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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Jan 25. 2018

참사를 막기 위한 '그날'의 기억

대형재난을 기록하고 기억해낸 책 『재난을 묻다』


"벽면과 바닥은 목재와 스티로폼, 비닐 장판 등 인화성 강한 물질로 만들어져 불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6개의 자동화재탐지기도, 비상벨도 작동하지 않았다. 14개의 소화기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 『재난을 묻다』, 서해문집, 2017, 71p)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 『재난을 묻다』, 서해문집, 2017, 71p)


충북 제천 화재참사를 설명한 글이 아니다. 1999년에 발생한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의집 화재참사'를 기록한 것이다.


유치원생 18명 포함, 23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친 씨랜드 화재참사는 18년이 흐른 지난달 21일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재현됐다.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외벽은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dryvit) 공법으로 시공됐다. 드라이비트는 스티로폼을 외벽에 붙인 다음 페인트 등을 덧바른 건축 마감 소재를 말한다. 씨랜드 수련원이 빠르게 타버린 것도 이처럼 화재에 취약한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두 사건은 18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비상구조차 확보되지 않았던 점 역시 동일하다.

대형재난의 기록을 담은 책 『재난을 묻다』


책 『재난을 묻다』는 씨랜드 참사와 같은 대형재난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재난이 ‘참사’가 된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한다. 재난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 허술한 재난대응체계, 재난의 빌미를 제공한 구조적 원인 등이 맞물릴 때 재난은 참사가 되고 만다.


디자인: 박정은


참사의 구조적 원인은 대체로 안전보다 비용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관성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대구지하철 참사가 그렇다. 총부채 1조원을 넘어서던 대구지하철공사는 가장 저렴한 전동차를 구입했다. 비용이 절감된 만큼 안전관리기준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위키미디어


불에 잘 타고 유독물질도 내뿜던 전동차는 지난 2003년 192명의 사망자와 151명의 부상자를 남겼다. 재난을 일으킨 건 한 노인의 방화였지만, 방화가 참사로 번진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비용절감'이었다.


디자인: 박정은


"다른 나라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된 대중교통의 안전을 가장 우선적 원칙으로 둔 반면, 우리나라는 비용절감을 위해 이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룰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110p)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은 재난을 참사로 키우는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관성들을 기록했다. 이 기록들은 참사의 진상을 거듭 묻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참사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다. '금배지'를 내세워 현장보존이 중요한 화재현장을 출입했던 한 국회의원의 알량한 공명심은 봐줄 만한 일일지 모른다.


뼛조각 몇 개로 가족을 받아든 이가 많았던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대구시는 사고 다음날 군 병력을 동원해 사고현장을 청소했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위키미디어

"우리는 대구지하철 참사 하면, 방화범도 기관사도 아니고 가장 먼저 ‘대구시장’을 떠올립니다" (119p)


유가족들은 대구시가 현장 청소 후 쌓아놓은 쓰레기더미에서 14명분의 사체 일부를 찾아냈다. 실종자 가족이 스스로 ‘유가족’이 되는 지옥 같은 참혹함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참사의 눈물을 충분히 닦아주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유족들의 가슴에 고인 이야기들이 전국으로 흘러야 하겠지만 먼저 지역사회가 듣고 고통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운이 좋아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조금 더 예측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를 마주볼 수 있다. 합의 이전에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141p)


참사의 구조적 원인 규명이 중요


구조적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대형화되고 집적화된 현대 사회의 위험을 개인이 일일이 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 다리가 안전검사를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조심해야 할 당사자는 개인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생산하는 '위험생산자'라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tbsTV, 연합뉴스TV 뉴스화면 : 재편집 박정은


"다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경제활동 과정에서 생산되고 유통된다. 따라서 위험의 생산자와 유통자가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고나 재난은 피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마찬가지다" (179p)


지난 10일 국회에서 제천 화재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회의장 안팎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사가 발생하면 안전 불감증이나 재난대응체계 등 참사의 직접적 원인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이 같은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참사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들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재난의 기록을 통해 비극의 재생산을 막고자 노력한다. 책을 함께 쓴 이들의 명칭이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이라는 사실은 이 책의 목표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참혹했던 '그날'의 기억이 참사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글 김대영, 이미지 디자인 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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