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에서는 '땍땍한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2016년 1월 인권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제이슨이다. 제이슨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퀴어 커뮤니티에 첫발을 디딘 아가레즈였고 호기심 천국이었다. 수업 뒤풀이 자리에서 마주 앉은 제이슨은 궁금한 게 많은 나에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상냥하게 설명해주었다. 제이슨을 다시 만난 것은 올해 3월, 1년 만에 만나 덥석 퀴어인컴퍼니 인터뷰 섭외 요청을 했음에도 흔쾌히 응해준 그의 직업은 콜센터 상담원이다. 하지만 제이슨이 처음부터 콜센터에서 일한 것은 아니다. 그에겐 건설회사에 2년 동안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건설회사 일은 너무 안 맞았어요. 억세고 마초적인 곳이었거든요. 거기서 일하면서 ‘너는 왜 이렇게 계집애 같냐’ 이런 말도 많이 들었고요, 땍땍한 척(남성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게이 은어)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가 일했던 건설회사에는 그의 또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마다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나이도 어린 게 뭘 아느냐는 식이었다. 제이슨은 힘들게 버티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공백기를 길게 가지며 고민했다.
일을 쉬고 있던 그에게 콜센터 상담원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마침 옛날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평소에 제가 아는 걸 남들에게 설명해주는 걸 좋아하다 보니 말하는 것도 부담 없고 잘 맞겠다 싶어서 하게 됐죠. 실제로도 적성에 맞았어요. 센터에서 내부 만족도 평가를 하는데 제가 입사 2~3개월 만에 저희 팀에서 1~2위를 했거든요.”
콜센터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국번 없이 114부터 각종 쇼핑몰의 고충 상담 콜센터까지. 제이슨이 몸담았던 곳은 전자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기술지원을 담당하는 콜센터였다. 고객들이 제품을 사용하다가 작동이 안 된다거나 고장이 났다거나 사용상의 궁금점이 생겼을 때 전화 상담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제이슨이 처음 콜센터에 입사했을 땐 교육부터 한 달가량 받았다. 기술지원이라는 업무 특성상 배워야 할 게 많았다. 콜센터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응대 자세와 멘트, 응대 과정에 대해 오래 배웠고 제품에 대한 정보도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제이슨에게 들은 콜센터 응대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전화가 오면 맨 처음에는 인사, 그다음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듣고 공감을 표현합니다. ‘네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그 뒤에 필요한 설명을 해주고 마지막엔 ‘더 필요하신 게 없으신가요?’ 여쭤본 뒤 마무리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일반 콜센터에 전화했을 때 상담원분들이 말씀해주시는 것들이랑 제가 배운 과정이 거의 비슷했어요.”
제이슨은 이번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콜센터에서 보고 들은 여성혐오. 남성인 제이슨은 전화상담 과정에서 성희롱을 겪은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달랐다.
“여성인 지인 중에 우체국 콜센터에서 일했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말해준 성희롱 일화가 정말 엄청났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요. 똑같이 콜센터에서 일하더라도 남성보다 여성이 겪는 성희롱이 훨씬 크고 심각하다는 걸 콜센터 일을 경험하면서 깨달았어요.”
콜센터 일을 경험하면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게 됐다는 그.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성 권력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언제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더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콜센터에서 적성을 찾고, 여성혐오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 제이슨은 지금은 백수의 신분이다. 퇴사한 이유를 묻자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 제안이 들어와 회사를 옮겼지만 이직한 회사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종류와 특성이 제이슨의 관심 분야와 너무나 맞지 않았던 것이다.
“백수가 되면 맨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날 수도 있고 제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죠. 그런데 백수 상태가 되면 자꾸 이런 저 자신에게 조바심을 내게 돼요.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어차피 지금 구직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마음을 편하게 두면 되는데 자꾸 불안해하는 나에게 스스로 말해요. 그냥 지금을 즐기자! 백수인 상태로 지낼 때마다 이 두 가지 생각이 부딪히는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면 연차를 사용해서 여행을 갈 수 있다. 하지만 연차를 길게 사용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을뿐더러 연차를 쓸 수 있다고 해도 넉넉한 기간을 가지고 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누구나 직장을 다니면서도 오래 쉴 수 있고 여행도 길게 다녀올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 가능한 인력에 대한 고용을 상당히 빡빡하게 하죠. 한 사람만 빠져도 일이 안 될 정도로요. 그런 게 제일 답답해요.
제이슨은 24살 때부터 성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뭔가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무엇이, 왜 다른지 깊은 고민은 하지 않은 채 그냥 살았다. 군대를 전역한 24살의 제이슨은 처음으로 남자를 사귀게 됐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만난 첫 동성애인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나는 바이일 거야’ 이러면서 제 게이 정체성을 부정했죠. 하지만 애인과 연애를 계속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같이했고, 결국 게이로 정체성을 확립했어요.”
제이슨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힘들이지 않고 게이 정체성을 확립한 건 좋은 일이지만 남들보다 늦게 고민을 시작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다. ‘조금 더 일찍 고민을 시작했다면 힘은 들었겠지만 더 즐겁게 10대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인정하면서.’
제이슨은 현재 3년째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나중에’ 발언부터 육군 동성애자 A대위 구속까지. 성소수자 인권 이슈가 연일 터지고 있는 요즘, 그에겐 고민이 많다.
“일단은 이번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굉장히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말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특히 특정 후보의 지지자들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말을 많이 했고, 많은 성소수자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상처를 받았어요. 저도 그렇고요. 어쨌든 그분이 대통령이 되었고, 저는 지금 개인적으로는 그 상처들 때문에 마음이 소강돼 있는 상태예요. 선거운동 기간엔 분노가 컸다면 지금은 소진된 상태라고 할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해요. ‘정권교체만 이루면 차차 나아질 텐데 왜 그렇게 일희일비하면서 악바리같이 떼를 쓰냐’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대응할 가치도 없어요.”
제이슨은 강조했다. 성소수자로서 삶을 살아나가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인권운동에 대한 열의가 한결같을 순 없지만, 삶이 바쁘거나 정신없는 때라도 퀴어 인권 이슈를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관심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우리의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가끔 생각날 때라도 한 번씩 살펴봐 주세요. 집회 때마다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더라도 온라인 서명에 동참하거나 인권단체를 후원하거나 하는 식으로 관심의 끈을 계속 이어 나가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연재 계획
퀴어인컴퍼니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성소수자라면 누구든 두 팔 벌려 대환영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인터뷰들을 읽어주시고, 인터뷰이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으신 퀴어 독자가 계신다면 이메일(queerincompany@gmail.com)이나 QiC 트위터 공식계정(@queerincompany)으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더 많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퀴어인컴퍼니(Queer in Company, QiC) /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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