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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Jan 26. 2021

코로나와 더불어 살기

코로나 시대의 친구, 존을 떠올리며


“더위를 피하기에는 운전이 가장 좋아. 노르웨이에서는 대부분의 집에 에어컨이 없어. 그래서 너무 더울 때는 운전을 하는 거지. 차 안에서는 에어컨을 켤 수 있잖아.”     


지난여름, 노르웨이에 사는 친구 존은 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드라이브를 즐기는 일이라고 했다. 노르웨이는 여름보다 겨울이 긴 나라이고, 여름에도 별로 덥지 않았기에 에어컨이 구비된 집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우리나라와는 환경이 다른 그곳을 상상하곤 했다. 이번에는 겨울의 추위를 피하는 법을 말해왔다.      


“이곳은 영하 18도에서 20도 사이야. 너무 추울 때는 드라이브를 즐겨. 따뜻한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기분 좋아지지.”      


코로나의 시대.  추운 북극의 나라에서 지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가을에 그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쓴 글을 올려본다. 

   



         


“이곳까지 올라와 봐요. 기막힌 풍경이에요.”

“너는 그곳의 풍경을 즐겨. 이곳도 나쁘지 않아.”     


영화감독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이 함께 만든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한 장면이다. 물고기 사진을 붙인 물탱크를 보기 위해 계단 끝까지 단숨에 올라간 서른여섯 살 JR의 말에 여든아홉 살 바르다는 대꾸한다. 여기서 보는 풍경도 괜찮다고. 코로나 시대를 건너며 나는 바르다를 떠올렸다. 시력이 흐릿해지고 다리도 아픈 바르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즐기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을 즐기자고.     


여행자인 내 발이 묶인 것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세계 곳곳의 친구들과 랜선으로 만나며, 낯선 곳을 탐험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상상을 한다. 언젠가 다시 여행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가진다.      


지난봄 ‘코로나 시대의 친구들’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국경이 곧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아 ‘With Corona’ 시대가 되었다. 친구들에게 잡지 출간 소식을 전하며, 슬기롭게 잘 살아가자고 서로 격려했다. 특히 노르웨이에 사는 존과는 매주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다.     


“나와 아내, 친구들은 모두 나이가 많으니까 조심하면서 지내. 하지만 예전과 비슷한 생활리듬이야. 요즘은 집을 손본다고 정신이 없어. 200년 된 집이거든. 바람에 기와가 날아가서 애를 먹고 있어. 오래 전에 생산된 기와라서 똑같은 기와를 구할 수가 없네.”     


늦여름에 기와 때문에 고생하던 그가 지붕 수리를 마친 사진을 보내왔다. 얼마 안 가 굴뚝에도 금이 갔다며 긴 사다리 위에서 집을 살피는 사진을 보내왔다. 집도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오래된 주택에 산다는 것은 돌봐야 할 일이 많다는 말이 뒤따랐다. 두 달에 한 번씩 옛 동료들과 카페에서 모임을 가지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임을 중단했다가 다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러더니 여덟 명 중 세 명만이 참석했고, 평소처럼 악수도 할 수 없었다는 쓸쓸함과 한숨을 이곳까지 보내기도 했다.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것은 많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지만, 아파트에 살고 싶지는 않다는 존.


“8월부터 상황이 나아져서 극장과 콘서트홀은 운영하고 있어. 대신에 200명으로 관객을 제한해.”      


어느 날은 콘서트홀에 간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다중이용시설 운영을 중단할 때였다. 그곳에서는 문화시설을 폐쇄하지 않고 소규모 인원으로 축소해서 운영한다고 했다. 스포츠 경기도 마찬가지여서 축구 경기장에서는 200명의 관중을 대상으로 경기를 펼친다고 했다. 도서관 개관 소식도 전해왔다. 45만 권의 장서를 갖춘 오슬로 공립도서관(Deichman Library)이 개관했는데, 한국어로 된 책도 있어서 반가웠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오슬로 공립도서관을 방문하고 싶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 때문에 짜증을 낼 때가 많아. 예를 들면 예약한 사람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거나, 상점에서 현금을 사용할 수 없는 일, 학교에서 급식 제공을 중단한 일, 모스크에서 여성용 입구를 폐쇄한 것 때문에 불평해.”     


정부에서 내리는 수많은 지침들에 사람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며, 정부가 국민들의 일상에 너무 많이 개입하지 않는 정책이 합리적인 것 같다고 했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정책 때문에 휴대전화에 금융 앱이 없는 노인들이 버스나 트램을 탈 때 속임수를 쓰는 일도 일어난다는 말을 덧붙이며, 국가의 정책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국민들에게 코로나 규칙을 규켜달라고 부탁하며, "에르나가 보고 있다."라는 마스크를 쓴 노르웨이 총리 모습이 인상깊다. 


“8월에 쌍둥이 손주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어. 예전과 달리 부모들이 학교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 다들 교문 밖에서 아이들을 보내고 기다려.”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손주들을 돌보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손주들의 방문이 잦아져서 함께할 수 있는 놀이를 찾는다고도 했다. 지난번에는 휴가 때 오슬로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까지 손주들을 데리고 농장 체험을 갔다면서, 숲속에서 딸기와 버섯을 따고, 암탉과 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알파카를 돌보는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농장에서 일주일 머물며 시골 생활을 체험 중인 존의 손주들


그와 소식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필요한 순간에 길을 바꿀 능력이 있다.”라던 파울로 코엘료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그와 터키에서 카파도키아 지역을 함께 여행했다. 꼭 한 번 열기구를 타고 싶다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계획에 없던 도시를 여행했다. 사프란볼루로 떠나려던 내가 카파도키아로 길을 바꾸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서로를 성장시켰다. 여든이 되어 여행에 자신감을 잃어가던 그는 열정을 되찾았고, 내가 살아갈 미래를 앞서 살아가는 그를 보며, 나 역시 불확실한 미래의 뿌연 안개를 걷어낼 수 있었다.      


‘With Corona’의 시대.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을 찾을 슬기로움이 있다고 믿는다. 그도, 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으며 힘을 내 본다. 그동안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의 가치를 돌아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 집밥을 즐기고 자연을 찾는다. 모임을 자제하고, 온라인으로 만난다. 학교에서는 대면수업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한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아흔두 살 된 친구는 코로나보다 날씨를 더 걱정하더라고. 글쎄, 집 앞에 황금색 기상 예보석을 내놨어. 따뜻한 돌은 태양, 젖은 돌은 비, 흰 돌은 눈, 돌이 보이지 않으면 안개를 뜻한다면서. 나도 바이러스보다 궂은 날씨가 더 무서워.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편지를 보낼 때마다 건강을 염려하는 내게, 여든두 살의 존은 농담을 늘어놓았다. 괜찮다고, 잘살아가고 있다고도 했다. 먼 북쪽나라의 친구가 코로나와 더불어 살며 손자손녀를 돌보고, 숲에서 딴 과일로 잼을 만들고, 오두막을 가꾸고, 겨울 장작을 준비하는 것을 보며, 나도 이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한다.      

영하 19도의 추위이지만, 사슴과 토끼 발자국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오두막을 방문을 즐긴다는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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