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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Sep 17. 2022

'실패'한 선택은 없다

<제11회 스웨덴영화제 청년 앰버서더 - vol.4 [타이거즈]>


#제11회스웨덴영화제 #아트하우스모모 #청년앰버서더

 영화 <타이거즈>가 보여준 주제 의식은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청년들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영화 <타이거즈>에서 보여준 비정한 프로 스포츠 세계와 비슷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도태될까 두려움에 떨며 살거나, 심지어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이어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못 이겨 억지로 그 방향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지금까지 이룬 노력이 허사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아직 어떤 다른 길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만으로도 그것은 새로운 선택을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마르틴의 모습처럼 행복으로 향하는 큰 첫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이전의 노력이 물거품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바로 '성공'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혜성같이 NBA 무대에 데뷔해 만년 약팀이었던 토론토 랩터스를 NBA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려놓았던 토론토의 프랜차이즈 스타 '더마 드로잔'이 2018년의 어느 날 트위터에 남긴 트윗 하나는, NBA를 비롯한 프로 스포츠 산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지금도 그 우울증이 계속되고 있음을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다. 프로 스포츠 산업은 무엇보다 '약육강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자신이 이곳에 속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되기 위해 다른 이들을 밟고 올라서야 하며, 그 과정에서 나의 약점을 들킨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를 먹이로 내던지는 일과도 같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육체적인 부상도 숨기고 경기에 나서려 하는 세상에서,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나의 '나약함'을 입증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swedeninkorea @arthousemomo


 이번 제11회 스웨덴 영화제의 개막작인 <타이거즈>도 '축구'로 '성공'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온 어린 청년이 비정한 프로 스포츠 세계의 '무한경쟁' 속에 뛰어들며 겪게 되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축구 재능을 뽐낸 16세의 스웨덴 소년 '마르틴 벵트손'은 그 실력을 인정받고 어린 나이에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인터 밀란'에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마르틴은 '축구'를 스스로 성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고 끊임없이 본인을 채찍질하며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자신이 세 살 때부터 동경해 온 클럽에서 뛸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가 인터 밀란에서 처음 발을 딛게 된 팀은 프로가 되기 직전 거쳐가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프리마베라' 팀이었다. 겨우 16세인 소년이 유소년 팀도 거치지 않고 성인들과 함께 뛰게 된 것이다. 아직 어린 데다가 조금은 내성적이고 섬세한 면을 지닌 '마르틴'에게 프리마베라 팀 숙소 속 자신은 마치 맹수 우리에 던져진 먹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체육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특유의 마초적인 분위기와, 누군가가 들어오면 누군가가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동료들은 새로 온 마르틴을 환영하기는커녕 견제하고 텃세를 부리기 바빴다. 그럴수록 축구 앞에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마르틴은 성공을 향한 갈망과 노력으로 그것을 이겨내고자 더 열심히 훈련하고 또 훈련하며 약해지지 않고자 애쓴다.


 이런 단계에선 재능, 기술, 스피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건 바로 '굶주림'이야.


@swedeninkorea @arthousemomo

 

 구단 관계자들은 사실 꿈을 품은 어린 선수들의 그 '굶주림'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미 '프리마베라' 단계에 올라온 선수라면 실력적인 면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선수들이기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경쟁과 승부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절박함'과 '굶주림'이라고 생각한 것일 테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앞에서 젊고 어린 선수들은 육체적으로는 누구보다 뛰어나고 완벽한 사람들 일지는 몰라도,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프리마베라 팀 동료들은 마르틴에게만 텃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우정과 의리로 똘똘 뭉쳐 새로 들어온 마르틴을 적으로 여기고 일부러 그를 따돌리는 듯했지만, 마르틴의 입단으로 결국 '월터'가 방출당하게 되자 동료들은 겉으로는 그의 미래를 응원하지만, 속으로는 그를 경쟁에서 도태된 무능력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월터도 본인의 방출이 확정되자 숙소의 온갖 집기를 부수고 던지며 과도하게 분노를 표출했다. 결국은 그들은 기회와 꿈에 굶주린, 각자에게 '동료'가 아닌 '경쟁 상대'이자 밟고 올라서야 할 적일 뿐이었던 것이다. 영화 <타이거즈>의 제목이 은유하는 것처럼, 프리마베라 팀의 숙소는 동물원의 호랑이 우리와도 같았으며 그 안의 선수들은 한정된 먹이 즉, 꿈을 이루고자 발톱을 숨긴 채 으르렁대는 호랑이들이었다.


