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요아킴 트리에
요아킴 트리에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자칫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는 소재의 이야기를, 본인만에 과감한 각본과 독특한 연출로 잘 풀어냈다. 12개의 챕터와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영화는 그 챕터마다 흥미로운 주제를 던진다. 맨스플레인, 미투 운동, 포스트 페미니즘, 더 나아가서는 샤머니즘과 인플루언스, 심지어는 환경오염과 지속가능한 삶까지 말이다. 어찌보면 한 사람의 인생에 극단적으로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변에 존재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 많으니 유의해주세요.
단순한 사랑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미완의 존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담에 가깝다. 단지 그 변곡점에 사랑이 존재했을 뿐. 그렇다고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함에 다다르는 영화는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요아킴 트리에는 이야기한다.
율리에는 필요에 의해서 누군가를 찾지만, 정작 그 관계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 당장의 끌림에 이끌려 많은 선택을 하지만, 정작 끝까지 마무리되는 것은 없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율리에에겐 결핍에 대한 감정이 존재한다. 새로운 사람을 통해서 채우고 싶어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그들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된다.
12챕터와 에필로그, 프롤로그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10번째 챕터인 [1인칭 단수]의 소제목은 흥미롭다. 영화속에서 율리에는 대부분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며, 이것은 '2인칭'의 형태이다. 그리고 율리에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때는 '3인칭'의 내래이션이 함께 동반된다. 전반부의 율리에는 누군가에게 비춰지는 모습(3인칭)에 매몰되어, 자기 자신(1인칭)에 대한 객관화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다다르면서 내래이션은 사라진다.
담배는 율리에가 중요한 결심을 하게 하는 매개역할을 한다. 악셀의 출간 파티장에서 본인과 악셀간의 이질감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모르는 사람의 피로연장 입구에서 담배를 얻어 피운 후에 피로연장에 들어가게 되고, 담배 연기를 통한 키스를 통해 에이빈드와 교감한다.
담배연기는 쉽고 강렬하게 들어왔다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누군가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어렵지 않다. 모두가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지금 당장 해답을 내린것들이 대부분일테니.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담배연기처럼, 선택은 휘발성이 강하다.
이 영화의 원제는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다. 직역하자면 '이 세상 최악의 인간'정도가 되겠다. 율리에 스스로가 느끼는 본인이 세상 최악의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에 대한, 꽤나 직설적인 제목이다. 한국에서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라는 다소 뜬금없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나는 이 제목 또한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쉽게 생각하자면 과거의 사랑에 대한 소회로, 그 때의 스스로를 최악이었다라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가령 이 제목을 다르게 해석하자면, 사랑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최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하는데에는 너무나도 많은 방해물들이 있다. 앞서 서문에 언급한 맨스플레인, 미투운동, 포스트 페미니즘과 같은 사상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환경오염이나 지속 가능한 삶과 같은 환경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외면하거나, 모른 척해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누군가에겐 이 모습이 최악으로 비춰 지더라도 말이다.
나는 율리에가 가장 사랑한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했기에 하기 싫은 의학 공부가 아닌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고, 악셀보다는 자기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악셀을 떠날 수 있었고, 원치 않는 임신이었기에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할 땐 누구나 다른 사람에겐 최악이 될 수 있다. 그게 나를 위한 최선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