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나들길은 섬 여행도 겸할 수 있어 더욱 풍요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석모도는 연육교로 연결되어 있지만 주문도, 볼음도는 배 뒤편에 서서 하얗게 길을 내었다가 사라지는 바닷길을 보며 1시간 이상 가야 만날 수 있는 섬이다. 섬 둘레, 백사장과 해송 아래를 걸으면 작은 섬이 가지고 있는 포근함과 한적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은행나무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용문산 은행나무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이며 은행나무 나이는 1100년~1500년으로 추정된다. 그때가 늦가을이라 시기적으로는 딱 맞았지만 아쉽게도 머리가 아파 제대로 구경도 하지 못하고 용문사도 대충 둘러보고 내려온 기억이 있다. 정류장에 내려 오르기 시작할 때는 멀쩡했는데 도중에 어느 기관에서 하는 설문조사에 응해주고 몸에 좋다는 차를 한 잔 받아 마셨는데 아무래도 그게 말썽을 부린 거 같다.
국내 은행나무 하면, 용문산 은행나무와 더불어 충남 부여의 주암리 은행나무, 충북 영동군의 영국사 은행나무, 강원 영월군 하송리 은행나무 등이 유명하지만 13코스의 볼음도에도 제법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볼음도 은행나무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800여 년 전 수해가 심할 때 바다에 떠내려 온 것을 심었다고 한다. 바닷물에 젖은 나무가 잘 살 수 있는지 의문스럽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오래 산 것을 보면 그런 신령한 스토리 하나쯤 있는 게 어울려 보인다. 대부분 은행나무 나이가 추정치이듯이 볼음도 은행나무도 정확한 나이 파악이 어렵지만 천연기념물 304호로 지정되어 강화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주민들은 이 은행나무 밑에서 안녕과 풍어를 비는 풍어제를 지내 왔지만 6·25 이후엔 출어가 금지되어 풍어제를 지내지 않는다. 수백 년 이상 된 은행나무마다 그럴듯한 전설이 하나씩 있는데, 이 은행나무에도 부러진 가지를 불에 태우면 재앙을 받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너무 나이를 먹어 초라한 몰골로 제 몸을 지탱하는 은행나무도 있지만 볼음도의 은행나무는 기둥이 굵고 튼튼하다. 지금은 줄기만 있지만 사방으로 뻗은 그 촘촘함을 보니 가지마다 은행잎이 가득 달릴 때에는 얼마나 장관일까 짐작이 간다. 그때쯤 볼음도를 다시 찾아 노란 세계에 묻히는 것도 참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보통 은행나무들이 산 속에 있지만 바다 곁에 있는 8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볼음도
볼음도의 해안선은 16킬로미터가 좀 넘는다. 마을 주민은 300명 쯤 될까? 아담한 사이즈다. 지나는 이 만나기 힘든 바닷길을 걷다보면 세상 근심은 사라지고 풍경에 빠져든다. 지도상에서 북한 땅과 가깝다는 사실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남태평양 어느 섬인 듯 착각에 빠진다.
그럼에도 해안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볼 때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애석함을 느껴진다. 어느 바닷가든지 스티로폼 조각이나 빈 패트병 같은 것은 쉽게 보이는 것들이지만 육지에서 배로 2시간 가까이 떨어진 볼음도의 아늑하고 맑은 바닷가에서도 문명의 쓰레기가 보인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이렇게 깨끗한 해변에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철판 깔은 양심이 놀랍다. 우리 동네 진입로에도 양쪽으로 자연스레 풀밭이 형성되어 있는데 주민복지센터의 요청으로 벌초를 하다보면 풀숲에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온갖 쓰레기들이 다 나온다.
바닷가를 걷다보면 백사장에 나무 울타리를 처 놓은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모래의 날림이나 이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설치한 울타리다. 볼음도에도 해안침식 방지를 위한 사업이 진행 중인데 큰돌 파도막이나 퇴사 울타리를 설치한다. 또한 바람이나 해수에 의한 재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해송을 조림하거나 해안 경관을 꾸미기 위하여 빨간 꽃의 해당화를 심거나 보라색이 예쁜 맥문동을 심기도 한다.
볼음도를 옛사람들은 만월도라고 불렀는데 보름달이 뜨면 온 섬을 다 비출 정도로 환했기 때문이다.
길의 반 정도는 바닷가를 걷는다. 천천히 걸어도 어느덧 섬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철에는 모자, 선글라스가 필수다. 10킬로미터의 거리를 3시간 정도에 걸었다.