 축구 실력이 출중했던 마르틴은 동료들 사이에서 그 실력을 먼저 인정받고 겉으로는 승승장구해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다. 지금은 잘하고 있지만 언제든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여 살 수밖에 없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밝았던 입단 당시의 모습과는 달리,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 과정에서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동료를 만나고, 함께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던 스웨덴 출신의 모델 여자 친구도 사귀며 조금씩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지만, 부당하고 억울한 이유로 다른 팀으로 억지로 이적하게 된 동료의 모습과, '성공' 앞에서 행해야 할 노력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차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성공'과 '전진'이라는 목표에 갇혀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답답함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실제 마르틴 벵트손은 뉴스 인터뷰에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를 했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입 속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가위로 치아에 고정된 교정기를 떼어내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답답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후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wedeninkorea @arthousemomo


 그가 정신적 고통에 허우적대는 지점은 바꿔 말하면, 그가 스스로 행복하지 않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 첫 부분에 마르틴의 에이전트는 자신의 선수 시절 동료들과의 첫 만남에서 웃긴 얘기를 해보라는 말에 뜬금없이 돼지 울음소리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멍청해 보이는 돼지도 자신이 도축되는 순간은 귀신같이 알고 처량하게 운다는 에이전트의 말처럼, 영화 후반부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숙소를 몰래 나와 술을 마시던 마르틴은, 웃긴 얘기를 해보라는 사람들의 말에 슬픈 표정으로 돼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울음소리는 마르틴이 스스로 죽어가고 있음을 자각했으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르틴은 '축구' 자체로 행복한 아이가 아니었다. 축구는 아버지의 버림을 받은 그가 '성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써 존재했을 뿐이었고, '즐거움'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끊임없는 '노력'과 '채찍질'만을 삶의 미덕으로 여기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들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가슴 아파하던 마르틴의 엄마는 이럴 바에는 모든 걸 접고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그런 엄마에게 마르틴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돌아가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려요.

 마르틴이 정말 축구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꼈다면, 결코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 저는 축구가 너무 좋아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이 아깝다는 이 한 줄의 대사는 어쩌면 그가 축구로 행복하지 않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이기도 했다.


 그는 결국 그렇게 오래도록 꿈꿔왔던 무대를 뒤로하고 스웨덴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영화는 마르틴의 선택을 '포기'나,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그는 잠시 방향을 잘못 잡은 것뿐이며, 이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가고자 하는 '궤도 수정'이자 '새로운 시작'일뿐 결코 스스로 나약함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르틴은 영화에서 계약 때 받은 상여금으로 차를 구매하지만, 내내 운전하기를 두려워했다. 물론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도 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동료의 말에도 그는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어쩌면 자동차는 너무 어린 나이에 찾아온 거대한 기회와,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마르틴을 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르틴은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며 영화 초반 이후 내내 보여주지 않았던 밝은 미소를 보여준다.


 영화 <타이거즈>가 보여준 주제 의식은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청년들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영화 <타이거즈>에서 보여준 비정한 프로 스포츠 세계와 비슷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도태될까 두려움에 떨며 살거나, 심지어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이어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못 이겨 억지로 그 방향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지금까지 이룬 노력이 허사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아직 어떤 다른 길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만으로도 그것은 새로운 선택을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마르틴의 모습처럼 행복으로 향하는 큰 첫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이전의 노력이 물거품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바로 '성공'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나고 론니 산달 감독님을 모시고 정지혜 영화평론가님과 함께 GV가 진행되었다. 영화 속 다양한 장면들의 숨은 의미와 작품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 마르틴을 연기한 에릭 엔예 배우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혹독한(?) 훈련까지 영화 뒤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는 론니 산달 감독님께 '하지 않음을 결정하는 것이 포기나 실패가 아니라면, 감독님이 정의하는 실패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 어떤 것도 실패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감독님에게는 과연 무엇이 실패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런 내 질문에 감독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진실되지 않는 것

 

 감독으로서 일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남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며 어느 것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붙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말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을 수 있다고 결국은 그것에 진실되게 응답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실패'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대답이었다. 지금 이 영화를 보고, 감독님의 대답을 듣고 있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반추해보게 되는 멋진 말이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얘기한 '더마 드로잔'은 우울증 때문에 농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농구를 불우했던 자신의 삶에 하나의 '안식처'로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지금도 열심히 프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용기 있는 고백은 NBA와 프로농구 산업 전반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선수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비롯한 일부 NBA 팀에서는 '멘털 코치'를 고용하며 이를 꽤 중요한 문제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르틴 벵트손'은 축구선수로서의 커리어는 포기했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자서전으로 엮어내며 작가로서 살고 있다. 그는 유럽 프로축구 산업에서 선수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용기 있는 문제 제기를 했고, 점점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 무대에 남기로 선택했던, 그 무대를 떠나기로 선택했던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고,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은 산업 전반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선순환의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살아간다. 1분 후의 미래조차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어떤 선택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큰 고민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의 무게에 큰 부담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떤 선택도 '성공'과 '실패'로 손쉽게 재단하려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실패'로 보이지만 먼 훗날 '성공'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은 '성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실패'의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삶의 모습이다.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이 불행 속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건져 올리는 방법은, 론니 산달 감독님의 말처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라가고자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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