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발현, 관계의 역전
<여교사>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에서 아이들의 관계 맺기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되짚어 볼 수 있었는데요. <여교사>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욕망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효주와 혜영의 사이의 관계에서의 모습이나 재하의 심리에서 반대로 어린아이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캐릭터들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악의가 있을지는 몰라도 욕망을 위한 순수한 행동들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쁨 받기를 갈망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요.
학교라는 공간은 현실을 투영해 놓은 듯합니다. 실제적인 계급은 존재하지 않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계급사회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비정규직 여자 교사들에게만 임신했을 경우를 대비한 계약서를 새로 쓰게 하는 상황이라던지, 이사장 딸이기 때문에 곧바로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혜영의 모습에서 현실을 비춰보게끔 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인 여성혐오, 비선실세, 특혜채용 등을 엿볼 수 있죠. 물론 영화의 주된 소재는 개인의 열등감과 질투, 욕망에 관한 것이라, 이러한 부분들은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사회적 메시지가 큰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속 갑을관계의 변주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와 배경이, 관계에서의 갑과 을로 직결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나 개인의 감정을 통해 관계는 역전되거나 무너집니다. 전반부가 사회적 지위에 따른 욕망이었다면, 후반부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겠죠. 욕망의 주체가 되는 것을 가진 자와, 그것을 갖지 못한 자의 질투로서 관계가 맺어집니다. 다만 누군가는 욕망에 대한 절제가 가능했고, 다른 이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죠. 결국 절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감정은 무한히 내달릴 수는 없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벽은 존재하거든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방어적인 성격이 된다고들 합니다. 그래서인지 효주는 혜영을 대할 때, 굳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냐 싶을 정도로 차갑게 대합니다. 관계에서의 을이라는 입장을 가리기 위한 반응이었겠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효주가 본인이 갑이라고 판단한다 느껴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집에서 남자 친구와의 관계입니다. 남자 친구의 행위에 대해서 효주에게 감정 이입하여 볼 수도 있으나, 분명히 효주가 남자 친구를 대하는 태도는 상하관계였습니다. 그러한 남자 친구가 떠나고 나서 다가온 재하에게 여러 가지를 베풀면서, 자신이 권력의 우위에 있다고 느꼈을 겁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상황과, 재하의 집안 형편도 그러하구요.
그럼에도 극후반부의 효주의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통쾌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영화가 쌓아온 정서를 무너뜨리는 장면이라 생각해요. 영화에서 복수가 가지는 의미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러한 행동을 하는 계기가, 자신이 느끼는 부조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 남자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앞서 사회문제는 수단으로써만 이용되었다고 표현한 것이구요. 결국 이 영화는 치정극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태연히 교무실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효주를 연기한 김하늘의 연기력만큼은 한동안 잊히지 않을 정도로 최고였습니다.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