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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세진 Dec 31. 2018

저는 로고를 이렇게 만듭니다.

오늘의 첫 번째 TMI : 뒤의 이미지는 (누가 봐도) 설정샷입니다.

저는 로고를 만드는 디자이너입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로고들이 존재합니다. 당장 쓰레빠 질질 끌며 집 앞 골목길만 나가도 편의점에 있는 제품들에, 땅에 흩뿌려져 있는 전단지 속에, 바삐 일하고 계신 공업소 직원들 머리 위 간판에까지 세상은 마치 로고 투성이로 보입니다. 현재 저는 UI/UX 디자인을 주로 하는 디자인 팀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브랜딩이라는 분야에 큰 관심과 욕심을 항상 놓지 않고 있습니다. 마침 새해를 맞아 저희 회사에서도 브랜드 디자인을 부분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저 또한 한번 이런 기회를 빌려 제 작업 물들을 정리 해보고 싶었습니다.


로고 <요즘엔 BI나 CI라고 더 자주 불리는>는 기업이나 단체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합니다. 로고의 완성도가 그 기업의 건실함을 나타나는 척도는 분명 아니지만 해당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메시지와 분위기를 생면부지의 대중들에게 전달하기에 그보다 더 적합한 매개체는 찾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세상에 수많은 로고가 존재하는 만큼, 로고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또한 무수히 많을뿐더러 각각의 디자이너들은 작업을 하는 방식 또한 매우 제각각입니다. 백명의 디자이너가 존재한다면 최소 백가지 이상의 디자인 방법론이 존재할 테고, 제 디자인 역시 무수히 많은 디자인 방식 중 하나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술술 읽어 내려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구축해나갑니다 - [MAD Coffee]


멕시코에 위치한 카페 프랜차이즈, MAD Coffee



MAD Coffee는 멕시코 동북부에 위치한 지역인 몬테레이에서 시작된 커피숍 프랜차이즈입니다. 멕시코에서 자란 한인교포이자 건축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라는 다소 흔치 않은 경력의 청년이 창업자로 있는 업체입니다. 경영진의 나이대가 젊은 덕인지 MAD Coffee는 멕시코 내의 젊은 층, 특히 20-30대 초반을 타깃으로 설립된 카페인데 단순히 커피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음악 공연, 미술품 전시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속한 젊은 멕시코 청년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커뮤니티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MAD Coffee에서는 정기적으로 다양한 이벤트들이 열립니다. (출처: MAD Coffee 인스타그램 @mad_coffee_)



사실 MAD Coffee의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약간 걱정했던 부분은 MAD라는 단어가 지닌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거나 부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경영진과 여러 번의 미팅을 통해 MAD Coffee의 MAD는 [광기, 몹시 화가 난] 등의 뜻보다는 [무언가에 미쳐있는 젊은 열정]에 더 가깝고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사회에서의 휴식공간]이 되고 싶다, 라는 메시지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로 결정합니다. 메시지가 명료하면 이제 이 브랜드의 얼굴이 어떻게 빚어질지에 대한 책임은 디자이너의 손에 달리게 됩니다.


비단 멕시코 청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트렌드와 변화에 민감한 젊은 타겟층에게 [문화적 소양을 느낄 수 있는 휴식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우선적으로 모던함이 느껴지는 로고를 제작하기로 합니다. MAD라는 단어가 지닌 강렬함을 부드럽게 완화시키고 모던하면서도 안락한 느낌의 공간임을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명도의 웜 그레이를 기본 칼라로 정했습니다. 그러면서 MAD라는 단어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젊음의 열정과 밝은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산뜻한 개나리색을 또 다른 메인 칼라로 지정합니다.





MAD Coffee의 아이덴티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점으로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멕시코 내의 동종업계 디자인, 멕시코의 문화와 지리적 특성 등에 대해 리서치를 하던 중 아즈텍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직물 등에 사용되는 패턴에서 유독 삼각형이 많이 사용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이 패턴을 전체적으로 사용하는 디자인을 고려했으나 차분함과 모던함을 표현해야 하는 MAD Coffee의 아이덴티티에 맞지 않게 너무 복잡해 보일 것 같아 삼각형만 따로 빼 알파벳 MA를 표현하고 곡선을 추가해 커피잔의 형태를 띠는 심벌을 만들어냈습니다.