볼음도를 오가는 배에는 승용차도 실을 수 있지만 가능한 수는 제한적이라 차를 가지고 배를 타야 한다면 서두르는 게 좋다.
볼음 저수지
볼음도 선착장에 도착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조개골 해수욕장을 지나고 영뜰 해수욕장을 지난다. 볼음도의 크기는 석모도 4분의 1 정도지만 해수욕장은 더 많다. 영뜰 해수욕장 해변엔 소나무 방풍림이 운치 있게 기울어 있다. 그 아래를 지나는 마음이 군악대의 사열을 받는 것처럼 흐뭇하다. 또 비교적 곧게 자란 해송들도 있는데 솔잎을 밟으며 오솔길을 걷는 기분도 상큼하다.
볼음 저수지는 제방길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마주하고 있고 그 만나는 지점에 고령의 은행나무가 세월을 굽어보고 있다. 저수지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6·25 전까지 볼음도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새우를 잡았지만 전쟁 이후 휴전선이 생기고 어업이 어려워지자 농사를 짓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
저수지는 꽤 크다. 저수지를 만든 뒤에 많은 주민들이 농업으로 전환했다. 이 저수지를 이용해서 볼음도내 논에 물을 공급하는데 가뭄에도 3년은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다.
은행나무 주변엔 퇴비용 사료가 나무판 위에 쌓여있다. 겨우내 배고팠을 땅에도 영양 섭취가 필요하다. 쌓인 양으로 봐서 은행나무에만 주기엔 너무 많아 보인다. 주변 밭에도 퇴비를 뿌려 땅의 힘을 보충한 다음에 모종을 심거나 씨를 뿌리겠지.
안식년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직업에 따라 5년이나 6년마다 일정 기간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흙에도 똑같은 개념을 적용해 경작을 하지 않고 쉬게 하면 다음에 땅의 생산량이 더 많아진다. 우리도 5,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하루라도 편히 쉬어 줘야 한다. 이런 말도 있잖은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멀리 가지 못하면 가까운 동네길이라도 걸어보자.
저수지를 보고 있자니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은 생각이 난다. 사실 거창하게 매운탕이라고 할 순 없고 피라미 몇 마리 잡아 고추장 풀고 끓여 먹은 거지만 고1때의 여름방학 추억으로 진하게 남아있다.
그땐 용산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광주까지 간 다음 다시 버스를 2번 정도 갈아타고 장평으로 갔다. 용산역에서 저녁에 출발한 기차는 새벽에 광주역에 도착했는데 거의 12시간 걸린 거 같다. 다행히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서 갔지만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볼일을 보기 위하여 자리를 비우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번 자리를 뺏기면 다시 앉기를 포기해야 할 형편이니까. 용산역 광장에는 줄을 쳐 놓았다. 우리는 줄 뒤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다가 개표가 시작되면 몸싸움을 하며 개찰구를 통과하고 그때부터 뛰기 시작한다. 완행열차는 지정 좌석이 없고 아무나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그러니 역무원이 말려도 모두 뛴다. 이때에는 역 계단에서 사람이 몰려 넘어지는 사고도 종종 일어났다.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근처 저수지로 갔다. 친구가 도와줘서 처음 잡아본 낚싯대로 낚아 올린 피라미 2, 3마리. 그게 참 기쁜 일 이었고 나의 여름이었다.
2015년 6월에 강화 나들길을 걷기 시작해서 13코스를 마지막으로 20개 코스 걷기를 끝냈다. 혹서기, 혹한기인 7, 8, 1, 2월을 빼고 6개월 정도 걸린 셈이다.
비가 오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빼고는 거의 매주 강화도를 다녀온 것이다.
20개 코스에 총거리는 310.3km이다. 서울둘레길이 총 157km이니 강화 나들길은 서울 둘레길보다 약 2배 정도의 거리다.
전반적으로 볼거리는 많지만 아직 정비가 다 이루어지지 않아 길을 여러 번 잃었다.
연미정, 광성보 등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들도 여러 곳 있어 걸으며 역사 공부도 다시 하게 되었다.
원래 강화 나들길을 1코스부터 순차적으로 걷지 않았다.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코스를 골라서 걸었는데 걸은 순서대로 적으면 코스가 뒤죽박죽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코스 순서대로 적다보니 중간에 코스 걷기를 마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걷는 계절도 오락가락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