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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라무 Dec 27. 2017

연애의 목적이 방향을 잃었을 때

[연애다큐] 이옥섭 구교환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든 정서에 공감한다. 이옥섭, 구교환 감독이 공동 연출한 <연애다큐>는, 연인 사이인 감독 지망생 교환(구교환)과 배우 지망생 하나(이성미)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하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들의 연애는 보통의 연인들과 다르지 않다. 서로 데이트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고. 한 가지 더해졌다면, 이들의 사랑은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기록해두려는 욕구를 가진다. 간단하게는 일기를 쓰는 행위가 그러하고, 사진을 찍는 행위도 그러하다. 연인 간의 관계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는 행위도 다르지 않다. 교환과 하나는 서로의 연애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하려 한다. 그들의 기억이 영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서 이지만, 그들의 연애 다큐를 통해 우리는 둘의 연애를 복기해 볼 수 있다.


  영화는 연인 사이의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름이다. 연애라는 것은 서로 다름을 이해시켜가는 과정이다. 자기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세계와 공간에 한 발짝 들어서는 것이다. 모든 연애의 끝은 서로 간의 다름의 차이가 커서, 자신이 상대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질 때 비로소 끝이 난다.


 교환과 하나, 이들에게 있어서 연애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우리는 그들의 연애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함께 살고 있고, 꽤나 오래된 연인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다. 한 가지 더 하자면, 그들은 서로의 연애를 다큐멘터리로 찍고 있고 연애의 주 레퍼토리는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점이다. 이것만으로 연애의 목적을 알기는 어렵다. 그들의 목적을 알기 전에,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교환이는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까에 대해서 많이 신경쓰는 타입이다.'


 63 빌딩에 붙어있는 한화 마크를 보며, 멋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교환에 대해 말하는 하나의 내레이션이다. 교환은 전 날에도 똑같은 말을 했었고, 한강에서 63 빌딩을 바라보며 같은 말을 하며 다큐에 쓰이기 위한 소재로 촬영을 요구한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한 번 더 나온다. 둘의 영화 동지인 현영(박현영)이 술자리에서 내뱉은 멋있는 말을 교환은 그대로 하나에게 다시 말한다. 교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멋있게, 속히 말하여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 그것이 오롯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 아닐지라도.


 교환의 머릿속에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어쩌면 하나가 다큐멘터리를 위한 수단으로써만 이용된다는 생각도 든다. 후라이드 치킨만 시켜서 양념 치킨을 좋아하는 하나가 화난 상황에서도, 교환은 캠코더를 들고 왜 양념만을 고집하냐 되물으며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소스로 이용하려 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보다 다큐멘터리가 더 중요하다. 교환에게 있어서 연애와 다큐 중에 다큐가 더 우위에 있던 것이다.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치킨의 취향의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서로 간의 다툼 속에서 교환은 하나가 양념을 좋아하는 만큼 자신도 후라이드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하나는 반반 치킨을 시킬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서로 간에 타협할 수 있는 방법을 말했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 것이다. 허나 교환은 이러한 이해심이 부족했다. 배우로서 예술에 대한 향유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하나의 활동을, 교환은 그저 문화 예술 오타쿠로서만 치부한다.


'나는 갑자기 아빠에게 교환이를 소개시켜 줄 마음이 사라졌다. 그냥 변덕이었다. 두 시간동안 오토바이를 탔는데, 아직 여의도를 못 벗어나서도 아니고. 지식IN에서 봤다는 그 저질스러운 오줌 소태 퇴치법이 소용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변덕이었다.'


그냥 변덕이었다. 하나의 행동에서 변덕스러운 모습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내레이션에서 나타나는 감정상태도 그렇고, 마지막 3회 차의 촬영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교환과 이별할 때의 모습도 어쩌면 변덕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하나의 얼굴을 언제나 고민이 많아 보였다. 대부분의 감정상태가 대사로서 표현이 된 교환과는 달리, 하나의 씬에서는 침묵과 공백이 많았다.


 첫 이별을 하던 날, 하나는 로베르 두아노의 '파리 시청 앞에서 키스'를 비롯한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교환과 자신의 모습이 마치 과거의 지나간 기록인 양 흑백사진으로 겹쳐진다. 하나는 이전부터 교환과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연애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을 것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변덕은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속에서 축적되어 가는 이유도 존재한다. 하나에게 있어서 연애와 다큐 가운데 연애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였음은 분명하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진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소한 배려를 해주지 못하는 교환을 하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블록버스터나 3D 영화를 보며 잠이 드는 하나를 떠올리며, 자신은 교양 PD는 안 할 거라며 작게 한탄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간의 부재를 아파하며, 첫 번째 이별을 겪는다.


