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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May 01. 2021

내가 만난아프리카 01

트럭 타고 아프리카로 Go!

2019년 1월에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케냐와 우간다에 있는 친구를 10년 넘게 후원하면서 꿈꾸었던 아프리카 여행의 기회를 가졌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문화가 다른 54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넓은 아프리카를 다 둘러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여행지와 여행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트럭을 타고 여행하는 ‘노매드 트럭킹Nomad Trucking’을 선택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지만 두려워서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짧은 시간에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당한 여행이었다.      




노매드 트럭킹으로 아프리카를 돌다   

  

그동안 혼자서도 세계 곳곳을 잘 다녔는데, 어쩐지 나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려니 두려웠다. 혹시라도 병에 걸리면 어쩌지? 말은 통할까? 교통은 괜찮을까? 온갖 걱정이 밀려들었다. 나 홀로 여행에 자신이 없어져 겨울 방학을 앞둔 대학생 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여행 경비를 보조해주고 항공권부터 숙박, 렌터카, 비자 등 여행 준비는 딸이 맡기로 했다. 엄마와 딸의 렌터카 여행을 계획하며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6개월간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가 우리를 말렸다. 내가 운전을 도맡아야 했는데, 혼자서 한 달간 운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여자 둘만의 여행이라 안전도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럭킹Trucking’ 여행을 추천했다.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을 개인이 여행하기에는 힘든 점을 고려해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특수 제작된 트럭을 타고 두세 명의 현지 스텝과 최대 스무 명 정도의 여행자가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그중 ‘노매드 여행사Nomad Africa Adventure Tours’의 트럭킹이 가장 인기 있었다. 케냐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4일부터 길게는 40일에 이르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많아 선택의 폭이 컸다. 우리는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를 시작으로 보츠와나, 나미비아를 거쳐 케이프타운으로 여행하는 20일간의 ‘노매드 트럭킹’을 선택하기로 했다.     


일정을 정하고 나니 숙박 형태를 결정해야 했다. ‘캠핑형’, ‘숙소형’, 그리고 ‘캠프&숙소형’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숙소형은 캠핑형보다 훨씬 비싼 비용이었다. 캠핑형은 텐트 설치와 수납을 스스로 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텐트를 치는 캠프사이트 안에 샤워 시설과 화장실, 간단한 음료를 파는 바와 수영장이 대부분 갖춰져 있어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진짜 아프리카를 느끼기에는 캠핑형이, 안락한 여행에는 숙소형이 좋을 것 같았는데, 우리는 5일에 한 번씩 숙소를 이용하는 ‘캠프&숙소형’을 선택했다.     


우리 팀은 ‘숙소형’과 ‘캠프&숙소형’을 선택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잠자는 곳만 다를 뿐 나머지는 큰 차이가 없었다. 텐트 설치는 쉬웠고, 두꺼운 매트리스와 침낭을 사용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팀원 중에 부모님이 대학 졸업 선물로 여행을 예약해 줘서 왔다는 독일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 때문에 텐트에서 한 번도 자지 못하는, 너무 편안한 아프리카 여행이 되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나와 숙소를 하룻밤 바꾸었다. 나는 그녀의 숙소에서 편안한 밤을 보냈고, 그녀는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자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언제나 즐거운 식사시간


여기아프리카 맞아     


잠비아의 리빙스턴 공항으로 입국했다. 빅토리아 폭포가 걸쳐 있는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복합 비자를 발급받아 국경을 통과해 짐바브웨로 이동했다. 트럭킹을 떠나기 전에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과 잠베지강 근처를 며칠 동안 여행할 요량이었다. 붉은 황톳빛과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강렬한 햇살, 전깃줄보다 더 높이 솟은 선인장, 무성한 초록 숲. 아프리카의 첫 느낌은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로 다가왔다. 머리에 짐을 이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길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원숭이와 국립공원의 야생 동물, 잠베지강에 유유히 떠다니는 하마와 악어, 바오밥나무가 서 있는 풍경을 보며 내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빅토리아 폭포 근처의 바오밥나무

그러나 숙소와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내가 생각하던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호스텔과 호텔은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았다. 대체로 수영장이 딸려 있어서 한낮의 열기에 지친 몸을 쉬기에 그저 그만이었다. 레스토랑의 메뉴에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악어 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스테이크가 있었다. 음식 맛도 훌륭했다. 그런데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우리나라보다 비싼 물가였다.      


달걀 세 개를 사기 위해 천억 달러 짐바브웨 지폐를 지급해야 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짐바브웨 정부는 자국 화폐를 버리고 달러를 통용 화폐로 바꾸었다. 주민들이 사용 가치가 없어진 짐바브웨 지폐를 관광객에게 파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원주민들의 삶과 자본가들의 삶, 여행자의 삶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래프팅, 선셋 투어, 번지점프 등 액티비티는 기본 100달러였는데, 여행자들이 지급하는 돈은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졌다.      

노을이 내려앉은 잠베지강


이게 트럭이야버스야?     


