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리즘 도전기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쯤 지났을 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약 30분 전 집에서의 상황이 마법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늘 오랜만에 꺼내 입은 옷을 다리기 위해 스팀다리미를 몇 달 만에 켰다. 분명 옷을 다린 기억은 있는데 다리미를 내려놓고 플러그를 뽑은 기억이 없다.
원래부터 전원 버튼이 없고 플러그를 꽂으면 바로 열이 가해지는 핸디형 스팀다리미다. 결국 플러그를 뽑은 기억이 없다면 스팀다리미는 여전히 가열 중이라는 얘기다. 등골이 서늘해진 이유였다.
지하철은 계속해서 스팀다리미가 가열되고 있을지 모르는 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다음 역 문이 열렸을 때 잠시 내릴까 고민했지만 이성을 차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인간이란 위대한 존재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본능적으로 집에 잘 찾아가는 것처럼, 무의식 중에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분명 나는 플러그를 뽑았을 것이지만, 너무 오랜만에 사용한 탓에, 또는 월요일인 탓에 영혼이 나간 것이리라.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앱에 접속하여 검색을 시작했다.
'스팀다리미 플러그 켠 상태', '스팀다리미 전원 켜놓고 나왔을 때' 등등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자 조금 꺼림칙하긴 했지만 '스팀다리미 발열 화재' 류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 어떤 사람의 다급한 질문에 달아 놓은 어느 지식인의 답변.
"보통 스팀다리미의 경우 오랜 시간 전원을 켜놓으면 자동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두세 시간 이상 이 상태로 두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니 빨리 귀가하셔야겠네요."
이것은 바로 나에게 하는 말.
일단 출근을 했다. 후배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본인의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해주며, 아마도 플러그를 뽑았을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반차를 내고 집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어 조언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뒤 따라온 조언임이 분명하다.
반차를 내기엔 월요일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오늘의 할 일이 더미가 문제였다. 결국 나는 점심시간에 편도 40분 왕복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폭염 경보로 재난 문자를 받은 올여름 가장 더운 날이었다.
휴가철 점심시간 지하철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 시간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열차 안에 나처럼 스팀다리미나 고데기 같은 전열 기구를 켜놓고 출근한 걸 깨닫고 집에 가는 중인 사람이 한 두 명쯤은 더 있지 않을까.
괴로운 망상은 더 괴로운 망상을 불러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하늘을 바라본다. 출구에서 우리 집 건물을 바로 올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략 우리 집으로 예상되는 층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망상. 곧 들려오는 119 사이렌. 내 집도 아닌 전셋집에서(내 집도 안될 말이지만) 스팀다리미 발열 화재라니. 내 인생은 어찌 되는 것인가.
망상에서 나와 진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연기가 피어오르지도, 119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주말이 아닌 평일 이 시간에 걸어 다닐 일이 거의 없어서인지 점심시간에 도착한 우리 집 주변 풍경은 생경했다. 우리 집 근처에 회사가 이렇게 많았나? 한산할 줄 알았던 거리는 목에 사원증을 매고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 집까지 뛰었다.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비 아저씨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는 표정이셨지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뛰어올랐다. 1, 2, 3, .... 올라가는 층수. 그래, 경비 아저씨도 저렇게 평온하신 걸 보면 별일 없을 거야.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정말이었다.
스팀다리미의 플러그는 콘센트에 꽂힌 채였다.
무의식 중에 뽑았을 거라는 인간의 무의식의 위대함에 대한 신뢰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뛰어 들어가 플러그를 뽑았다. 스팀다리미를 잡았다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화상을 안 입은 게 다행이었다. 폭발할 뻔했다고, 왜 이제 왔느냐고 원망하는 듯한 뜨거움이었다. 스팀다리미를 진정시키려 그대로 내려놓고 멍하니 우리 집을 둘러보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며 한 열여섯 번쯤 이 집이 불타는 상상을 했다. 잿더미가 될 뻔했던 집이라 생각하니 집안의 모든 사물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정말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면 살리지 못해 평생 후회할 아쉬운 물건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 정말 살리지 못해 아쉽고 원통한 그 무엇은 무엇인지.
