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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9. 2020

근황 올림픽

2011

이런저런 이유로 간호학과에 진학했던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취업률 하나만 보고, 혹은 어쨌든 안정적인 직장 중 하나라는 이유로, 순수하게 성적에 맞추어 지원들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간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뛰어든 사람은 제가 알기론 없었습니다. 같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귀여운 얼굴에 단단한 몸을 갖고 있던 A는 준종합병원에 취직했더랬습니다.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지만 어쩌다 보니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불규칙적으로 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몇 년 후 정신을 차려 보니 개성공단에 지원을 가는 버스 안에 몸을 싣고 있더랬습니다. 논밭이 즐비한 북한 땅을 보며 A는 결심했습니다. 철저한 이직을 해야겠다는 것이었죠. 어디 하나 정착하지 못해 제대로 집중할 곳이 없었던 A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소방공무원, 그중 구급대원이었습니다. 지금의 경력을 살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공무원이라는 점에 영혼을 팔 지경이었지요. 개성과 집을 오가면서 진득하게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체육학과 입시학원까지 등록을 하면서 탄탄하게 체력시험을 대비하였습니다. 그 결과, 단 한 번에 합격을 하였지요(조금 의외였습니다).

  지금 A는 경기 서북부 쪽에 있습니다. 그 사이 결혼도 하더니만 제법 아저씨처럼 살도 쪘더라고요. 초기 출동 멤버이기에 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에 대한 썰을 풀곤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파트 불빛처럼 일률적이지만 막상 집 안에 들어가면 너무나 다양한 인생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최근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늘 4중 보호구를 착용하고 출동한다고 합니다. 얼굴을 못 본 지 일 년이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로 조심하자며 얼굴 맞대는 것은 당분간 삼가기로 했습니다. 둘 다 코로나 최전방에 있는지라...


덩치는 커다란 주제에 속마음은 누구보다 섬세했던  B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간호사를 하겠다고 선포하고는 꾸준히 준비하던 친구였습니다. 로망이 있다면서 꼭 가버리고 말 것이라는 결심을 진지하게 하곤 했습니다. 누군가는 비웃었겠지만 B는 그들을 비웃을 만큼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몇 년 동안 대형병원을 거쳐 요양병원까지 섭렵하며 찬찬히 준비를 하더니만 정말로 미국으로 건너가 버렸습니다. 같이 가서 일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저를 엄청나게 꼬셔댔지만 저는 B처럼 준비할 여력도 무엇보다 자신이 없어 거 웃어넘겼드랬어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슬슬 퍼질 때쯤 뉴욕으로 건너 간 그는 중형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엄청나게 좋아했던 B는 비록 헬스장(Gym이라고 자연스레 발음하더군요. 미국서 몇 년 산 줄 알았잖아요)은 못 가지만 최소한의 외출을 하며 거의 생존자처럼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하루 확진자 수를 볼 때면 늘 B가 생각납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피해 가며 정말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지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딱 멈추는 순간 저는 뉴욕으로 B를 보러 갈 생각입니다. 미친 듯이 할인하는 명품 아웃렛이 저를 기다리고, 아니 B가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B가 떠나기 직전의 모습이 아른거리네요. 다시 만날 때쯤 둘 다 그만큼 늙어 있겠죠. 아, 그러고 보니 보톡스 예약을 할 때가 되었네요. 


잘생긴 얼굴을 가졌던 C는 같은 병원에 일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흔한 남정네들이 그렇듯 탈의실에서 눈인사만 하는 수준이었지요. 그런데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의 주변으로 아는 사람들이 은근히 겹쳐서 언젠가는 친해질 계기가 있으리라 예상은 하고 있는 그런 관계. 드디어 C의 프리셉터였던 다른 간호사가 당시 제가 있던 부서로 인사이동을 하여 마담뚜 역할을 해주면서 만남이 성사되었지요. 늘 보던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새삼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 날 새벽 4시까지 술을 같이 마셨..(제가 그 이후로 막걸리는 한 병까지만 마십니다). 그게 작년이었고 C는 지금 보험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병동도 나쁘지 않지만 애초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늘 느끼고 있다고 하더니 정말로 뜻을 이루더라고요. 핸섬한 얼굴로 서글서글하기까지 해서 뭐든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고 싶은 대로 결국 해내는 모습이 더 멋있습니다. 여자 친구 때문에 늘 고민을 달고 살더니만 지금은 좀 덜 휘둘리나 모르겠습니다. 상근직은 금요일 밤이 최고라며 저의 금요일 이브닝 근무에 맞춰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되었고 그런 자리는 피하게 되었네요. 이를 어쩌죠. 어쩌긴 어쩝니까. 살다 보니 애쓰지 않아도 볼 사람은 보게 되더라고요. 자만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편입으로 시작된 지금의 업은 아직도 저를 이곳에 있게 만들었습니다. 당분간 관둘 생각이 없는 저게에 몇몇 분들은 늘 목표를 물어보곤 합니다.  그때마다 순간적으로 지어내기는 하지만 죄송하지만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답니다(그냥 일할 맛이 나는 곳이면 좋겠다는 상상은 좀 해봅니다만). 하루하루 살기에 바쁘달까요. 이 업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조금 편해질 줄 알았는데 엄청난 착각이었음은 분명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글을 한 꼭지 끄적거리고 있고, 또 어쩌다 보니 부서이동도 급하게 하게 되었네요. 내일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봅니다. 다른 친구들도 무언가 하고 있겠죠. 누군가는 출동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영어를 쓰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뭐 하고 있을까요. 아무튼 다들 잘 살고 있을 겁니다. 저는 주변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한 타입입니다. 음, 좀 행복해지려고 하는 밤이네요. 모두들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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