"그냥 우리끼리 멜로 영화 찍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니까?"


 영화제 공모에 당선된 것을 계기로 둘은 다시 만난다. 아니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한시적으로 연인인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다. 다큐가 연애보다 중요했던 교환은, 당연히 다큐를 위해 이러한 제안을 한다. 허나 하나는 연애가 더 중요했기에 다큐멘터리에 참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미술관에서 실수로 깨뜨린 도자기 때문에 급한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러한 재결합은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이제 이들의 연애의 목적은 다큐멘터리의 완성, 나아가 작품의 완성으로 얻는 상금이 되었다. '연애 다큐'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다큐멘터리는, 이제 온전한 사실이 아닌 대본으로 움직이는 설정이 되었다. 이 영화의 장르처럼, 영화 속의 다큐도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된 것이다. 사랑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그들의 관계는 돈이 주된 목적이다. 과연 이들 사이에는 진심이 있었을까? 거짓으로 포장된 다큐멘터리 속에도, 진정성은 남아있을까?


"떠날 사람은 준비하는 게 보여."


 교환은 사람의 눈을 보면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여권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바로 알아챈다고 말한다. 떠날 사람은 준비하는 게 보인다고 말하면서. 처음에는 이 말에 대해 혹하지만, 이내 관객은 교환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말임을 눈치채게 된다. 일전에 술자리에서 현영이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교환은 하나와의 잠자리를 찍기 위해 몰래 촬영을 하고, 하나의 다른 의도의 물음에도 촬영에 대한 이야기로 대답한다. 교환에게는 이미 작품의 완성이 우선일 뿐 진정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매일 옷이 바뀌는 하나와 달리, 교환은 항상 디렉터스 체어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거기엔 'GOD'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재밌는 건 '연애 다큐'를 찍기 이전, 과거 회상에서는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티셔츠는 교환의 연출 욕구를 나타낸다. 감독 지망생인 그가 이번 다큐를 통해 영화제에 입봉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신을 나타내는 'GOD'이라는 문구는 감독의 역할이다. 감독은 마치 신과 같이 영화를 연출하고 편집하며, 자신의 기호에 맡게 조정한다. 허나 연애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GOD'이라는 문구는 교환이 연출하는 '연애 다큐'의 진정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나타냄과 동시에, 신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애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아이러니함을 동시에 나타낸다.


 하나에게선 이별을 준비하는 이의 모습이 엿보인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지만 집중하지 못한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교환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다큐멘터리 촬영이 종료된 후의 일정을 묻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소스를 따러 현영을 찾아갔지만, 목적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거짓이 되어버린 '연애 다큐'에서, 일말의 진심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안 예쁘잖아"


 하나는 교환에게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한다. 교환의 집에 다시 찾아가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는 깨진 도자기를 교환의 집으로 보낸 후 나타나지 않는다. 깨진 도자기는 하나의 메시지다. 지금까지 사랑했던 기억에 대한 파편일 수도, 혹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뱉은 말의 의미일 수도 있다. 교환은 깨진 도자기를 하나하나 맞추며, 하나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나의 메시지에 스스로 되뇌며, 연애를 이어가야 할지, 정리해야 할지.


 가편집 시사가 되어서야 둘은 만난다. 교환은 본드로 붙여 완성된, 겨우 붙어있는 못생긴 도자기를 가져온다. 도자기를 붙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결론적으로 도자기를 보며 든 생각을 말한다. 예쁘지 않다. 깨진 도자기는 다시 붙여도 예쁘지 않다. 깨진 사랑은 다시 붙여도 이쁘지 않다. 이미 한 번 틀어진 관계는, 깨져버린 이유로 금이가 계속해서 못생긴 채로 남을 것이다. 억지로 붙여봐야 기억은 남는 것이다. 교환이 도자기를 깬 행위는 하나의 메시지에 대한 답이다. 조각조각 붙여낸 이쁘지 않은 사랑을 이어갈 자신이 있냐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교환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결국 교환은 하나를 이해할 수 없었고, 하나의 세계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교환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동일한 이야기지만 과거형으로 바뀌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기록은, 사랑이 끝나고 나서도 똑같은 마음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마침표를 짓고 난 후에 남은 그들의 기록은, 추억으로 혹은 후회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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