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찾아들더니 송홧가루 날리는 사월이다. 예전엔 서정적 시를 외우며 괜한 감상에 젖기도 했지만 요즘 송홧가루엔 문단속이 먼저다. 봄이 오면 황사, 미세먼지, 송홧가루,,, 점점 실내형 인간이 되어간다. 산에 들에 핀 진달래 구경도 먼저 날씨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한다.
주문도로 떠나는 날, 다행히 날씨가 쾌청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연안 여객터미널 근처에 주차하지 못하고 외포리 선착장 근처까지 내려와서 길가에 주차하였다. 장시간 주차인데 유료는 곤란하고 스티커 붙이지 않을 곳을 골라 주차해야 아무래도 마음 편하게 섬에 다녀올 수 있다. 걷기가 목적이 아니고 오붓한 드라이브가 목적이라면 차를 가지고 섬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한적한 섬을 여유 있게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추억이다.
승선 후 객실로 들어가면 넓은 마루가 보인다. 극장 같은 의자가 설치되어 있지도 않고 칸막이로 나누어진 룸도 없다. 먼저 탄 사람 중엔 벌써 편한 자리를 잡고 가방을 베게 삼아 드러누운 사람도 있다. 둘이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벽엔 구명동의 착용법을 설명하는 인쇄물이 코팅되어 붙어 있다.
배를 탄 기억 중에 가장 아련한 것은 입대 전, 전남 송이도로 봉사활동 갔을 때의 기억이다. 당시 배 시간이 남아 법성포를 돌아다니며 영광 굴비 구경도 했다. 그때 배를 타고 송이도로 갔던 일을 떠올리면 왠지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좋아하는 선배 희재(장진영)와 나란히 배 위에 앉은 인하(박해일)가 바다로 나아가는 장면과 오버랩 된다. 그때의 나는 좋아하던 여자애도 없었고 배 위에 여유 있게 앉은 게 아니라 배 난간을 꼭 잡고 갔을 확률이 높지만 자꾸 영화처럼 추억을 미화시키려 한다.
봉사활동 기간 중에 바람이 세게 불고 파도가 높이 치는 밤이 있었다. 같이 간 남녀 일행들은 섬에서 맞이하는 낯선 경험이 싫지 만은 않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은 그 섬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 말을 들을 때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다.
주문도
주문도에 도착하니 이곳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현수막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선거는 있다.
주문도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중국으로 가는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 원병수신사로 갈 때 한양의 임금에게 글을 올렸다하여 이를 아뢸 주(奏), 글월 문(文)자를 써서 奏文島라 불렀으며, 후에 注文島로 바뀌었다고 한다.
걸어 나오다 보니 선착장 옆 주차장 끝에 따사로운 햇살아래 그물을 손질하는 어르신이 앉아있다. 주문도 특산물로 꽃게가 유명한데 어르신 주변엔 꽃게잡이용 통발 수백 개가 길게 쌓여있다.
길에 보이는 안내판마다 독특하게 각각 한 마리의 물고기 모양에 글씨를 써 넣었다. 물고기 모양은 다 다르게 만들어져 있는데 정성이 느껴지고 보는 이에게 참신한 기쁨을 준다.
도로엔 트랙터를 몰고 일하러 나가는 아저씨가 보인다. 주문도 주민은 의외로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길을 걸으며 밭에서 일하는 어르신도 보고 밭에 뿌리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뜨려 놓은 수십 개의 비료 포대들도 본다. 일찍 손질을 마친 밭에는 검은 비닐이 열을 맞추어 길게 줄지어 있고 비닐은 해풍에 가볍게 흔들린다. 땅에도 바다에도 봄의 생명이 꿈틀대고 있다.
선착장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서도 중앙교회가 보인다.
서도중앙교회
주문도는 전진 기지 역할로 인해 서양 문물이 첫발을 디딘 곳이고 영국 성공회 신부들이 최초로 포교활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강화도가 외세의 침략을 받고 문호를 개방할 때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종교의 이미지가 전쟁의 이미지와 겹치는 것은 씁쓸하다.
서도 중앙교회는 최초 1905년에 설립 되었다가 지금의 모습은 1923년에 개축 완공 되었으며 1978년 주문교회에서 서도 중앙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교회는 동양의 목조 건물 양식을 바탕으로 서양의 건축미가 섞여 심플하면서도 특이해 보인다. 교회 종탑 주변엔 아직 개나리가 남아있고 교회 담벼락 앞으로는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다.
길을 내려와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갯벌은 넓고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아직 꽃봉오리만 맺혀있는 나무가 바다를 마주하고 하얀 속살을 조금 내보이고 있다.
바다에 다다르면 곧 해당화 군락지다. 키 작은 꽃나무들이 바다를 따라 길게 무리지어 있는데 아직 꽃을 피우진 못했다. 꽃이 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앞장술 해변, 뒷장술 해변
‘장술’은 모래가 쌓여 백사장이 길어 파도를 막아주는 언덕이라고 한다. 해당화 군락지를 지나면 앞장술 해변에 이른다. 안면도에서도 강화 나들길에서도 여러 해변을 봤지만 이 해변은 정말 마음에 든다. 강화도에서 보았던 잿빛 갯벌이 아니라 황토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백사장이다. 그리고 백사장이 넓고 길다. 공항 활주로만큼 넉넉하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여유 있는 백사장이다. 하늘과 백사장 그리고 시야 먼 곳에 바다가 살짝 보일 뿐이다. 이곳에서는 뭐든지 정돈이 되고 술술 풀릴 것 같다. 이곳을 나 혼자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시인이 될 것도 같고 철학자가 될 것도 같다. 사실상 앞장술 해변과 뒷장술 해변은 이어져 있는데 백사장 길이를 합치면 3~4킬로미터는 된다. 이 해변에 텐트를 치고 꼭 하룻밤을 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형편이 되면 2, 3일 머무르고 싶다. 앞장술 해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두어 시간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겠다. 그러나 이 한적하고 고요한 해변에서 오히려 급한 발걸음이라니. 외포리에서 아침 9시 배를 타고 들어왔다가 주문도에서 나가는 2시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긴다. 마음은 멈추자고 하는데 발걸음은 나가려 하니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꿈속에서 쫓길 때처럼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주문도에 봄은 오는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삐 걸은 덕분에 9.3킬로미터를 2시간 50분 만에 걸었다. 다행히 나가는 배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주문도에 봄은 오고 있다.
나들길 12코스는 주문도에 있고 13코스는 볼음도에 있다. 주문도행 배를 타기 위해서는 석모도행 배를 타는 외포리 선착장이 아니라 강화젓갈시장을 지나 300미터쯤 더 올라와야 한다. 거기있는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승선 수속을 밟아야 한다.
이번에는 제법 배 타는 낭만이 느껴진다. 강화도 서쪽 39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주문도는 외포리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주문도행 배를 타고 1시간 30분이면 도착 한다.
보통 하루에 두 번 배를 운행하는데 외포리 출발, 주문도 출발하는 배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움직여야 계획대로 걷고 돌아올 수 있다. 주문도엔 먹을 만한 식당이 없어 간식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연안 여객터미널 연락처는 032-932-6619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