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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Nov 08. 2018

노지 감귤 시작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저녁에 뉴스를 켜면 전국 방송이 마무리되고 스포츠뉴스를 시작하기 전에 제주 지역 방송이 짤막하게 나온다. 두어 번째 뉴스 꼭지로 현재 감귤 시세가 나온다. 올해 작황이 어떻고 수매 시세가 어떻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정도로 제주도에서는 '감귤' 이 아주 중요하다.


중요한 존재지만 정말 흔하게 널렸다. 차를 타고 나가보면 이면도로 옆에도 귤나무가, 6차선 도로 옆에도 귤나무가 있다. 주택가 골목을 걷다 보면 정원수로 심어둔 귤나무를 본다. 멀리서 봤을 때 그냥 나무인가 싶었던 것도 10월이 되어 노르스름한 열매가 달리는 걸 보고 귤나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제주도 토박이들은 돈을 주고 귤을 사 먹지 않는다. 부모님이, 형이 혹은 사촌 중에 누군가는 귤 과수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품성이 좀 떨어지는 '파치'귤을 겨우내 받아서 먹기 때문이다. 


처음 제주도에 와서 카페나 식당에 가면 카운터나 문 근처에 파치 귤을 담아두고 원하는 만큼 집어가라는 문구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니 이걸??' 하며 주머니에 예닐곱 개를 쑤셔 넣고 몇 개를 더 가져갔었다. 이게 웬 횡재냐며 열심히 까먹었는데.. 저녁을 먹으려고 들른 또 다른 가게에서 또 파치 귤을 가득 담아 넣은 콘테나(컨테이너 사투리, 플라스틱 바구니다)를 봤을 때 알아차렸다. '썩히느니 누구든 가져가서 드셔~'


식당 카운터나 입구에 놓여있는 비상품 귤. 얼룩덜룩 못생겼지만 맛은 좋다.


업무차 서귀포에 있는 감귤 선과장에 간 적이 있었다. 각 과수원에서 따온 귤을 감귤협동조합(줄여서 감협)이 운영하는 선과장에 모아 두고 크기 선별-세척-포장 작업을 해 전국으로 나간다. 선별 전 콘테나에 담여 있는 귤은 비료와 먼지가 붙어 희끗하지만 세척 및 왁스 작업이 끝나고 나면 아주 반질반질한 윤이 나는 얼굴로 상자에 담겨 나온다. 

 

석회비료와 먼지가 붙은 귤을 세척기에 넣고 돌리면 우리가 만나는 반짝반짝한 귤이 된다.


선과장 직원분이 이거 한 번 먹어보라며 주셨던 귤이 있다. 아기 주먹만 하게 작고 껍데기가 오돌토돌한 귤이 었는데 껍질을 까서 한 입 먹어보니 아주 달콤한 귤이었다. 일명 '꽃귤'이라고 부르는데 품종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나무마다 몇 개씩 열리는 아주 달콤한 귤이라고 했다. 먹어보니 귤이 아니라 '뀰'이었다. 아는 사람들만 먹는 귤이라 그런지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피부는 이래보여도 아주 달고 맛있는 꽃귤


지난달에 서울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 '타이벡 감귤 초특가'라며 감귤을 팔고 있었는데 장을 보던 사람이 귤을 고르며 '타이벡 감귤? 일반 귤이랑 다른 특수 품종인가 봐.'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파는 쪽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를 좀 더 준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우스, 타이벡, 노지 등등.. 감귤은 어떻게 키웠는지 재배 방식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다르다. 


한여름에 나오는 귤은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하우스 감귤'이다. 관리가 까다로운 편이라 몸값이 너무 비싸고 귤 특유의 새콤함이 떨어져 나는 잘 사 먹지는 않는다. '여름인데 귤이 꼭 먹고 싶다, 제주에 왔는데 그래도 귤은 한 번 사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안이 될 수 있겠다. 


타이벡 감귤은 노지에서 키우는 감귤나무 아래에 '타이벡'이라는 특수 천을 깔아놓고 키운 감귤이다. 이 천은 빛을 반사하는 특수재질이라 모든 열매에 골고루 빛을 보내 더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 특수 천이 물을 막아주어 감귤나무가 물을 많이 빨아들이지 못하게 해 과실의 당도가 더욱 높아진다고 한다. 수확 시기가 노지 감귤보다 빨라서 좀 더 일찍 맛볼 수 있다.


노지 감귤은 말 그대로 밖에서 키워 제철에 수확하는 감귤이다. 5월에 하얀 귤꽃이 피고 지면 그 자리에 초록색의 열매가 맺히고 여름을 지나 몸집이 점점 커진다. 9월쯤엔 진한 초록색에서 연두색으로 변하다가 10월엔 얼룩덜룩 노오란 색으로 변한다. 귤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10월쯤엔 그 새콤한 맛이 기억나 입맛을 다시며 귤밭을 지나곤 한다. 

지난 주말 방문한 식당 바로 옆에 있던 감귤밭. 귤이 엄청 주렁주렁 열렸다.


제주도에 있다 보니 종종 어디서 사 먹어야 하냐는 질문을 받는데 농법이며 관리 방식이 거의 다 비슷하기 때문에 제주도 어느 과수원이든 바로 따서 보내주는 곳이 제일 좋다. 수확 후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증발되면서 귤이 질겨진다. 귤 꼭지를 보면 싱싱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오픈마켓에서 파는 너무 싼 상품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농부가 아니라 중간 마진을 먹는 벤더들이 판매하는 게 많다. 조금만 찾아보면 농장에서 직접 온라인으로 직거래 주문을 많이 받기 때문에 둘러보고 괜찮다 싶은 걸 주문하는 편을 추천한다. 그것도 귀찮다면 동네 과일전문점에서 추천을 받아 시식을 해본 후 사 먹는 게 가장 속편하다.


사온 귤을 오래도록 신선하게 두고 먹으려면 작업이 좀 필요하다. 택배로 감귤을 받으면 상자를 뒤집어 개봉하는 편이 좋다. 감귤은 과피가 무르기 때문에 맨 아래에 있는 귤은 오면서 터지거나 상했을 수 있다. 요것들을 먼저 골라내 먹고 남은 귤은 소금이나 식초를 탄 물에 담가 둔다. 과피에 묻은 이물질이나 식용 왁스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건져내서 물기를 제거하고 먹을 만큼 소분해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두면 오래도록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이때 조금이라도 멍들거나 과피가 찢어진 귤은 제거해야 한다. 자칫하면 곰팡이가 펴 다른 귤도 상할 수 있다.


며칠 동안 미세먼지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비가 내려 사람들이 반가워하고 있다. 나도 미세먼지 씻어주는 비가 반갑긴 하지만 한참 귤 수확할 시기에 내리는 걸 보면 한 편으로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참 제주도에 살고 있는 게 맞구나 싶기도 하고.. 




p.s. 그해 첫 귤을 먹을 때면 항상 재주소년의 <귤>이란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우연히 본 영상인데 초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뮤직비디오.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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