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싶은.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어릴 적 바라보았던 부모님의 모습이나, 학교 담임선생님은 어찌 그리 큰 사람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인데 단순히 키가 크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납득이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른을 동경하며 성장했다.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교를 들어갔고, 이제는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지고 책임감을 지니며 살아가라고 배웠다. 부모님의 보호아래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나는 그저 앞자리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은 물론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법적 나이만 성인이 되었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학생 때와 다른 것이라고는 주민등록증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정도일까. 편의점에서 술과 담배를 살 수 있고, 10시 넘어서도 피시방과 노래방에 있을 수 있었기에 이제 막 20세가 된 나에게는 '이 정도면 나도 어른이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성인이라고,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저 병아리에 불과했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눈을 뜨고 고개를 둘러보니 세상은 너무나 크고 넓었다. 여전히 앞자리는 같지만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렇게나 크게 차이가 나도 되는 것인가. 대학생 때 느끼던 책임과 권리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직장을 다니고, 조직원이 되어 움직이다 보니 내가 가진 책임과 권리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좋았다. 처음 세 달 동안은 정신없이 배우고 공부했을 뿐인데, 통장에 돈이 쌓였다. 이제야 내가 어른이 된 것 같고, 진정한 사회의 일원이 된 느낌이었다.
3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습기간을 거치고 정식으로 내 업무를 할당받았다. 분명 3개월 동안은 명확한 길이 보였는데, 이제는 길이 없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알아서 해라.', '찾아보지도 않고 뭐 했냐.' 가끔은 없는 사람처럼 무시당하기도 했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고개를 숙이고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음표를 띄우기도 했다.
선배들은 힘들어하던 나에게 밥을 사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직급이 있는 분들께서는 그래도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셨다. 그렇게 미워했던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은 시절을 거치고 스스로 배우고 부딪히면서 성장했었다. 대체 나한테 어떤 의도로 질타를 하는지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다 의미가 있는 말이고 행동이었다. 그렇게 단단해지고 또 유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어른'이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의미를 가지지 않고 했던 말이나 행동이 어떤 이들이 게는 힘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다면 괜찮은 어른이 되자.
훌륭한 어른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일으킬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