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노는 모리시를 사랑한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는 많은 곡이 실리지 않았다. 이 가운데 모리시의 곡이 두 개다. 뜻밖에도 마블 영화에서 모리시의 음성을 만나게 된다. 영화에는 세 번 나온다. 루이스가 스캇에게 전화를 걸 때 스캇의 휴대폰 벨소리 Everyday Is Like Sunday가 두 번 울린다. 그리고 루이스가 진실의 약을 맞고 할머니 얘기를 꺼낼 때 First Of The Gang To Die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미국인 히어로에게 라티노 사이드킥이 얽히는 순간 영국 가수의 노래가 엄습한다. 특히 루이스의 할머니 얘기는 흥미롭다. 아부엘리따(할머니의 애칭)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주크박스에는 모리시의 노래밖에 없어서 모리시 노래만 틀어주지만 누가 불평이라도 하면 할머니가 "아디오스!"를 외친다는 것. 루이스의 플래시백 장면에 담긴 주크박스에는 정말 모리시의 곡들만 빼곡하고 1990년대 초반쯤 될 것 같은 모리시의 곱고 느끼한 얼굴 그림이 걸려 있다. 왜 멕시코 이민자인 루이스의 할머니는 영국 가수 모리시의 노래를 그토록 사랑할까. 그것도 오랜 기간 인종주의자 의혹, 이민자 혐오 논란에 휩싸여 있는 그 가수를.
영화는 모리시를 사랑하는 루이스 할머니를 통해 멕시코 이민자의 스테레오타입을 재현했다. 왜냐면 미국의 멕시코 이민자들은 진심으로 모리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루이스 할머니의 모리시 주크박스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사랑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누군가를 왜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듯이 모리시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도 뚜렷한 이유가 없다. 많은 음악 칼럼니스트나 팬들이 그 근원을 찾으려 했지만 모범답안은 없다. 워싱턴포스트의 2014년 칼럼 "왜 멕시코계 미국인들은 그토록 모리시를 사랑할까"는 몇 가지 이유를 든다.
ㅡ버림받음과 거절당함의 정서를 주로 다루는 멕시코 란체라 음악과 정서를 공유한다.
ㅡ멕시코계 미국인들에게 문화적 소속감과 모국에의 그리움을 탐구하는 그의 노래는 별다른 의미가 있다.
ㅡ멕시코의 정치적 상황, 가톨릭주의, 마치스모 문화에서의 억압과 관련이 있다.
틀린 말은 없다. 예컨대 Hand In Glove 같은 곡은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과 억압에 저항하는 연가를 한참 부르다가도 마지막에 달해서는 황당하게도 "나는 아마 그대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라는 체념으로 곡을 끝마친다. 끈질긴 구애와 어김없는 패배를 낭만적으로 부르짖는 The More You Ignore Me, The Closer I Get도 모리시가 아닌 가수의 노래에선 찾기 어려운 전개다. 아니면 Let Me Kiss You의 가사를 멕시코 이민자의 마음으로 읽어볼 수도 있다. "미국 전역을 갈지자로 돌아다녔지만 안식처를 찾을 수 없었어요. 하, 당신의 어깨에 기대 울어도 될까요. 당신이라면 뭐든 두 번씩은 해볼 거라던데요. 눈을 감고 당신이 육체적으로 흠모하는 이를 떠올려보세요. 그런 다음 제가 당신께 키스하게 해주세요."
이런 구차함과 소외감은 오래 들어주기는 힘들더라도 때로는 기대고 싶은 어깨가 된다. 아마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느끼는 이민자 정서가 모리시의 절망 혹은 단념에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이민자 2, 3세 청소년들이 방탄소년단을 듣거나 동구권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들이 디페쉬 모드를 듣는 것처럼, 치카노들도 그들 것이 아닌 것에서 안식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모리시도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라틴계들은 감정으로 가득 차있다. 그게 웃음이든 눈물이든 터트릴 준비가 되어 있고 그들의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는 진심으로 그들의 사랑을 이해했다. Mexico라는 곡으로 노골적인 화답을 보내기도 했다. "멕시코인으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로 한없는 사랑을 보낸 적도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루이스 할머니의 레스토랑 장면 가운데 흘러나오는 First Of The Gang To Die는 좀 더 은근한 사랑의 고백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라틴계 갱에 대한 곡. 헥터 혹은 엑또르는 "부자에게서도, 거지에게서도 훔쳤고, 그리 부유하지 않은 이에게서도, 매우 가난한 이에게서도 훔쳤다. 그리고 그는 모든 마음을 빼앗아 갔다." 모두에게 공명정대하게 가혹한 모리시도 헥터처럼 모든 치카노들의 마음을 훔쳤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