을 HHS에 보냅니다. (전문 아래 링크)


https://www.pewtrusts.org/-/media/assets/2020/01/multistakeholder-letter-to-omb-hhs-on-apis-final-1302020.pdf


정리하자면 ONC의 이번 프로포잘과 Epic의 레터를 둘러싸고 의료정보계는 두 편으로 나뉘어 한동안 기싸움을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찬성하는 편에는 기라성같은 IT 테크 자이언트들, 의료정보학 분야 최대 학술연합인 AMIA (American Medical Informatics Association), AAFP (American Academy of Family Physicians)등이 있고, Epic은 자사의 고객사 병원들, 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과 CHIME (College of Healthcare Information Management Executives)등과 손을 잡고 반대하는 입장이며, 마켓 2위의 Cerner는 같은 EMR 벤더임에도 불구하고 최대 공공부문인 국방부와 보훈병원에 회사의 미래 사업을 건만큼 ONC에 찬성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아생전 손해보는 일은 절대 안하는 아마존은 일찌감치 이 골치아플 싸움에서 빠지고 먼 발치에서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그럼그렇지 결국 이 싸움의 진영은 Epic과 일부 클라이언트인 병원들 대 나머지 전부로 나뉘어 지금까지는 Epic이 골리앗에게 도전하는 다윗처럼 불리한 형국으로 보입니다.


그럼 Epic은 대체 왜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였으며 의료정보업계는 왜 이런 이슈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요? 업계에서는 이 전쟁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미래의 의료정보의 주도권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싸움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 상황에서 병의원의 의료정보를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는 EMR업체들과 이를 오픈하게 함으로써 자사의 시스템과 서비스에 연결 및 통합하려는 테크 자이언트들 사이의 갈등이 이 싸움이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Epic이 있으니 결국 이 싸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Epic라는 회사의 특성과 위상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Epic은 잘 알려졌다시피 현시점에서 EMR 시스템 마켓쉐어 1위이며 특히 Acute care에서의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합니다. (의외로 Outpatient segment의 강자는 Allscript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헬스케어 IT 마켓을 조사하여 보고서를 발행하는 KLAS Research에서 Epic은 9년 연속 부동의 1위를 차지하였으며 시스템 도입비용도 가장 비싸지만 그만큼 고객만족도도 높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Epic의 본사는 위스콘신주에 있는 Verona라는 도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너이자 CEO인 Judy Faulkner가 1979년 창업한 이래 현재까지 EMR 한우물만 파온 장인정신 충만한 회사입니다.


창업 초기 Epic시스템과 젊은 시절의 Judy Faulkner


다른 전설적인 IT회사들이 그렇듯 Epic도 초기에는 영세한 스타트업이었습니다. Faulker는 동부의 리버럴 아츠 대학(소규모 캠퍼스에 학부 위주로 구성된 일종의 교육중심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임상에서 쓰는 Clinical data management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프로그래머였는데, 원래는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력이 좋았는지 계속 개발 요청이 들어오자 회사를 결국 하나 차리기로 합니다. 어느날은 자기 집에서 고객과 회의를 하던 도중 회사명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자 고객이 책꽃이에서 영어사전를 꺼내 Epic (서사)라는 단어를 찍었는데 그 단어가 마음에 들어 회사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등 떠밀려 창업하고 작명도 고객이 해주고  처음에는 아파트 지하실에서 파트타임 직원 세명과 함께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 회사처럼 폼나게 차고에서 창업하지 않은 이유는 위스콘신이 더럽게 춥기때문에 차고에서 일하다간 얼어죽을 수도 있어서....


한겨울 위스콘신의 출근길 (..........)

