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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제 Dec 31. 2020

<반쪽의 이야기>
대신 쓴 편지 위에 흐르는 변주

This is not a love story

*본 리뷰는 <반쪽의 이야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라노'. 원작을 몰라도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시라노는 비록 코가 유난히도 크고 못생겼지만 문무 모두에 능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록산을 사랑하지만, 록산의 마음은 그가 아닌, 극장에서 단 한번 마주친 게 전부인 크리스티앙을 향해 있다. 시라노는 자신의 감정 대신 록산을 위한다. 못생긴 코때문에라도 그녀 앞에 연인으로 나설 수 없으리라 일찌감치 체념한 덕분이다. 작문에 영 젬병인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말을 엮어 전하는 편지 덕분에 록산의 크리스티앙을-정확히는 크리스티앙을 대리한 시라노를-향한 사랑은 깊어진다. 이야기는 고조된다. 





<반쪽의 이야기>의 기본 인물 설정도 이와 비슷하다. 주인공인 앨리는 작문에 두각을 나타내는 조용한 학생이다. 이 재능을 이용해 숙제를 대신해주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 소문을 듣고(?) 미식축구 선수인 폴이 찾아온다. 누구나 미인이라 칭하는 애스터 플로렌스를 위해 대신 편지를 써달라고. 처음엔 사적인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하지만, 전기요금 체납으로 당장 단전 위기에 직면하자 그 요금만큼인 $50를 대가로 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일반적인 하이틴 로맨스라면 편지 수신인은 중요치 않게 되고, 편지를 매개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감정이 싹튼다. 그렇게 손쉽게 해피엔딩으로 달려간다. <반쪽의 이야기>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This is not a love story. 


아직 모르겠다면 말인데...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원하는 걸 얻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남짓, 애스터가 처음 등장하고 그녀를 향한 앨리와 폴의 시선을 비춰주며 동시에 앨리의 목소리로 위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적극적으로 천명한다. 이 영화는 당신이 생각하는 평범한 하이틴 로맨스가 아닐 거라고. 


영화 속 가장 두드러지는 서사는 앨리의 성장이다. 그간 딱히 친구라고 할 동급생도 없고, 집과 학교를 반복하며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는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하교 후엔 아버지와 저녁을 먹으며 영화를 보거나 숙제를 한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집안 가득 드리운 적막을 잠시나마 걷어낸다. 이 단단한 앨리만의 영역에 폴이 조금씩 들어온다. 폴이 그렇게 '타코 소시지'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앨리는 마을에 살게 되었는지 대화를 나누면서. 


앨리는 관계를 귀찮아하거나 피하려 했다기보다는 인생에서 별로 중요치 않은 변수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을 살아가며 자신의 몫을 해내면 된다고 말이다. 선생님이 네가 지망하는 대학에 입학한다면 너무 아까울 것 같다며 원거리에 있는 학교를 권유하자, 집에서 통학할 수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있는 학교라 그럴 것 없다고 일축한다. '네, 그리 좋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죠.' 주어진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는 성격이라 짐작 가능하다. 그러니 오롯이 혼자인 학교생활에도 감정 동요가 거의 없다.  


타인이 경계를 넘도록 용인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은 두 가지다. 극 초반, 빈번하게 등장하던 앨리의 내레이션과 편지 낭독 대신 앨리와 폴의 대화를 중심으로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 동계 탤런트쇼에서 앨리의 연주 직전, 앨리를 괴롭히려 피아노 줄을 끊어놓은 녀석들 때문에 순간 당황한다. 그때 폴이 기타를 무대 위로 민다. 이내 기타를 매고선 객석을 향해 마주 앉아 조용히 자작곡을 부른다. 짧은 연주 뒤, 박수가 터져 나오고 쇼가 끝난 후 뒤풀이에선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꽤나 기분 좋은 균열이다.





But about loneliness. 



앨리, 폴, 애스터 모두 하나같이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반응을 일으키며 외로움을 견딘다. 누군가의 곁에 가기도 하고, 때론 그 사람을 제게 당기면서. 


폴은 식당을 운영하는 가족의 셋째 아들로, 전통을 자랑하는 소시지에 변형을 가해 '타코 소시지'라는 신메뉴를 런칭하고 싶어 한다. 나아가 자신만의 메뉴로 가게를 차리는 게 폴의 꿈이다. 부모님은 왜 멀쩡한 소시지에 헛짓거리를 하느냐며 핀잔이니 "좋은 아이디어야. 계속해봐!" 같은 격려를 기대할 수 없다. 지역지 기자가 신메뉴를 시식하고 호평 기사를 내주길 바랄 뿐이다. 


애스터는 지역 부호의 아들과 남들이 보기에 평온해 보이는 연애를 하고, 그가 청혼하면 결혼할 생각도 하고 있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아직도 그림에 미련을 갖고 있으면서 포기해버렸다. 처음 그린 선을 망쳐버릴까봐. 그 두려움에. 


못지않게 고독한 앨리가 이 두 사람을 어루만진다. 폴 몰래 지역지 기자들에게 타코 소시지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내고, 애스터에게는 폴의 이름으로 보내는 편지 속에서 누구와도 하지 못했을 예술에 대해 대화를 이어간다. 텅 빈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독려하기도 하고 그림 앞에 두려워하는 마음에 깊이 공감한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삶의 조각이 되어있다, 이미. 


바로 그 이유로 몇 년 뒤, 앨리가 아이오와에서 돌아왔을 땐 애스터와 나란히 걷게 될 거라 확신한다. 





마지막 장면. 앨리는 집 근처 EW 대신 아이오와에 있는 그리넬 대학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앨리가 애스터를 좋아하는 마음을 알게 됐어도 여전히 좋은 친구인 둘은 일시적인 작별을 고한다. 열차는 서서히 가속이 붙어 스쿼하미시에서 멀어지는데, 어쩐지 앨리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폴이 최대 속력으로 열차를 바짝 쫓고 있다. 


처음으로 폴이 만든 타코 소시지를 먹던 날, 함께 봤던 영화에서도 여자는 열차를 타고 떠나고 남자는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 애틋하게, 마지못해 이별한다. "기차 쫓아가지 마." 그 장면을 보며 앨리는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어차피 뛰어봤자 이기지도 못할 텐데 뭐하러, 멍청이 같이. 


같은 상황, 달라진 앨리는 울면서 웃는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때론 기꺼이 멍청이가 되길 감수하는 것과 같은 말이란 걸 이제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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