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지금 나는 일본에 업무차 와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멍해지며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밥도 먹고 티비도 보고 했으니 아무 것도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내가 단순히 기계였던 것처럼 보던 유튜브를 보고 우버이츠에서 밥을 시켜먹고 그랬다. 비보를 들은 날은 추석 전날이라 한국도 먹통이었지만 일본도 휴일이라 먹통이었다. 내일, 내일 알아보자, 내일로 미루면서 난 그냥 멍하니 그냥 내 일상을 살았다.
다음 날, 꿈을 두가지를 꿨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는 매우 화가 났고, 하나는 매우 즐거운 꿈이었단 것만 기억난다. 하지만 꿈에서 깨는 순간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 현실이 온 몸으로 체감되었다. 잠에서 막 깬 몸이 먼저 그 무게를 느꼈다. '아 무겁다.' 그리고 정신이 느꼈다. '아 여기는 현실이구나.' 매번 흐리멍텅 살아가던 내 삶에 너무나 간만에, 정말 몇십년만에 현실이 정말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씩 뚝이 무너지듯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랴부랴 아침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비행기 시간대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영사관에서는 바로 허가를 내준다고 했으나 비행기 시간이 다음날밖에 되지 않고 비행기 타고 들어가도 PCR검사를 받고 음성이 떠야 공항을 떠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지금 간다고 해도 할머니의 발인은 맞추지 못한다. 오히려 지금 가봤자 나는 또다시 늦어버린 덜떨어진 손자가 되는 것이고 오히려 여러 사람에게 신경쓰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했다. 코로나 백신면제가 되면, 그때 할머니 묘에 인사드리러 가기로 했다.
내가 할머니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내가 할머니의 최애 손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 표현을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날 좋아하시는 편은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나도 굳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할머니와 그렇게 가깝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할머니에게 그렇게 좋은 손자가 아니었다. 제멋대로에, 성격도 이상하고, 행동 말투 모든 것이 다 이상한 돌연변이니 그렇게 좋아할리가 없었지.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게 살갑게 다가가려 하지 못하고 그냥 무서워만 할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너무나도 멀어져버린 저 멀찍이 있는 관계가 되었다. 나는 할머니와 나와의 관계가 쿨하고도 가벼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20대에는 고시를 한다는 핑계로 5년간은 시골에 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불편한 마음을 안고 명절에만 가서 인사드렸을 뿐이다. 20대 초 마지막으로 봤던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나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았으나 20대 후반에 뵌 할머니는 점차 약해지셨다. 그리고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을 나는 가볍게 흘려보냈다. 이미 30년을 가벼운 관계 속에서 살아왔던 인연의 무게를 더 무겁게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무게는 최애 손자, 손녀들이 짊어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용돈 좀 드리고, 명절에 인사드리는 정도의 손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한없이 가벼운, 그런 관계라 생각했다. 다만, 일본으로 떠나는 때, 그 마지막 명절에 할머니가 너무 약해지셔서 잡아드린 손이 너무 가냘퍼서 마음이 뜨끔했다. 뭐라하는지도 잘 못알아듣는다고 하시는 그 말씀과, 그냥 안타까운 눈동자만 나를 처다보는 것 같았다. 괜찮겠지, 우리는 가벼운 인연이니까 또 만나러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인사드리고 난 떠났다.
그렇게 가벼운 인연이라 생각했던 난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나는 배웅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최애 손자 손녀들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매몰차고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라는 비난들. 멋진 사람이라면 '그런 비난보다...' 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 비난들도 무겁다. 무섭다. 쌓아올려지는 무게가 점점 가벼웠던 우리의 인연을 무겁게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무겁게 마음의 바다에 가라앉으며 기포처럼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진실들을 떠올리게 한다. 할머니도 내게 그렇게 좋은 할머니는 아니었지만, 나도 그렇게 괜찮은 손자는 아니었단 것. 나는 고시라든지 젊음이라든지 핑계로 저 멀리 도망갈 수 있었지만 할머니는 할머니라는 이유로 시골에 항상 묶여있어야만 했다는 것. 나는 젊었고, 성장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고, 더 강해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나 할머니는 작아지고, 늙고, 약해질 일만 남았다는 것. 나는 항상 남들보다 뒤쳐져서, 남들보다 더 늦게 깨달아 버린다는 것.
결국 떠오르는 진실은 후회와 죄책감으로 우리의 인연을 무겁게 했다. 응당 그래야했던 것만큼. 돌아간다고 우리가 정말 최고의 할머니-손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달랐고, 맞지도 않았으니. 다만 인연의 무게는 결국 다 똑같다. 무게를 어떻게든 감당해야하는 것이다. 그 무게를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으로 간직하게 될지, 후회와 미안함으로 간직하게 될지 그 차이일 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건, 그냥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의 인연은 무거워졌다. 그 후회와 죄책감의 돌덩이들도 너무나 지금은 소중해 꼭 안고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냥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가 천국으로 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