MAD Coffee 브랜딩의 초기 디자인 중 하나



로고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카페이다 보니 브랜딩 요소가 포함된 응용디자인들도 같이 나와야겠지요. 명함, 공식 문서 서식, 종이컵과 홀더 등을 뚝딱뚝딱 만들어냅니다.



사장님이 미대출신 건축디자이너면 카페가 이렇게 이뻐집니다. (출처: MAD Coffee 인스타그램 @mad_coffee_)


그리고 MAD Coffee의 메인 컬러인 어두운 웜그레이와 노란색에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블랙톤의 페인트/벽돌과 나무를 이용한 인테리어로 아이덴티티를 유지합니다. 사실 MAD Coffee의 경우 창업자가 건축 디자이너 (그것도 매우 훌륭한) 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쪽으로는 따로 첨언해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아름답게 진행하셔서 하나씩 하나씩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이런 거 핑계 삼아서라도 언제 한번 멕시코는 가봐야 할 텐데요.


몇년이 지난 지금도 로고는 계속 예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MAD Coffee 인스타그램 @mad_coffee_)




2. 이름을 응용해 성격을 표현하는 로고도 제작합니다 -  [Corean Canadian Creatives]


캐나다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인/창작자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 CCC


Corean Canadian Creatives (이하 CCC)는 제가 캐나다에 있을 당시 지인들과 공동 설립하고 운영하던 비영리 단체입니다. 캐나다는 전 세계에서도 손꼽을 만큼 유명한 다문화국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로 분류되는 한인들, 특히나 학연/지연/업무경력 등에서 더 소외될 수밖에 없는 한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끼와 능력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뽐내고 싶어도 어떤 방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어디서 공연하거나 전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허들을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학생 시절 많이 느꼈던 점이었는데 마침 뜻이 맞는 지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미약하게나 한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단체를 2014년에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운영진 중 유일한 디자이너였던 제가 자연스럽게 이 단체의 아이덴티티 작업을 담당하게 됩니다.



우선 CCC라는 단체의 이름에 집중합니다. 네이밍을 할 때부터 시각적으로나 음성적으로 대중들에게 더 쉽게 인지될 수 있도록 Korea를 Corea로 표현하여 의도적으로 같은 알파벳의 반복을 나타내기로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C가 제법 예쁜 형태를 지닌 알파벳입니다. C가 세 번 반복되는 것을 C의 3승으로 표현하고 3승을 뜻하는 영단어인 Cube (정육면체) 위에 좀 더 정제된 형태의 C 세 개를 연결하여 한인들 간의 팀워크/네트워킹/커뮤니티를 표현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단청에는 요런 색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로고에 메인 컬러로 사용된 붉은색과 청색, 주황색은 한국 고유 건축물의 단청에서 많이 사용되는 색상들 중 오방색에 포함되는 색상들을 선택하였고 붉은색은 열정, 푸른색은 프로페셔널리즘, 그리고 주황색은 한국인의 끈끈한 정이 바탕으로 된 네트워크를 나타냅니다.



오늘의 두번째 TMI : 물론 저희는 돈없는 비영리 단체였기 때문에 노트나 레터헤드를 실제로 제작하지는 못했습니다 (시무룩)



CCC는 약 1년 반 정도 잘 운영되었고 그 후 "근데 씨씨씨 발음하기 어렵지 않아? 괜히 욕 같기도 하고....."라는 운영진들 의견에 따라 Corean Creators in Toronto의 뜻을 지닌 Coreators로 단체명을 변경하였습니다. 열약한 환경에서 운영하느라 힘든 일이 많았지만 운영진들끼리 정도 많이 들고 좋은 인맥들도 많이 알게 되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덕분에 언젠가는 꼭 다시 이런 취지의 단체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for all the Corean Creators in Toronto




3. 한 가지 도형이 반복적으로 만들어가는 기하학적 구조를 활용합니다 - [Smart Cosmos]


IoT관련 신생 기업, 스마트코스모스



스마트 코스모스는 주택에 사용되는 IoT 제품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는 신생 기업체입니다. IT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smart라는 단어와 우주공간/세계관을 뜻하는 cosmos가 합쳐진 단어로, IoT로 구축되어 있는 스마트한 세계를 만들겠다는 꽤나 직접적인 네이밍 덕분에 브레인스토밍부터 실무까지 스무스하게 진행될 수 있던 프로젝트입니다.


