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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Jul 23. 2021

내가 만난 아프리카 02

아프리카의 숨겨진 보물, 보츠와나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습지였다. 수련과 수초 사이로 내려앉은 하늘이 물결에 일렁이는 모습이 마치 파란 물감과 흰 물감을 섞어놓은 팔레트 같았다. 보츠와나의 마지막 여행지, 오카방고 삼각주는 시간과 공간을 잊게 했다. ‘모코로’라 부르는 전통 카누를 타고 오카방고의 수초 사이를 흘러가던 때를 떠올리며 보츠와나를 추억한다.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주 오카방고. ‘모코로’라 부르는 전통 카누를 타고 삼각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아프리카의 첫 캠핑카사네     


빅토리아 폭포에서 출발한 트럭이 국경 지역 카중굴라에 도착했다. 짐바브웨와 보츠와나, 잠비아, 나미비아의 국경이 맞물리는 곳이다. 네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놀랐다. “창밖을 보세요. 기린 무리예요.”라는 가이드의 말에 여행자들이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키 큰 나무의 잎사귀를 뜯고 있는 기린 무리가 평화로워 보였다.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짐바브웨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국경 근처 보츠와나의 대자연 속 캠핑장으로 들어섰다.      


노매드 트럭킹에 합류하면서 ‘캠핑장 시설은 좀 열악하겠지. 먹거리도 부족할 거야. 한 달간 여행하고 나면 몸무게도 몇 킬로쯤 빠져서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사네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내 예상이 빗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츠와나는 캠핑장 시설이 좋아요. 보츠와나 정부의 관광정책 덕분이에요.”라고 가이드 사이마가 귀띔하더니,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과 화장실, 부엌 공간까지 있었다. 더위에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수영장이 있었고, 와이파이 사용도 가능했다.      


보츠와나는 칼라하리 사막이 넓게 펼쳐져 황량한 초원 지역, 사막, 습지대, 염전이 국토의 대부분이다. 척박하지만 아름답다. 보츠와나 정부는 이런 자연환경을 소중한 자산으로 지키면서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하는 정책을 균형 있게 펼쳤다. 많은 여행자를 불러들이는 대신에 적정한 수의 여행자만 받아들여 전문 가이드와 함께 국립공원을 경험하게 했다.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 유명 관광지들과 비교되었다.      


텐트에서의 첫날밤. 독일에서 온 20대의 라리사가 나의 텐트지기였다. 라리사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캠핑을 자주 했다며 능숙하게 텐트를 다뤘다.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았다. 텐트는 2인용이었지만, 세 사람이 사용해도 될 정도로 공간이 넉넉했다. 바닥에는 두꺼운 매트리스를 깔아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과 별이 뜬 밤하늘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음식도 훌륭했다. 아침은 음료와 시리얼, 빵, 과일이 푸짐했고, 점심과 저녁에는 샐러드와 주요리, 후식까지 있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여행자를 위해서는 별도의 재료를 준비했다. 당번을 정해서 가이드와 요리사를 도와 식사를 준비하는데, 우리 팀은 인원이 적어서 식사 당번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내가 여행 내내 식사 도우미를 자청해서 요리사 프란시나를 도왔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맨 처음 하는 일이 텐트 치기다. 처음에는 스태프의 도움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여행자들이 스스로 텐트를 쳤다. 스태프와 여행자가 한마음이 되어 함께 여행 프로그램


코끼리의 천국초베 국립공원     


아프리카의 ‘숨겨진 보석’이라 불리는 초베 국립공원으로 들어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동물이 밀집한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으로만 보던 곳이어서 설렜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흔히 사파리 여행으로 알고 있는, 게임 드라이브와 초베강 유람선으로 동물을 관찰했다.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동물들이 물을 찾아서 강가로 내려오는 건기였다. 우기라서 동물을 만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하마와 악어, 코끼리, 코뿔소, 기린, 영양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즐거움이 컸다.      


게임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에는 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 국립공원 내에서는 동물이 자유로웠고, 인간은 자유롭지 못했다. 사자 무리를 만나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경험을 하며 자연 앞에서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도 실감했다. 사냥을 마친 후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사자 무리를 발견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차량에서 관찰하는데 사자 무리가 갑자기 이동했다. 우리가 탄 차량 곁에서 어슬렁거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잠시 후 초원으로 유유히 사라졌지만, 너무 무서워서 차량 바닥에 주저앉았다.      