드디어 투어 시작. 아침 일찍 집결지 레인보우호텔로 갔더니, 우리가 20일 동안 타고 다닐 거대한 트럭이 호텔 마당으로 들어섰다. 트럭 같기도 하고 버스 같기도 했다. 시원한 창문이 달린 위쪽은 버스였고, 아래는 트럭이었다. 트럭 아래쪽에는 캠핑에 필요한 물품이 수납되어 캠프사이트에 도착하면 마치 맥가이버 칼처럼 곳곳에서 캠핑 도구가 나왔다. 텐트, 매트리스, 식탁과 의자, 조리용 도구들과 그릇, 가스레인지와 냉동고까지 나왔다. 정말 수납이 잘된 트럭이었다. 뒤쪽이 입구였는데, 개인 사물함으로 쓸 캐비닛도 붙어 있었다. 기내용 캐리어나 배낭을 넣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트럭 실내는 버스처럼 좌석이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고, 앞쪽에는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좌석이 있었다. 보통 24명이 정원인데, 우리가 여행한 1월은 비수기인 여름이라 소규모 그룹이었다. 영국에서 온 친구 두 명, 독일에서 온 두 명의 친구와 신혼여행 중인 부부, 그리고 나와 딸, 딸의 친구까지 총 아홉 명이었다. 세 명의 현지 스텝을 포함한 열두 명이 20일 동안 함께 여행했다. 대체로 2, 30대였고, 50대는 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 온 신혼부부는 나미비아에서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갔고, 그 자리에 폴란드에서 온 50대 부부가 합세했다. 같은 50대의 친구들이 생겨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시원한 창이 매력적인 '노매드 트럭'

      

빅토리아 폭포모시 오아 툰야!     


첫 코스는 빅토리아 폭포였다. 원주민 콜로로족이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의 “모시 오아 툰야Mosi Oa Tunya”라고 불렀던 폭포다.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치솟는 물보라가 마치 연기처럼 하얗게 피어나서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탐험가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폭포의 이름을 붙인 뒤로 ‘빅토리아 폭포’로 굳어졌다. 지금은 입구에 “Welcome to Mosi Oa Tunya Victoria Falls”라고 적힌 것처럼 짐바브웨 정부에서 폭포의 원래 이름을 찾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땅을 흔드는 듯한 소리와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이름이 폭포의 이미지에 걸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픈 식민의 역사가 서린 이름이었다. 언젠가 ‘빅토리아 폭포’보다 ‘모시 오아 툰야’라는 원래의 이름이 더 익숙해질 날을 상상하며 천둥 치는 연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고 통과하는데, 멀리서부터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너무 흥분하지 말고 순서대로 봐야지. 그래야 폭포의 감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리빙스턴 동상을 지나면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주요 위치마다 번호를 붙여두었다. 맨 처음 만나는 곳이 2번 위치였다. 폭포 소리에 흥분해 2번 위치로 달려가는 나를 딸이 만류했다. 2번 위치에서 폭포를 본 후 1번을 보면 감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폭포의 위용은 대단했다. 물보라가 만든 안개가 마치 비처럼 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보라에 젖을 정도였다. 카메라를 꺼낼 수가 없어서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어야 했다. 폭포의 수량은 건기 때와 우기 때가 다르다는데, 건기인 1월의 폭포가 이러한데, 우기 때는 어떠할지 상상되지 않았다.      


도중에 한국인 단체 여행객을 만났다. 여행 중에 만나는 한국인 단체 여행객의 준비성에 놀라곤 했는데,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자와 우의, 우산을 갖춘 모습이 놀라웠다. 여행은 예기치 않은 경험이라고 하는데, 물보라에 카메라를 쓰지 못해도 온몸으로 폭포를 온전히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물보라, 안개비, 햇빛, 무지개, 비바람……. 폭포가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맛보는 것도 여행의 참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연기 같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폭포 

잠비아와 짐바브웨빅토리아 폭포는 어디서 볼까?      


폭포 관람은 잠비아와 짐바브웨 양쪽에서 가능하지만, 비싼 입장료 때문에 대체로 한 곳을 선택한다. 건기에는 잠비아 쪽은 폭포의 물줄기가 약해서 짐바브웨 쪽을 많이 이용한다. 잠베지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경계로 국경이 나뉘는데, 복수 비자를 받으면 자유롭게 두 나라를 오갈 수 있다. 단수 비자를 받으면 국경을 넘을 때마다 20달러, 30달러의 비자비를 내야 한다. 우리는 복수 비자를 받았기에 간단히 서류 작성만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국경을 넘나들며 잠베지강과 폭포 주변의 풍경을 즐겼다. 

     

건기에는 잠비아 쪽 폭포의 상류에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수영장이라 ‘악마의 수영장’이라 불리는 곳인데, 우리가 방문한 2019년 1월에는 수영할 정도로 물이 많지 않아서인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10개월 뒤인 2019년 12월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잠비아 쪽 폭포의 물줄기는 아예 말라 버렸다. 그래서 잠비아에서 폭포를 보려고 한 사람들은 물줄기 없는, 바위 투성이 폭포만 보고 허무하게 돌아온 사람도 있다.   

건기에도 대단한 위용을 보이는 폭포


국경을 넘어서 보츠와나로      


투어의 첫날 저녁은 호텔에서 보냈다. 다음날부터 보츠와나로 이동하며 본격적인 아프리카 탐험이 시작되었다. 보츠와나에서는 또 어떤 일이 기다릴까? 마치 『빨간 머리 앤』에서 매튜의 마차를 타고 ‘초록 지붕’으로 가던 앤처럼, 창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을 보며 아프리카 속으로 들어가는 마음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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