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와 소셜벤쳐 입문기
때는 2015년 봄이었다.
나는 방학에 맞춰 고향에서 택배 일을 하고 있는 형을 도와 택배기사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부랴부랴 먹고 고속도로 다리 밑에서 잠시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쉬고 있었는데
고속 다리 위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보니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저 도로 위를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차들 대부분이 무언가를 적재함에 싣고 다니는 화물차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도로 위에는 일반 승용차들도 있지만 무언가를 실어 나르는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때부터 물류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내가 하고 있는 일도 택배 물류였고
물류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몇 발자국만 떼면 눈앞에 펼쳐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온갖 종류의 물건들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서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다. 그때부터 물류에 대해서 검색을 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론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물류관리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했고,
나의 물류 스승인 물류전문잡지 CLO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물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약하면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체내에서 혈액이 혈관을 타고 끊임없이 순환되어야 하는데
물류는 한 나라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 내에서의 혈류 같은 것이었다.
1년 365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
그것이 물류였다.
나는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종합 물류기업 일인자인 C사에 입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성과는 일반적으로 진실된 노력에 비례하여 나타나기 마련이다. 최종면접까지 마치고 나서의 느낌은 “와, 무조건 100% 합격이다!”였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고 과정도 순탄했다. 하지만, 최종면접에서 탈락하였다.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그 ‘느낌’이란 것이 난생처음으로 어긋난 상황이었다. 대게 취준생들은 직무나 업종을 정해 놓고 문어발식으로 서류를 넣기 마련인데 나는 자신이 있었다. C사에 올인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큰 리스크를 안고 가는 무모한 짓이었다. 그래서 최종 결과인 불합격의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식음을 전폐한다는 말이 딱 그때의 내 상황이었다.
이 세상 모든 불행은 나만의 것이었고 슬픔 또한 나만의 것이었고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어 휴학기를 내고 유유자적하며 고향에서 형의 일손을 도와 용돈을 벌고
낚시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한량처럼 지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2016년 하반기가 되어 다시 복학을 했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자세는 처음의 취업전선과는 매우 달랐다.
‘대기업’에 가고 싶은 욕구는 온데간데없었고 그냥 전공인 경제학과를 살려서 은행이나 중견기업 정도로 목표가 낮아졌다.
인생 참 희한하다.
그렇게 하반기를 설렁설렁 의욕 없이 준비했는데
어이없게도 원서를 넣은 곳은 대부분 모두 최종 합격했다.
고르고 골라서 두 곳이 최종 후보가 되었는데 그중 한 곳은 농협 5급 행원이었고 한 곳은 다이소 SCM 직무였다.
근데 난데없이 갑자기 이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일이란 무엇인가.
‘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준비하고 생각하던 나의 일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갑자기 선택지가 생기니 배부른 객기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CLO라는 물류 전문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두손컴퍼니’라는 회사에 대한 소개를 읽게 되었다.
http://clomag.co.kr/article/1769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 회사는 내가 하고 싶었던 물류 일을 하면서 취약계층을 위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회적인 의미만 강조하는 게 아닌, 지속 가능하기 위한 경제적 의미도 동시에 실현하고 있었다.
그 지속가능성은 내가 처음 물류에 대해 공부하면서 보았던 혈액이 순환하는 것처럼 꾸준한 일자리였다.
글을 집중해서 두세 번 읽고 잡지를 덮었다.
배부른 객기를 부리며 일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던 나는
나만의 답을 내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사회적 가치에 일조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
그렇게 나만의 결론을 내릴 즈음
농협에서 최종 합격자들에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메시지가 왔다.
스마트폰에서 안내 링크를 탭 하지도 않고 메시지를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가서 채용공고도 없는 회사에
내 멋대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두손컴퍼니 공식 메일로 입사시켜 달라고 떼를 쓰며
자기소개서를 첨부하여 보냈다.
그로부터 이틀 후 함께 일해보자는 연락을 받고
일주일간 서둘러 모든 것들을 부랴부랴 정리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렇게 2016년 11월 28일부터 소셜벤처인 두손컴퍼니의 일원이 되었고
머리로 생각하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판단보다
마음이 울려 퍼지고, 뜨거워지고 있는 가슴으로 결정한 이상주의적 입사였다.
살다보면 머리로 하는 이성적 판단과 마음으로 하는 감정적 판단 사이에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이 수없이 많이 생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완벽한 이성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들도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모순이며,
감정을 배제한 선택이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선택한 감정적 결정들도 또한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깨달은 바로는
잘못된 이성적 판단에 의한 선택으로 그 이후에 오는 후회는
컨트롤하기 어려운 마음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지만,
잘못된 감정적 판단에 의한 선택으로 인한 그 이후의 후회는
최소한 나 자신을 쉽게 타이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였다.
그러니 후회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기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마음을 더 중시한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일의 본질에 대한 나만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일이란 나뿐만 아닌, 주변 사람들의 자존감을 향상시켜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우리 모두가
향상된 자존감을 바탕으로 행복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행복한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