그런데 의외로 희한했던 것은 딱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현금과 같은 금융자산은 은행에 있고, 사람이 아닌 사물 가운데 평생을 두고 후회할 만한 그 무엇이 우리 집에 있나?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 딱 하나가 있다.
방탄소년단 사인 CD.
아 이건 정말 울었을 것 같다.
지난해 어떻게 받은 BTS 사인 CD인데.
(사연이 길다.)
언젠가 (기약은 없지만) 결혼을 한다면 내 패물함에 1번으로 들어갈 물건 아니 보물이었다. 방탄소년단의 필체가, 방탄소년단이 써준 내 이름이, 그 소중한 사인 CD가 재가 되어 버렸다면, 이건 정말 평생 후회할 감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이 물건 자체의 소중함도 있지만 다시 받을 기약이 없다는 것(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는 가정), 어쩌면 평생 불가능할 일일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내 소중한 사인 CD는 불타지 않았다.)
멍하니 집안을 둘러보는데 곳곳을 둘러싼 사물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은 버리는 게 아니라며 계속 높아지고 넓어지고 있는 책장. 3~4년쯤 안 입은 게 분명함에도 올해는 입을 거라며 버리지 못하는 옷. 요리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면서 그릇 물욕은 많아서 해외여행 갈 때마다 사모은 그릇들. 그 나라 음식에나 어울릴 법한 유니크한 주방용품들. 빈티지 덕후라 사모은 예쁜 쓰레기들. (1800년대 이탈리아에서 만든 거울도 있음)
물론 잿더미가 되었다면 엄청 아까웠겠지만 방탄소년단 사인 CD만큼 원통할 일은 아니었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 없어도 그만이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떠오른 한 단어가 있다.
내 인생엔 없을 줄 알았던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가장 큰 계기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었다고 한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계기이긴 하지만, 미니멀리즘은 소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 대지진 당시 무너진 가구나 짐에 짓눌리는 급박한 상황, 한평생 모아 온 물건을 일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무조건 소유'에 대한 회의를 넘어 반성을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도 반나절쯤 비자발적으로 무소유 상태가 되는 망상에 시달린 결과, 반성까지는 아니지만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에 눈 뜨게 된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이 날을 계기로 나는 다음과 같은 작은 변화의 행동을 실천에 옮겼다. (꽤 비장)
1. 단골 쇼핑몰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던 아이템, 언젠간 쓰겠지 하며 쟁여두려 했던 화장솜, 클렌징 폼, 크림팩을 모두 장바구니에서 버렸다. (이미 집에 안 쓴 게 쌓여 있음)
2. 터질 것 같은 책장 속에서 평생 안 볼 책을 추려내고 스마트한 알라딘 중고매장에 접속해서 검색해 보았다. 세상에나, 다 팔면 10만 원은 족히 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꼭 필요한 다른 좋은 주인을 찾아가길. (여유를 되찾은 책장은 덤)
3. 터질 것 같은 옷장 속에서 평생 안 입을 옷을 추려냈다. 책보다는 조금, 아니 많이 망설이고 갈등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작년에도 올해도 한 번도 안 입은 채 계절을 지난 옷은 내년에도 안 입을게 분명하다. 과감히 분류했다. 이 옷들은 대학 때 봉사활동을 한 적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할 생각이다. 옷들도 더 좋은 주인을 찾아가길. (이 결심을 할 때까지 열 번은 들었다 놨다 함)
나 같은 빈티지 덕후에 쟁여놓기 좋아하는 성격에 미련 많은 사람에게 강렬하게 찾아온 '미니멀리즘'.
스팀다리미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해지지만 인간은 모든 것에서 뜻을 찾고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이니까. 덕분에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내 인생엔 없을 줄 알았던 '미니멀리즘', 반갑다.
길게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