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페스티벌
지난 토요일, 꿈에만 그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지난 2년 동안 멈춰있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것처럼,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 토요일, 4월의 마지막 날에 원더랜드페스티벌을 가기 위해 주섬주섬 출발 준비를 했다. 날씨는 약간 흐렸지만, 얼마만의 페스티벌이냐 하며 2시간을 달려 올림픽 공원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서울을 방문한 지방 사람은 올림픽공원이 익숙하지 않아 도착하고도 30분을 두리번거리며 공연장을 찾았다. 마침 그날따라 아이돌 돌 그룹 공연도 함께 하고 있어서 더 길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3년 전 재즈 페스티벌을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끝에 페스티벌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초대권을 교환하고 미리 준비해 온 돗자리와 우산, 그리고 겸사겸사 가져온 카메라도 준비한다. 그런데 아뿔싸, 입장 전 소지품 검사에서 걸려버린 게 아닌가. 사전 공지를 통해 반입 금지물품을 살펴보고 반입 가능한 물품만 챙겼는데도 입장에 제한이 걸린 것이다. 규정대로 500미리 생수 하나, 카메라는 10cm 미만의 렌즈를 장착했고, 간식류는 안에서 구매할 목적으로 애초에 준비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범인은 바로 우산이었다. 날씨가 우중충 했고, 공연 종료시간까지 장시간 앉아있어야 했기에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단 우산을 챙겼지만... 단 우산임에도 불구하고 펼쳤을 때 길어진다는 이유로 반납을 했어야 하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여담이지만 결국 회색 구름은 비를 뿌려주었다.
공연장에 입장해보니 지정좌석제에 맞게 라인이 그려져 있었고, 덕분에 쉽게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여타 페스티벌이었으면 오픈 전부터 기다렸다 입장하지 않으면 자리에 앉기란 하늘에 별따기였을텐데 이런 점은 코로나 시대라도 지정석인 게 참 좋았다.
공연장에 도착한 시각이 15시 정도 됐었다. 마지막 공연이 2년 전인만큼 라이브로 듣는 음악은 어떤 느낌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거기에 처음으로 함성과 호응이 가능한 공연이었으니, 얼마나 더 설렜을까. 지금도 멀리서 들려오는 드럼 킥 소리에 심장이 같이 뛰었던 느낌이 생생하다. 드넓게 펼쳐진 잔디마당에 앉아 앰프 너머로 들려오는 웅장한 사운드와 사람들이 호응하고 함께 웃는 모습에서 단 한 문장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게 페스티벌이었지, 이게 음악이었지.
사실 코로나 시절 동안 공연은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단지 아티스트들이 홀로 무대를 펼칠 뿐, 관객은 아무런 호응도 할 수 없었다. 관객은 자리를 지킬 뿐, 아티스트와 눈을 맞추고 몸을 들썩이는 정도의 리액션밖에 할 수 없었다. 서로 한 공간에 존재하지만 서로를 인식하기만 할 뿐 소통하지 못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 존재하기만 할 뿐인 무대를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클래식과 연주곡처럼 호응을 하지 않고 듣는 음악도 있다. 그래도 관객들과 아티스트는 서로 바라보고 호응하며 순간의 감동을 함께 공유했다. 요즘처럼 힙합과 EDM처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자리를 잡아온 지금을 생각해보면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아티스트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호흡하는 순간만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친구고 모두고 나의 노래요, 우리의 노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페스티벌이 주는 의의는 상당했다.
원더랜드 페스티벌을 필두로 서울재즈페스티벌, 펜타포트락페스티벌, 민트페스티벌 등 내로라하는 페스티벌들이 하나씩 오프라인을 선언했다. 거리두기 지침이 풀려도 방역수칙은 유효하기 때문에 섣불리 오프라인 티켓을 오픈하고, 완화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방역수칙까지 한번에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으로 보아 이번 공연은 국내 오프라인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페스티벌이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름들이 있다.
서울 재즈페스티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월드EDM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등 쭉 나열해봤을 때 해당 페스티벌이 어떤 컨셉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주력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재즈라면 편안한 분위기와 자유로운 느낌, 락이라면 열정적이고 파워풀한 느낌, EDM은 에너지 그 자체를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이번 페스티벌의 이름은 '원더랜드' 페스티벌이었다. 처음 라인업을 봤을 때, 절반 이상이 잘 모르는 아티스트였다. 오히려 재즈에 관심이 있어 일부 유명 연예인과 트리오를 제외하고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아, 그래도 헤드라이너인 라포레와 포레스텔라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나마 헤드라이너를 통해 성악과 크로스오버를 메인으로 하는 컨셉의 페스티벌이겠구나,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에서 무대가 꾸며지겠구나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티스트들이 하나씩 무대를 만들어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예상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유추한 것처럼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자아낸 것은 맞다. 다만 뮤지컬이 첨가된, 아주 살짝 더 에너지 넘치는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뮤지컬은 부담스러운 가격과 특정 도시에서만 열린다는 점이 있어서 접근하기에 제한사항이 있었다. 대안으로 유튜브에서 공연 실황이나 넘버를 찾아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영상으로만 보던 뮤지컬 넘버와 배우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무려 오케스트라와 밴드를 동반해서 말이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생생함은 느긋하게 누워있다 가겠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고, 결국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맨 뒤에서 음악을 느끼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에너지를 앞에 두고 앉아만 있을 수 있겠는가! 운영 지침 상 자리에서 스탠딩은 금지였기 때문에 무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외곽에서 혼자만의 스탠딩 공연을 만끽했다.
뮤지컬과 성악이 메인 컨셉인 이번 페스티벌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 뮤지컬을 선택하고, 배우를 선택하고, 해당 작품에 나오는 넘버를 감상했다. 반면 원더랜드 페스티벌은 아티스트를 선택하면 본인이 연기했던 작품의 넘버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들이 평소에 부르지 못했던 넘버를 부르기도 하며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지난 2년간의 힘겨운 시절을 끝내고, 새 출발을 힘차게 시작했다. 이번에 쏘아 올린 신호탄처럼 뮤지컬과 성악, 크로스오버 등 대중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르의 음악을 널리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페스티벌 이름처럼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호흡하며 동화 속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페스티벌이 되어 언젠가 3일 차 공연으로까지 확대되고, 더 많은 루키들과 아티스트들이 발굴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