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사라진 음악영화의 레퍼런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아직 살아있는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다. 하지만 주인공이 되는 모리시의 허락 하에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스미쓰와 모리시의 노래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모리시의 말투와 단어는 따라 할지언정 모리시의 말을 인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모리시가 사랑했던 곡들로 사운드트랙을 채웠다. 그리고 영화적 상황에 스미쓰와 모리시의 음악을 은유적으로 활용했다.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곧 그 흔적을 찾는 일이었다. 영화의 한 꺼풀을 벗기면 다른 노래가 들린다.
영화의 제목은 이 곡의 가사를 따왔다. "영국은 나의 것, 그리고 날 부양해야 하지(England is mine, and it owes me a living)" 영화의 후반부에 모리시의 상사가 "I don't owe you a living"이라는 말을 하며 화내기도 한다. 영화에는 모리시 집 근처의 철제 다리 밑이 자주 나오는데 이 곡에서도 "Under the iron bridge we kissed"라는 가사로 등장하는 장소다. 무엇보다 영화는 이 곡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간다.
첫 시퀀스가 끝난 후 공연장의 모리시. 시시껄렁한 밴드가 무대에 올랐고 스카보로 페어처럼 들리는 곡을 연주한다. 모리시는 노트에 혹평을 끄적이고 있다. 모리시가 입은 티셔츠는 New York Dolls. 모리시는 유년기부터 지금까지도 New York Dolls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있다. 드문 일이다. 이 장면에서 모리시가 입은 티셔츠에서 그의 고집스러운 취향이 드러난다.
공연이 끝난 뒤 다리를 건너는 모리시와 앤지. 모리시가 "내 생각엔 인생에 더..."라고 말하는 순간 불량배들을 발견한 앤지가 그의 말을 끊는다. 이 대사는 Handsome Devil의 가사인 "인생에는 책 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있지, 그런데 그 이상은 아냐(There's more to life than books, you know, but not much more)"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모리시의 방에 도착한 앤지가 책을 펼친다. 1960년대 맨체스터에서 있었던 무어스 살인사건을 다룬 책. 앤지가 죽은 후에는 모리시가 이 책을 열어본다. 모리시는 이 책을 읽은 뒤 훗날 Suffer Little Children이라는 곡을 썼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을 직접 인용한 가사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범죄 혹은 범죄자에 대한 모리시의 기이한 집착을 보여주는 곡 가운데 하나다.
영화는 '세상을 바꾼 공연'으로 잘 알려진 1976년 Sex Pistols의 맨체스터 공연도 다룬다. 모리시가 이 공연의 관객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공연 자체보다 모리시가 린더 스털링과 버즈콕스를 만나는 순간에 집중한다. 모리시와 린더의 우정은 여전히 깊다. 린더는 모리시를 위해 이 곡의 백보컬을 맡았다. 팬들은 이 곡을 포함해 스미쓰/모리시의 몇몇 곡을 두고 린더 스털링에 대한 곡일 것이라 추측한다.
모리시와 린더가 묘지의 벤치에 앉아 여러 작가를 인용하는 장면. 모리시는 실제로 린더와 묘지에서 만나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그때의 경험이 그대로 이 곡에 들어가 있다. "두렵게도 화창한 날, 그래서 난 널 묘지의 문에서 만나지. 키츠와 예이츠는 네 편, 반면 와일드는 나의 편." 영화 속, 린더의 조언을 듣다 오스카 와일드를 찾아낸 모리시의 흥분에서 "내 것과 같은 열정(passions just like mine)"을 읽게 된다.
린더가 모리시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모리시의 이 곡이 연상된다. 예기치 않은 방문("Why do you come here")과 방을 잠깐 비운 사이 몰래 읽는 일기장("You had to sneak into my room just to read my diary"). 모리시는 이 곡에 강한 성적 암시를 남겼지만 린더와 모리시의 관계가 그런 성질은 아니다. 어쩌면 곡에 담긴 수치심은 크리스틴이 모리시의 일기를 뺏어 읽는 장면에 가까울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린더. 린더가 런던으로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리시는 곧장 술을 찾는다. 린더의 성공을 축하하기보다는 외로움, 질투 같은 감정에 휩싸인 모습이다. 그는 아마 린더처럼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을 더는 찾지 못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넌 남겨져야 했던 이들의 눈에 이는 질투를 보았던 건지." 스미쓰의 곡에서 성공을 찾아 런던으로 떠나는 상대에게 던지는, 뼈 있는 말은 영화 속 모리시의 감정을 그대로 설명해준다.
모리시가 빌리와 다시 만난 다음 등장하는 음악은 Send Me The Pillow You Dream On. 스미쓰는 이 곡의 제목을 가져와 Some Girls Are Bigger Than Others의 가사로 썼다. 어떤 차이와 위계를 고약하게 반복하는 곡의 마지막에 묘한 낭만을 더하는 감초다. 영화는 스미쓰 가사의 원전을 다시 가져와 사운드트랙으로 썼다.
이 곡은 맨체스터에서의 지긋지긋한 일상이 주는 배신감을 모리시 특유의 빈정거림으로 묘사한다. "따분한 동네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 동네가 널 끌어내리고 있어. 그리고 모두는 그들의 삶을 살아야 해. 그리고 신은 내가 내 몫을 살아야 한단 걸 알지." 영화는 이 절의 구조처럼 맨체스터의 비 내리는 풍경과 좌절 이후 심연에 빠진 모리시의 모습을 병치한다.
조니 마의 기타가 모리시의 타자기 소리와 만난다. 영화는 그렇게 스미쓰의 시작을 재현한다. 물론 조니 마의 기타 솔로는 가상의 곡이다. 하지만 스미쓰의 팬이라면 이 곡에서 스미쓰의 흔치 않은 연주곡을 떠올릴 것 같다. 제목은 '격렬하게 동요하다'는 뜻이지만 사실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을 비튼 말장난. 제목 명명 외에는 모리시의 공헌이 전혀 없는 곡. 모리시가 타인을 자신의 삶에 들이는 흔치 않은 영화적 순간이 너무나 저평가된 이 곡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