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4월 초, 아침 6시. 첫차를 타고 내릴 역에 도착해 출구로 나갔을 때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점점 짧아지는 밤을 느끼고 있었지만, 역에서 회사 건물까지 걷는 시각 활짝 밝아진 하늘을 보는 기분은 색달랐다. 역시 겨울과는 다르군. 새벽 청소 일을 시작한 1월에 쓴 글만 봐도 밤사이 ‘온 거리에 충실히 가라앉은 어둠’에 경탄하며 출근길에 나섰는데 말이다.
근래 들어서는 이 ‘새벽 출근’에 좀 시들해져 있었다. 막 시작했을 때의 쭈뼛한 긴장은 온데간데없고, 밤이 되면 야행성 습관이 도져 ‘좀만 더 있다가, 좀만 더….’ 하며 취침을 미루는 날이 잦았다. 밤 되면 초롱초롱해지는 부엉이 적 버릇. 아침이면 그 대가로 ‘좀만 더 자고 싶다, 좀만 더….’ 하며 찌뿌듯한 몸을 일으켰다. 업무 시간이 짧더라도 체력을 바짝 몰아 쓰는 일인데, 잠이 부족한 날은 당연히 퇴근길에—활기찬 오전 시간에—이미 기진맥진해져서, 내 일을 하려면 꼭 재충전에 시간을 써야 했다. 이럼 곤란한데. 종달새 생활에 다시, 각성이 필요해졌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내가 일하는 건물까지는 약 600미터다. 대로변 보도를 걷다가 큼직하게 난 교차로에서 방향을 틀어 들어가도 되고, 아니면 출구 근처에 난 샛길로 가로질러 큰길에 진입해도 된다. 나는 당연히(!) 샛길을 택한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데도 그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그 골목에 반해서였다. 어느 저녁 동거인과 좁다란 그 골목 입구에서 만나, 길게 즐비한 단층 건물의 상점 중 밖으로 난 창이 예쁜 주점을 골라 감자전에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었는데. 비단 그날이 좋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퍽 오래전부터 그 동네 분위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한국 생활에 적응해 나가던 시기의 기억이 많은 곳. 그러니 지하철을 좀 타더라도 출퇴근길 그 근처를 걸으면 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 기대가 슬슬 빛이 바랜 건 일 시작 3개월 차에 접어든 때였다. 거의 모든 일에, 제아무리 처음이 벅찼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권태가 찾아오지 않나.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 혹은 ‘적응’이라는 말로 감쌀 때가 있을 뿐, 권태의 순간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부엉이에게 그렇게나 새로웠던 종달새의 삶도 고작 두 달이 지나자 ‘출근하기 싫다’는 익숙한 싫증으로 변모해 나간 걸 보면.
그러던 4월 초 어느 날 무거운 몸으로 똑같이 걷던 길에 어둠 대신 스며든 푸른색을 보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봄과 마주친 것이다.
그날 나는 익숙한 거리에 굳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푸른 봄을 담았다.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유독 잠을 잘 잤다든지 하는 엉뚱한 이유로 햇빛 받은 건물들이 예뻐 보인 건지도. 몇 분 안 되는 도보 시간 동안 별의별 희망을 다 품었다. ‘계절은 정말이지 거룩하구나.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있으니 이렇게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눈 뜨게 해 주다니. 나도 계절처럼 살 거야. 게으름 피우지 않고 멈추지 않고 주어진 할 일을 할 거야.’ 하는 식으로.
