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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Green Oct 07. 2024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 ‘수포자’

2024.10.05.

선생님, 저는 ‘수포자’예요.


학교에 많은 과목 선생님이 계시지만, 고등학교 교장 경험으로 보자면 다른 교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들어하시는 선생님들이 있다. 단연코 수학 선생님들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어떤 말인지 안다. 물론 요즘 다른 과목 포기도 ‘*포자’로 표기하지만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는 수포자예요’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많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과정에서 이미 상당히 많은 수포자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오래전이기는 하나 적어도 40년 전, 아니 10년 전만 해도 수포자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사용하지는 않았다. TV 프로그램에서 유명 수학 강사는 주로 초등 분수, 중학교 루트( )부터 수포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공학을 전공한 나는 ‘수포자’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과학, 공학 등 이과 교육의 실상을 나타내는 것 같아 몹시 슬프다. 이 말은 단순히 수학을 포기했다가 아니라, 수학을 전 국민이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뜻하기 때문이며, 심지어는 대다수가 싫어하는 수학에 대한 혐오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수학 시간이면 이해하기 어려워 괴롭기에 딴짓하거나, 수업 시작부터 온몸으로 수학을 포기했다는 신호를 보낸다. 시작부터 책상에 엎어져 잠을 청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부모들은 수학 학원, 과외 등을 총동원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가 수포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나 대부분 허사다.


학생 대부분은 수능이 끝나면 다시는 수학책 펼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수학이라는 학문과 완전한 이별을 고하곤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많은 학생을 ‘수포자’로 만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교사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대부분 학생은 ‘저, 수포자예요’라고 하니 말이다.


수학교육,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내 고등학교 수업을 소환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단언컨대 내가 공학을 선택하게 된 건 수학 선생님 덕분이다. 선생님은 문제 푸는 수업을 하는 분이 아니셨다. 물론 당시에도 대학 입시를 앞두고 시험 준비를 시키지 않아 불만인 친구들이 있었으나, 나는 그분의 수업 덕에 나이가 들어도 수학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기에 그 선생님은 성공한 수학 선생님이라 분명 말할 수 있다.


그분은 특정 단원을 나가기 전에 어떤 수학자가 그 분야를 위해 일생을 바쳐 연구했는지, 그 수학자는 왜 그 문제를 풀려고 했는지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그 수학자가 일생을 바쳐 증명하고 푼 문제인데 너희가 몇 번의 연습으로 못 푼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을 꼭 해주셨다. 그 선생님은 수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늘 따뜻하게 안내해주셨다.


그 덕에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수학 문제를 만나면 포기가 아니라, 한두 번에 이해가 되길 바라는 나 자신을 스스로 타일렀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문제를 긴 시간 붙들고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면 참으로 신기하게 문제가 내 머릿속에서 술술 풀리는 경험을 하곤 했고 그때의 짜릿한 전율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을 좋게 했다. 그 기분 좋음으로 인해 수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나의 이러한 경험을 많은 청소년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선생님의 교수 방법이 잘된 것이고, 문제를 풀어주는 수학 선생님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수업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를 하는 분(특히 수학 선생님)이 없길 바란다.



수학, 예술 그 자체로 교육하길


내가 하고픈 말은 ‘수포자’를 양산하는 지금의 사태에서 벗어나려면, 수학을 좀 더 가벼운 교과목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문제가 요구하는 것을 여유 있게 생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보고, 오류를 줄여가는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도록 수학이라는 교과의 중요도가 낮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수학을 어설프게 알면 주어진 시간 안에 ‘정답’을 구하는 풀이 정도로만 여긴다. 그런 사람들은 많은 연습을 통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수학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절대 아니다. 수학에서 정답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수학은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학문이다. 즉, 수학은 결론에 이르는 치열한 고민의 과정을 통해 상상력과 합리적 추론,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을 배우는 학문이지 결론을 얻는 데 ‘성공’하는 학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수학은 ‘계산하기’가 아니라 ‘생각의 예술’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수학은 답보다 질문을 먼저 찾아내고 그 질문 속에서 구조와 패턴, 규칙과 오류를 발견하며 논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일련의 ‘수학적 사고’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모르면, 수학 계산만 잘하면 되지, 사칙연산 정도만 하면 되는데 실제 필요 없는 것을 너무 많이 배운다며, 수학 무용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수학적 사고’의 그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청소년기에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우리 학교 수학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떻게 수학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할지, 일반고등학교와 다른 ‘대안적 수학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답은 수학 교사도 나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수학을 못 하는 것에 대한 불안만 키우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수학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수학의 문제점(미국도 수포자가 많다)을 해결하려 헌신한 폴 록하트 박사의 말을 이 글을 읽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 특히 당신이 수학을 포기한 적이 있던 분이라면 더더욱. “수학은 예술입니다. 수학은 예술로서, 예술 그 자체로 교육해야 합니다. (폴 록하트)”


이 말이야말로 요즘 AI로 떠들썩한 세상에, 정말 수학 교과를 바라봐야 하는 참된 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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