Epic은 지금까지도 기업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Private held company이고 창업주 Faulkner의 성향이 회사 문화에 몇십년동안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Faulkner 본인은 수학 전공의 엔지니어 출신인지라 마케팅과 경영기법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Epic의 마케팅 예산은 전체의 1%에 불과하며 이는 EMR업체 평균 15%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도로 작습니다. Epic은 위스콘신 본사 이외에 미국내 어떤 주에도 Regional office가 없고 세일즈 조직도 없다고 합니다. Faulkner는 Epic이 급격히 성장해서 유명해진 이후에도 이 전략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그녀의 말을 빌리면 자신은 마케팅을 전혀 몰라서 그동안 안했을 뿐이며 모르면 안해도 되는 거였군 그 돈과 자원으로 고객에게 좋은 SW를 만들어주는데 힘쓰는게 더 낫다고 합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Faulkner의 이 생각은 EMR 업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시장규모가 어느정도 되지만 불과 10년전만해도 EMR 마켓은 너무 작아서 따로 집계하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로 2010년 이전까지 의료정보시스템은 각 병원이 각자 Inhouse로 개발하여 쓰는 것이 추세다 보니 벤더 솔루션, 다시말해 비즈니스 마켓이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둘째로 각 병원마다 워낙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다르다보니 EMR 프로젝트는 커스터마이징 요구사항이 매우, 매우, 매우 많고 Scale up이 안되어 결국 System integration 프로젝트가 되버리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병원 입장에서는 어느 벤더를 쓰던 EMR은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러니 괜히 없는 예산 빼서 영업에다 쓰는 것보다 지금 있는 고객사 서포트에 충실하며 하나씩 사이트를 늘려나가는 Epic의 전략은 오히려 유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쓰다보면 다 비슷하고 그냥 익숙한 시스템이 좋은거죠


창업이래 매년 꾸준히 늘어난 Epic의 클라이언트 (Ref: Vince Ciotti)


그렇게 조용하게 성장해오던 Epic은 2009년 미국 정부가 초대형 Health IT 보급 및 확산 프로젝트인 Meaningful Use를 시작하고 병원의 EMR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부시 행정부 말기에 법을 제정하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작된 Meaningful Use 프로젝트는 의료시스템의 정보화를 통한 의료비용 절감과 서비스 질 향상을 목표로 한화로 5조원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EMR시스템을 도입하고 활용하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지급하기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일부의 병원에서 필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쓰던 EMR 시스템은 이 프로젝트로 인해 몇년만에 거의 대부분의 병의원에 보급되며 Epic와 Cerner는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됩니다. (Faulkner는 오바마 정부를 후원하며 이 프로젝트를 푸시하는 뒷배경중 하나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미국 EMR 시스템 보급율 (Ref: ONC)


여기까지만 해도 Google, Apple, Microsoft 등의 테크 자이언트들은 이 업계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였습니다. 물론 이 회사들도 그때까지 나름대로 헬스케어에 관심을 보이며 이런저런 프로젝트들에 돈을 갖다버리긴 했지만 본 사업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뿐이었고, 이 때는 아직 헬스케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중요성이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게다가 화려한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보기에 Epic과 Cerner는 각각 유타보다 더 시골인 위스콘신주와 캔자스주에 위치하여 뭔가 IT의 변방인 듯한 인상을 주는데다가 실제로 워낙 마켓도 작고 특수하였기도 합니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자만심도 한몫했는데, 애플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10분의 1만 풀어도 Epic을 사버릴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구글이 맘먹고 그냥 EMR 만들어버린다는 말이 돌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만심은 또다른 테크 자이언트 IBM의 야심찬 프로젝트 왓슨 헬스가 Epic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찬물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IBM 왓슨은 텍사스의 유명한 앤더슨 암센터에서 그 성능을 검증하고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이 병원은 원래 Epic기반의 EMR과 Clincal decision support를 쓰고 있었습니다. IBM Oncology는 EMR이 아니고 Decision support system이기때문에 어딘가에서 입력데이터를 받아와야 하는데, 초창기에는 Epic과의 인터페이스가 없어 종양학자들은 100여개의 항목을 일일이 쳐서 넣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눈물좀 닦고 이 상황이 지속되자 안그래도 왓슨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시하던 의사들은 폭발해버렸고, IBM은 Epic과의 데이터 상호교환 협력 어쩌고 하는 언론플레이를 뿌리면서 어떻게든 Epic EMR로부터 데이터를 연결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Epic은 왓슨이 만들려는 인터페이스가 자사의 신규 시스템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말인지 방구인지 같은 논리를 갖다대며 차일피일 늑장을 피웠고 그러는 사이에 결국 왓슨은 앤더슨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하다하다 이젠 이런 소리까지 듣는 IBM 왓슨


이 사건을 지켜본 테크 자이언트들은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는 정말 디지털 헬스케어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면 병의원의 EMR, 다시 말해 의료정보를 장악하지 않고는 이 분야에 한발짝도 내딜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는 그렇게 우습게 봤던 유타보다 더 시골에 있는 회사들이 이제는 위협적인 경쟁자이자 대등한 적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부터 테크 자이언트들은 눈엣가시같은 EMR 회사들을 어떻게 하면 잡아먹을까 고민고민하기 시작합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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