그러나. 5월이 되자 그 희망 역시 자연의 섭리대로 곧 모습을 바꿨다. 아침 녘 햇빛의 신비로움에도 금세 적응한 데다 방에 누워 뻑뻑한 눈으로 ‘벌써?’ 하며 밝아지는 창문을 목격하는 일은 내게 더는 새벽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 또다시 ‘출근하기 싫은 아침’이 왔다. 이에 더해 5월의 적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꽃가루로 불리는 송홧가루와 솜뭉치처럼 날아다니는 버드나무 솜털. 그렇잖아도 높아진 실내 온도에 전보다 더 땀을 빼는데, 건물 안까지 날아든 그들을 쓸고 닦는 일에는 확실히 힘이 배로 들어갔다. 도망가는 솜털을 쫓아 허공에 청소기 머리를 휘젓는 일도 있었고, 계단을 닦은 후 꽃가루로 물든 걸레를 빨 때도 헹구는 횟수가 더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청소기를 돌리며 창문을 닦으며 그만두는 상상을 했다. 관둘 이유들은 진작부터 뽑히길 기다려 온 흙 속의 잘 여문 감자들처럼 딸려 나왔다. 재작년 다친 이래 아직 다 낫지 않은 손목, 최근 부쩍 안 좋아진 무릎, 오른손을 많이 쓰다 보니 한쪽에만 불균형하게 붙는 것 같은 근육, 이젠 일이 없어도 일찍 일어나게 된 나의 부지런함 등.
그렇게 사직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마침 해당 건물과의 계약이 끝난다는 소식이, 마치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본 것처럼 어느 날 날아들었다. 다른 업장도 있으므로 적극 물색한다면 장소를 바꿔 계속 일할 수도 있었겠으나, 나는 계획(?)한 대로 여기서 이만 종달새를 보내주기로 했다. 계절이 흐르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시원섭섭이라고 하기엔 시원함 쪽이 크지만, 이 5개월이 내게 심은 변화만큼은 정성 들여 기록할 필요가 있겠다.
이제 며칠만을 남겨둔 오늘. 부엉이로 살아온 내게 새벽 청소 일이 가져다준 것들을 다섯 가지로 추려 보았다.
1. ‘끝내는 새벽’이 아닌 ‘시작하는 새벽’을 몸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고, 아침형 인간으로 살게 해 주었다(앞으로 어쩔지는 좀 봐야 함).
2. 단골 식당의 주방장님이 새벽같이 출근하는 모습을 엿보는 기회, 첫차를 타는 사람들을 훔쳐보는 기회, 한적한 골목에 스며드는 계절의 변화를 남들보다 조금 일찍 만나는 기회, 이 밖에도 수많은 기회를 선물해 주었다.
3. 비록 어김없는 권태를 맛보게도 했지만, 새벽일을 마친 후 누리는 길고 온전한 하루에 새삼스러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4. 사람을 대면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던 내게 먼지와 얼룩만을 마주한 채 전혀 다른 싸움(?)을 해 나가야 하는 새로운 임무를 주었다.
5. 내가 밀고 들어가는 말끔하고 투명한 문, 한 걸음씩 딛는 깨끗하고 반짝이는 바닥은 누군가 힘써 닦은 것이라는 지당한 인식을 또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이상, 부엉이의 종달새 체험 종료를 앞둔 시점, 현재 상태 매우 양호.
Seine
+ 글을 맺고 덧붙여 보는 에피소드. 청소 일 첫날이었나? 업체 분들이 나오셔서 새로 온 스태프에게 업무를 알려 준 다음 동그랗게 둘러서서 커피를 마신 적이 있었다. 나와 함께 일을 맡은 다른 분이 “건물 오픈 시간은 그럼 언제인가요?” 하고 물었다. 질문을 들을 때만 해도 나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방금 청소한 사무실에 일하러 올 회사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묻는 당연한 질문이라고 여겼다. 그게 건물의 공식적인 오픈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업체 분의 대답은 “오픈이오? 우리가 지금 한 거예요.”였다. 나도 모르게, 사회가 시도 때도 없이 그러는 것처럼 당연히 어떤 존재를—심지어 내가 그 존재인데도—생략해 버린 나 자신을 자각해 뜨끔했다. 저 대사는 나중에 다른 이야기에 써야지, 하고 메모해 두었다.
++ 동네 병원이나 스터디 카페 청소 알바를 기웃거린 지는 꽤 됐지만, 안 해 본 일인 데다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라 솔직히 시작할 엄두가 안 났었다. 그러던 중 브런치 이웃 서지현 작가님께서 청소 일을 하며 “저는 커피값을 버는 작가입니다”를 연재하셨는데, 그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일 시작 때도 용기 불어넣어 주시고 늘 따뜻한 댓글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쓰지 뭐>는 2023 브런치북 『지금부터 하지 뭐』에 이어지는 '쓰기'에 관한 그림에세이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ever-or-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