이 코스모스 아니에요.... 이지만 사실 저 코스모스도 로고에 사용했습니다.


'스마트'란 단어는 시각화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있으니 코스모스라는 단어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로고가 너무 복잡한 형태를 띠지 않도록 하기 위해 '코스모스'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심플한 형태의 도형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고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행성, 천체 궤도, 자기장 등 우주와 어울리는 요소들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원'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우선 큰 원 하나를 만들고 그 원이 작은 원들로 나뉘는 형태를 취하도록 합니다. 우주를 뜻하는 cosmos와 동음 이의어인 꽃 코스모스를 표현할 수 있도록 원들을 겹쳐 꽃잎 여덟 개의 이미지가 보이도록 합니다. 잘게 나누어진 원 안에 코스모스 꽃잎의 형상이 보임과 동시에 얇은 선들은 IoT 제품들은 하나로 연결해주는 인터넷의 네트워크를 표현합니다.


명함에는 블랙 100%에 마젠타100%를 입혀 아이덴티티 컬러가 돋보이도록 합니다. ㅇ ㅏ 예쁘네


메인 컬러의 경우 처음에는 IT업계에서 통상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푸른색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푸른색 일변도의 동종업계 BI들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마젠타 100%의 색상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로고와 찰떡같이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마젠타 100%는 인쇄 시 흰 바탕과 검은 바탕을 가리지 않고 어느 배경에서나 눈에 잘 띄는 명도를 가지고 있어 활용하기에 용이합니다. 스마트코스모스는 아직 본격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업체라 지금보다는 추후 디자인으로 풀어나갈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4. Simple is the best - [Second Space Inc.]




마지막으로 세컨드스페이스, 현재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입니다. 디자이너, 프런트엔드 & 백엔드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스타트업을 위한 올인원 디자인/개발 에이전시'를 표방하는 곳입니다. 기존의 로고를 약 2년 정도 사용했고 올 초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 겸사겸사 로고도 리디자인하게 되었습니다.





리브랜딩을 하는 경우 [a. 기존의 룩앤필을 버릴 것인지 / b. 기존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업데이트할 것인지] 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하게 됩니다. 세컨드스페이스의 초기 로고는 뛰어난 디자이너이신 대표님께서 직접 만드셨기 때문에 (굽신굽신) b 옵션으로 진행하도록 합니다. 우선 creative design agency라는 텍스트가 정보과잉으로 느껴지므로 과감히 삭제하고 로고타입과 워드마크를 손보기로 합니다. 세컨드스페이스 로고에 사용된 심벌은 '4차원으로 표현된 정육면체'로 불리는 초입방체를 단순화시킨 이미지입니다. 이 초입방체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포함된 공간을 제작한다 / 웹 상의 제2의 공간을 제작한다 라는 세컨드스페이스의 철학을 설명하는 요소입니다. 세컨드스페이스의 브랜드 스토리는 추후 별개로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해볼까 합니다.



초입방체가 뭐냐하면 이런 녀석입니다. 사실 더 물어보셔도 과학에 대한 식견이 좁아 이걸 더 어떻게 설명드려야할지



기존 로고의 경우 다면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얇은 네 개의 선이 각 꼭짓점에 위치하고 있지만 명함 처럼 면적이 작은 인쇄물에서 그 선이 잘 구현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 단점을 보완하고자 네 개의 얇은 선을 삭제하여 심플함을 더 강조하되, 로고의 선 두께를 두껍게 수정하여 사각형 안에 네거티브 스페이스로 된 사각형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합니다.



이제 작게 인쇄해도 번지거나 흐리게 되는 일이 없습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저는 젠틀한 디자인 괴물입니다.



그리고 명함 또한 직원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는 또 다른 '공간'으로 디자인하여 직원마다 각자 다른 텍스트와 사진을 입력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명함 간의 통일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미지 선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통일성을 주기 위한 장치로 공간 space의 중의적 의미인 우주의 사진을 흑백으로 삽입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음 직원이 생기면 어떤 명함이 만들어질지 벌써 두근두근합니다.
오늘의 세번째 TMI : 사실 대표님 성함이 이우주라서 세컨드스페이스가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디자인은 계속됩니다.

앞으로 또 어떤 로고가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앞으로 뵙게 될 미래의 클라이언트 님들과 모자란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브런치 유저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대표님 선에서 결재가 떨어지지 못한 비운의 기해년 연하장 시안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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