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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제 May 22. 2021

냉소 대신 낙관을 묻는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How can I help?"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 잠들기 전 정작 컨텐츠를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뭘 보면 좋을지’ 뒤적거리던 날이었다. 이걸 볼까, 저걸 볼까 재던 때 ‘전미 시청률 2위’라는 문구를 내건 홍보 페이지를 메인 화면에서 본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정주행을 시작했다. 수많은 메디컬 드라마를 봤지만 가장 사랑하게 된, <뉴 암스테르담> 얘기다.


그간 숱하게 봐온 메디컬 드라마의 문법은 이렇다. 좌충우돌 사고를 치는 주인공이 있고, 이 주인공과는 달리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의 동기가 있다. 이 둘은 처음부터 친구일 수도 있고 사건이 진행되며 진정한 우정을 쌓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이 좋은 의사로 성장하도록 돕는 멘토와 조력자가 있다.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을 방해하는 안타고니스트도 존재한다. 이익을 우선시하며 이들의 소속 분과를 없애거나 축소하려는 병원장, 이사장 혹은 과장 등으로 묘사되는 인물 말이다. 안타고니스트의 방해 속에서도 환자를 아끼며 온 마음으로 의술을 다하는 주인공과 동료들은 그들을 몰아내고 병원이 병원다울 수 있게 지켜낸다.


큰 틀에서 <뉴 암스테르담>도 이 문법을 따른다. 주인공은 병원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그의 곁엔 기꺼이 함께 하려는 동료들이 있다. 재정 문제를 상기시키며 그의 개혁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사회와 병원장도 함께 인 채.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신선한 설정과 몇 가지 요소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1.     “How can I help?(제가 뭘 도우면 될까요?)”, 의료팀장 맥스 굿윈

일반적인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은 레지던트이거나 실무진으로서 수술을 집도하는 주치의지만 뉴욕 공립병원 뉴 암스테르담의 맥스 굿윈은 의료팀장으로서 병원 의료시스템 개혁을 목표로 한다. 그는 부임 첫날부터 전 직원을 불러모아 흉부외과 의사 전원을 해고하겠다는 폭탄 발언을 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와이셔츠에 타이, 구두 대신 병원을 종횡무진 할 수 있게 러닝화에 수술복 차림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How can I help?(제가 뭘 도우면 될까요?)”


그를 돕는 것은 자기 자신과 동료, 그리고 평범한 환자들이지, 다른 멘토가 아니다.




2. 미국 의료체계 문제를 고민한 흔적

미국에 한 번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미국 의료체계 문제점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개인이 대부분 책임지고 결정해야 하는, 과도한 의료비 부담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는다 한들 순식간에 계층 하락을 겪어야 하는 불합리함을 말이다. 분명 보험이 적용돼야 하는 질병이지만, 전례가 없단 이유로 보험사에서 인정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 등을 통해 계속 묻는다. ‘이것보다 더 나아질 수 있지 않나요?’ 라고. <뉴 암스테르담>은 쉽게 도덕주의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미국 의료체계의 허점을 고발한다. 화두만 던지고 그치는 게 아니라, 때론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대안까지 제시하면서.




3. 의사로서 도울 수 없을 땐 ‘인간으로서’

<뉴 암스테르담>은 휴머니스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맥스와 팀을 이루는 각 부서 과장들은 의술만으로 환자를 치유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맥스처럼 ‘How can I help?’가 내면화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환자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건 그들 역시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맥스는 암을 앓고 있다. 헬렌은 혼자서라도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만, 임신 가능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난임이다. 내담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따스하게 치료하는 이기는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소하고, 자신의 가치는 오직 남을 돕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믿는다. 이외에도 주요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완전하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 환자를 돕는다. 의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때론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는 뉴욕 공립병원 뉴 암스테르담의 의사들에게 매료되는 건 인간을, 더 나은 세상을 믿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손쉬운 냉소 대신 낙관을 택한 이 드라마를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기를.



덧1. <뉴 암스테르담> 시즌 1, 2는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며 미국 현지에서 3월 첫째 주부터 시즌 3 방영을 시작했다.

덧2.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병원인 Bellevue Hospital에서 의료팀장(Medical Director)으로 근무했던 의사의 경험담이 <뉴 암스테르담>의 기반이 되었다. (<Twelve Patients: Life and Death at Bellevue Hospital>, Eric Manheimer) 아쉽게도 번역본은 없지만, 드라마 정주행 후 현재는 이 책을 독파 중이다. (TMI!)

덧3. 작년 초, NBC는 시즌 5까지의 제작 계획을 확정 지었다. 향후 2~3년간은 시즌 캔슬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감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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