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애기한 n차원에서 생명의 존재 가능성이 중요했던 이유는 우리가 사는 3차원 시공간에서 항상 죽음은 생명과 짝을 이루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쌍둥이기 때문이다. 만약 2차원에서 사는 생물이 존재한다면 3차원에서 바라보는 나는 마치 종이에 그려진 만화 캐릭터처럼 어떤 방향을 향해 움직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운동량을 파악 가능할 것이다. 만화책의 책장을 넘기면 일정한 공간 내에서는 과거와 미래까지 통제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종이를 찢어 버림으로 공간의 붕괴와 함께 그 생명은 파멸한다.
II. 무한과 불연속성
3차원 세계에서 생명의 끝이 죽음이라면 그 죽음은 끝은 어디인가. 우리가 상상하는 무한이라는 개념은 수학적으로는 무한보다 더 큰 무한까지도 표현 가능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빠른 빛은 초당 약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일정하기에 우주에서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최대 속력이다.
또 아무리 온도가 떨어져도 물리적으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절대 영도는 0°K≡−273.15°C로 정의된다. 0K(켈빈)은 수학적으로 계산된 극한값일 뿐으로 현실적으로는 에너지가 전혀 없는 상태(원자의 위치와 운동량 고정)를 뜻하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도 위반되어 존재할 수 없다.
혹자는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말한다. 동화 속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100년의 시간이 흘러 왕자의 키스로 꺠어난다. 가시나무 숲의 잠자는 공주는 현대 의학에서 의식 불명 상태(coma)인 식물인간으로 정의할 수 있을 테고 그리스어로 코마(κῶμα)는 깊은 잠을 의미한다. 또 '백설공주'는 계모 왕비의 독사과 살인 미수로 깊이 잠들었다 왕자의 도움으로 깨어난다.
극한의 개념으로 미적분에서 부분적으로 무한히 한 점에 수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은 현실 세계에서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현실 세계에서 무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이 영원한 잠이라거나 영원한 천국(혹은 지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 또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종교적 믿음에서 영원은 또 다른 의미가 되어 신에게 사랑받는 인간의 존귀함을 상징하는 별개의 문제다.
현실 세계에서 죽음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생명 현상의 최종 결과치로 삶이라는 함수가 맞이하는 물리적 극한값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결과로 연속성이 끊어진 삶은 어쩌면 그 후에도 계속 연속되는 또 다른 함수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2차원에서의 단순한 다항식 그래프가 아닌 3차원에서 우리의 삶이 보여주는 불연속성은 미지의 영역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파동마다 나는 흔들리고 때로는 좌절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주어진 모든 일에 감사할 뿐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면 모든 물체는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 위치나 상태가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존재도 영원할 수 없으며 무한하지 않다. 우리 우주 또한 무한 존속이 불가능하며 언젠가는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한계와 인간의 감각과 두뇌가 인식할 수 없는 고 차원에서는 다를 수 있다. 생명의 소멸 후 신체의 구성 요소가 은하수의 동위 원소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 다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