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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n 23. 2024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오늘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2도까지 올라간다는 예보이다. 아직 6월이 중순 밖에 안 되었는데 한 여름 더위가 벌써  오다니? 기다리지 않던 여름이 이렇게 갑자기 일찍 찾아오니 올여름을 어찌 보내나 은근히 걱정도 된다. 뜨거운 햇볕을 받아 번쩍이는 아스팔트 길에 나서기가 겁이 난다.

그래도 그늘 아래는 아직 괜찮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아파트에서 나오니 다행히 바람이 좀 분다.


오늘은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에 가보려고 한다.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길은 워낙 유명하여  모르는 바 아니지만 샛강에서 “도심 속의 원시림” 같은 숲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은 최근에야 비로소 들었기 때문이다.


샛강 생태공원으로 가까이 가는 길은 신길역, 샛강역, 여의도역 등에서 출발하는 여러 길이 있으나 우리는 5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여의도역에서 출발한다. 여의도역 1번 출구에 열두 명이 모인다. 샛강 생태공원이란 곳이 궁금해서인지, 또는 집에서 가까워서인지, 또는 계단 없는 공원일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 보고 싶었기 때문인지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나왔다.


여의도역에서 나와서  여의나루로를 따라 남쪽 영등포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고 보니 곧 샛강 생태공원입구라는 표지판과 계단이 보이고 샛강 건너편 신길역에서 건너오는 보행교도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니 금세 샛강가에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과연 듣던 대로 온갖 나무들과 풀이 우거져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속에 들어와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다만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만이 우리를 착각에서 벗어나 도심에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자연스러운 원시림 같은 생태공원이 예전부터 있었던 자연공원이 아니고 1990년대 한강 개발 계획에 의해 하마터면 주차장이 될 뻔했던 곳이라지  않는가?  당시에 선견지명을 가졌던 분의 아이디어로 이곳이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조경계의 대모라고 불리는 그 정영선 선생의 안목은 참으로 감탄할 만하고 존경스럽다. 그동안 우리가 다녔던 많은 유명 공원이 그분이 설계한 작품이었다니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감동하게 된다. 요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그분의 업적을 볼 수 있는 작품전시회도 열린다고 하니 한번 가 보아야겠다.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은 그야말로 한국의 자연을 그대로 모방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산속에 들어가서 걷는 기분이다. 물론 산책하는 도시인을 위해서 넓은 산책로도 있으나 울창한 나무들 사이의 숲길과  물가에 갈대가 우거진 숲길 등 오밀조밀하게 오솔길이 많이 나 있어 이길 저길 기웃거리며 그늘을 찾아 걷는 재미가 적지 않다.


다만 우리 보행약자들은 조금만 걸어도 앉아서 쉴 자리를 찾는데 벤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생태환경을 보전하려고 쓰레기통과 화장실이 없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유아용 놀이터는 보이는데 체험하고 놀이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앉아서 생태공원 풍경도 감상할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벤치가 별로 안 보이는 것은 아쉽다. 또 숲 속에 잠시라도 머물러 보지 못하고 걸으면서 스쳐 지나가야 하니 지나치는 숲 속 경치가 매우 아깝다.


결국 샛강역 근처 여의교 다리 밑까지 가서야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벤치를 발견할 수 있어서 여기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어 가기로 한다. 이곳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벤치도 놓여 있는데 빈 벤치 아래 주인 모르는 운동화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여기에 신발을 벗어놓고 운동이나 맨발 걷기를 시작하나 보다.


여름날에는 다리 밑이 그늘이 좋고 바람도 시원하기는 하나 경치를 감상하며 쉬는 장소로는 과히 적합한 곳 같지는 않다. 어두운 데다 머리 위로는 육중한 콘크리트 대교가 우르렁거리고 지나가니 말이다.

우리는 여의교 아래서 잠깐 땀을 식히고 샛강을 따라 계속 걸어서 넓게 트인 한강을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오랜  세월 여의도의 랜드마크였던 63 빌딩 (이제는 근처에 더 높은 고층건물이 들어서서 최고는  아닌 것 같다) 앞의 한강공원이다.

라니씨가 반세기 전에 잠깐 살았던 여의도에서 제일 오래된 고층아파트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주변 풍경이 하도 변해서 주의해서 찾아보아야 보일 정도이다.

여의도 한강공원의 잔디밭은 도시의 공원답게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원효대교가 멀지 않은 강변에 오리배 타는 곳이 있고 그 옆에는 수상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어 우리는 수상식당으로 들어간다. 이 식당의 주 메뉴는 이탈리아 음식인 것 같으나 덮밥, 볶음밥 같은 한식도 있다. 젊은 외국인 단체관광객과 직장인들도 단체로  많이 찾는 식당인 것 같다.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면 후식 음료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니 이게 웬 떡이냐?! 고 모두들 좋아한다.


식후에 귀가 길은 원효대교 아래를 지나 마포대교 쪽으로 가는데 마포대교 가기 전 왼편으로 여의나루역(5호선)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여 모두 그리로 가서 그 역에서  헤어지기로 한다. 몇몇 친구는  

9 호선을 타러 여의도역까지 걸어가겠다고 하면서 계속 걸어간다.

오늘은 여의도역에서 출발하여 샛강과 한강을 따라 여의나루역까지 걸었으니 여의도를 반 바퀴 돌아본 셈이다.

오늘도 만 이천보 넘게 걸었다.


2024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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