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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봉 Dec 31. 2020

레슬링 일기 #9. 상대방

레슬링은 나와 너가 하는 운동이다.

정말로 코로나 19 사태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끝나나 싶었더니 겨울이 다가오면서 다시 3차 유행이라는 거대한 파도로 다가왔고, 그 이후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라는 제한으로 다가와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겨울의 강추위는 밖에서의 운동마저 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가끔씩 집에서 홈트를 하지만 그마저도 쿵쿵 울려서 미치겠다는 옆집 남자의 분노에 스트레칭만 조금씩 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한동안 레슬링을 배우다 강제로 멈춰 서서 멀어지니 조금씩 열정도 희미해져 가지만, 반대로 불길이 사그라져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있다. 그건 아마 <상대>이지 않을까 한다.


앞서 <스파링>에서는 시합과 나와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나를 어떻게 성장시켜 나가는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운동을 배우는 동안에는 스스로의 성장과 그리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정체기에 초조함을 느끼며 '나'에게 초점을 맞추며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나를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렇지만 나를 성장시키고 운동을 더하고 기술을 연습해도 실전에서는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고 맨날 지기만 하는 모습에 실망감만 쌓여가며 조금은 지쳐갔던 것 같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강제적으로 운동을 쉬며 휴지기를 가지면서 같이 운동하던 형님들, 동료들, 동생님들이 그리 사적으로 친하지도 않았음에도 가끔 잘 지내나 생각이 나더니 문뜩 레슬링 상대방과 함께하는 운동이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투기 종목이 그렇겠지만 레슬링은 한 순간의 움직임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종목이기 때문에 굉장히 압축된 시간 속에서 경기가 운영되는 종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 몸의 감각과 함께 직관력을 모두 동원하여 순간을 만들어야 하는 종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과 직관력이 종합적으로 작동하여 상대를 파악하고 상대를 속이거나 밀어붙이거나 끌어들이며 상대와 겨뤄나가야 하는 운동이다. 이 과정 속에서 나도 중요하지만 상대도 매우 중요해진다. 상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결국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에게 시작하여 상대방으로 옮겨진 시선은 다시 나에 대한 깨달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상대와 무엇을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상대의 세계에 비친 자신의 세계를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강한 상대와 레슬링을 하면 나약한 자신을 보게 되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되찾게 된다. 약한 상대와 만나게 되면 우쭐해지는 거만한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역전을 당해 좌절하는 자신을 만나기도 했고 운 좋게 강한 상대를 물리치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모두 상대와의 운동 덕분에 새롭게 발견하게 된 자신이다. 그 속에서 나를 끝없이 되돌아보고 다듬고 성장시킨다. 돌이켜보면 나의 정체기는 대부분 시선이 '나'에 고정되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럴 때 오히려 '상대방'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나며 돌파구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레슬링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래서 레슬링이란 운동은 너와 나의 커뮤니케이션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오롯이 상대를 느끼고, 상대의 기술과 본연의 힘을 파악하며 그것을 존중하되 굴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나를 드러내는 운동이다. 상대를 받아주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할 곳이 없다. 그래서 서로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의견을 관철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운동이 바로 레슬링이다. 그 결과가 한쪽은 승리자로, 한쪽은 패배자라는 형태를 갖추지만 사실 스스로에 대한 주장을 온 힘을 다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잔인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뒤끝은 없다. 그리고 끝없이 모습을 바꿔나가며 상대와 부딪히며 스스로를 바꿔가며 받아들인다. 


정말로 올 한 해 많은 상대들을 만났고, 운동도 잘하고 멋진 분들도 만났다. 운동 기록을 살펴보면 초보자에게도 많이 역전당해 역관광 당했고, 따라잡아보겠다고 대들었던 형님에겐 겨우 1번 점수 따 본 게 다고,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패배감만 가득한 운동기록들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펴보니 모두 나를 성장시켜준 분들이다. 질투와 시 감이 가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같이 운동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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