게임 드라이브 후에는 유람선을 타고 초베강에 서식하는 동물을 관찰했다. 물속이나 습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하마가 많았는데,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 중의 하나가 하마였다. 하마는 어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으며, 악어를 두 토막 낼 수 있을 정도여서 악어들도 하마 근처에는 얼씬하지 않았다. 코끼리도 난폭한 동물이어서 조심해야 했다. 초베 국립공원에는 12만 마리 정도의 코끼리 떼가 살고 있어서 ‘코끼리 랜드’로 불린다. 한참 짝짓기 철이라 홀로 다니는 수컷 코끼리가 무리 지어 다니는 암컷을 찾아다니며 구애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초베국립공원에 사는 동물은 각자의 공간이 있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공생하는 법을 알았다.      

건기가 시작되면 많은 동물이 물을 찾아서 강가로 내려오는 초베국립공원. 세계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레닛'이 반드시 여행해야 할 최고의 관광지로 꼽기도 한 곳이다.


금 호수마카디카디 팬(Makgadikgadi Pan)의 일몰     


“지금까지 다닌 여행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어디였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곳이 추가되었다. 이름도 낯선 ‘마카디카디 팬’이다. 물과 땅, 하늘이 온통 한 덩이가 되어 붉게 물드는 일몰이 아름다웠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염분이 강한 물이 말라서 진흙처럼 굳어진 소금사막이었다. 곳곳에 웅덩이가 있는, 황량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영양, 여우, 토끼 같은 초식동물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암만 둘러봐도 동물이 먹을 만한 게 없어 보인다고 했더니, “이런 척박한 사막에서는 동물들도 살아내는 것이 만만하지 않아요. 먹이를 찾아서 계속 이동하는 게 힘겨운 일이에요. 생존율이 낮아요.”라는 가이드 사이마의 대답이 따랐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을 한 시간쯤 달렸을까? 우리 눈앞에 소금 호수가 나타났다. 해가 지는 호수 위로 펠리칸이 무리 지어 날았다. “아마도 알코올이 필요한 시간일 거예요.”라며 사이마는 아프리카 맥주, 사바나를 가득 채운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사이마의 철저한 준비에 놀랐다. 서서히 하늘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맥주를 한 병씩 들고 호숫가에 앉았다. 누군가는 혼자서 또 누군가는 같이 온 일행과 노을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트럭킹 스태프들과 함께했다. 그들을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무리가 되었다. 운전기사인 아담과 가이드 사이마, 요리사 프란시나는 호흡이 잘 맞는 한 팀이었다. 세 사람은 활력이 넘쳤다. 흥이 많은 프란시나는 요리할 때면 노래를 흥얼거렸고, 사이마와 아담은 때때로 아프리카 춤으로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그들이었지만, 트럭킹 스태프는 고단한 일이었다. 짐바브웨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21일간의 여행을 반복하느라 트럭과 텐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도대체 가족은 언제 만나는 거예요?”라고 묻자 운전기사인 아담은 일 년에 딱 한 번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열두 살 된 아들의 사진을 목에 걸고 다니며 하루 일이 끝나면 아들과 통화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그였다. 사이마와 프란시나도 비슷한 처지여서 그들이 보여주는 휴대폰에는 아이들의 사진으로 꽉 차 있었다. 살아가기에 척박한 환경인 아프리카에서는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야생 동물이나,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호숫가로 내려앉는 일몰을 보며 여행자인 나도, 그들도 각자의 가족을 떠올리며 한마음이 되었다.      


짧아서 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하늘과 호수가 온통 붉은 일몰의 절정이지만 떠나야 했다. 소금사막을 빠져나오는 길, 웅덩이에 비친 일몰의 마지막 여운을 느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사막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해가 지자마자 온통 어둠이었다. 이정표도 없는 곳을 달렸다.      

마카디카디 팬’의 일몰. 온통 하늘과 호수, 땅이 붉은빛이다.


언젠가 다시보츠와나     


사랑하면 보인다고, 신문을 펼치면 여행지의 기사에 눈이 간다. 보츠와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 “하마와 소, 말 등의 동물이 물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라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보았다. 오카방고 삼각주에 관한 기사였다. 아프리카의 무릉도원이라고 생각했던 오카방고의 물길이 가뭄으로 사라지고, 습지와 진흙에 말라붙은 하마의 사진이 안타까웠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트럭킹 프로그램도 중단되었다. 트럭들도 멈춰 섰다. 환상적인 팀워크를 자랑하던 사이마와 프란시나, 아담이 고향으로 돌아간 지도 일 년이 넘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 나라 밖 여행이 가능하다는 소식에 보츠와나를 꿈꿔본다. 사이마와 아담, 프란시나가 다시 한 팀이 되어 여행자와 만날 수 있기를, 오카방고 삼각주에 물길이 흐르고 수련이 다시 피어나기를 꿈꿔본다. 


수풀(bush)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부시맨’으로 더 잘 알려진 산(San)족. 보호구역 내에서 관광객들에게 고유의 문화를 보여주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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