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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Jul 15. 2020

알콜의존증후군 환자 이모씨에게

중독 못지않게 성격장애도 병입니다.

저는 오늘 정말로 실망했습니다. 당신이 그저 환경에 의해 술을 접한 안타까운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도 아셨을 거예요. 제가 당연하게도 평범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당신을 대했다는 것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말하고 행동하되 개개인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고 그것은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금은 예민하게 굴어도 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고 이렇게만 잘 지내시면 괜찮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관련 분야를 잘 모르는 무지렁이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도무지 당신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의 무시하는 태도는 굳이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되겠지요. 간호사이자 여자이고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는 우리에게는 버럭버럭 큰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면서, 실제적으로 처방을 내고 결정하는 의사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어 지렁이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제가 가장 경멸하는 강약약강의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왜 그 때도 저는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비록 직접 당한 일은 아니었지만 전해들은 이야기로 인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려나요? 분명 그렇기에 지금도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고 있는 거겠죠. 당신은 중독이 왜 정신 질환인지를 여실히,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당신에게 감사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짧은 시간에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으니까요. 


간호사와 환자가 아니라, 우리가 병원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당신은 정말로 별로입니다. 나이를 운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되지 않지만 부모님뻘의 사람이 그런 식의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아, 정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요? 물론 우리가 어떤 바른 대처를 하더라도 당신은 당신 멋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죠. 물론 의료진이기에 당신의 행동이 정신적 질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평정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동시에 사람이기도 하기에 감정을 느끼고 축적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병원에서 일한다는 게 폭력에, 그것도 완전하게 타당하지 않은 부당한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 어느 누구도 폭력에 노출되는 게 당연한 사람은 없어요. 하물며 우리는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행동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해를 끼칠 수 있고, 우리도 이제는 법적으로 당신에게 피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어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당신과 같은 정신질환자에게 당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누구 하나 죽어야 바뀐다는 건 이 분야도 마찬가지더군요. 물론 보상을 청구하지 않는 편이 가장 좋은 경우겠죠.  


당신의 현재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성격이 당신이 원한 게 아닐 수도 있겠죠. 당신조차 바라지 않았을 수 있고 지금도 바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결과만 중시하면 안 된다고 해도 모든 종류의 폭력은 결과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퇴원하지 못할 것 같았던 당신도 퇴원을 하고도 시간이 꽤 흐른 7월 중순. 퇴원하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상스러운 욕설을 하던 당신이 아직도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게 참, 싫습니다. 


그래도 잘 사세요. 잘 사셔야 합니다.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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