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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Sep 19. 2022

'현실'이 전하는 진정한 공포

<제11회 스웨덴영화제 청년 앰버서더 - vol.6 [노크]>

#제11회스웨덴영화제 #아트하우스모모 #청년앰버서더


*스릴러 영화 리뷰의 특성상, 글에 크고 작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꼭 영화를 관람하신 후 읽어주세요!


 사람들에게 어떤 작품의 장르를 '스릴러'라고 소개하면, 으레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거대한 미스터리와 그 진실을 향해 가는 길목마다 놓여있는 '빵 부스러기'와도 같은 떡밥들, 그리고 그 떡밥들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가장 절정의 순간에 보는 이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거대한 '반전'까지. 최후에는 모든 떡밥이 회수되고 그 미스터리에는 '오싹함'이 남아있을지언정, 한 치의 의문이나 답답함도 남지 않은 채 마무리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스릴러 영화의 흥행 공식은 대체로 이러한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소개할 영화 <노크>의 장르는 스릴러, 정확히 말하면 '심리 스릴러' 영화다. 바닷가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주인공 '몰리'는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정신병원 생활을 하다 퇴원 후 어느 한적한 도시 한편에 자리한 아파트에 자신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swedeninkorea @arthousemomo

  새로운 일상의 시작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잠시, 첫날부터 밤마다 그녀의 귓전을 때리는 노크 소리에 몰리의 일상은 다시 불안으로 잠식당한다. 심지어 더욱 의문스러운 점은 그 노크 소리를 몰리 본인 외에 그 어떤 이웃들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위층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를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몰리는 계속해서 이웃들을 의심하고 소리가 들릴 때마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이웃들과 경찰들은 오히려 그녀의 정신적인 문제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 여기고 그녀를 정신 착란으로 몰아간다. 영화 <노크>가 사건의 주요 소재로 삼은 '층간 소음'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소재다. '궁금한 이야기 Y'를 보면 매주 빠지지 않고 한 편씩은 꼭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 아닌가. 이 영화는 도시에서 사는 독신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을 미스터리로 그 공포감을 무기 삼아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영화 <노크>는 앞서 소개한 스릴러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노크>는 '친절하지 않은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자신이 던진 그 어떤 떡밥도 제대로 회수하지 않는다. 몰리의 애인은 바닷가에서 어떤 사고를 당한 건지, 그녀의 주치의 '크리스토퍼'는 정말 실존하는 인물인 건지, 건물 관리인이 그녀의 집 현관에 달아주려는 명패에 대해 어제 달았다는 몰리의 주장과, 그런 적 없다며 오늘 명패를 달러 왔다는 관리인의 주장 중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대관절 영화가 끝나도 그러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노크 소리'가 과연 실재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결국 그녀의 말이 옳았음이 건물에 불이 난 후 구조대가 사람들을 구조하며 나누는 무전 소리를 통해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장면이 아닌 오디오로만 처리함으로써 그 실체를 관객들에게 소상하게 알리지 않는다. 목소리로서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위층의 이웃들 중 누가 범인이었던 건지 피해를 당한 여성의 정체에 대해서도 영화 <노크>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완벽한 떡밥의 회수와 한 치의 의문도 없는 사건의 해결을 기대하고 영화를 관람했던 관객은 아마도 상영관을 나오며 찝찝한 기분을 숨기지 못할 테다.


@swedeninkorea @arthousemomo

 하지만  영화의 서스펜스천장 너머로 들려오는 노크 소리와, 몰리의  벽으로 스며드는 피의 정체가 진짜냐 아니냐, 혹은 앞서 소개한 떡밥들이 진짜냐 아니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어디까지가 몰리의 정신착란에 의한 환각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전혀   없는 원초적인 '무지'  자체에서 나온다.


 그러한 측면에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훌륭했던 연출 중 하나는, 몰리의 얼굴에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주변 상황을 진행시킴으로써 사건 그 자체가 아닌 그 사건을 대하는 몰리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정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직접 들은 것과 달리 아무 문제도 없는 윗집 이웃들을 확인하며 당황하는 몰리의 표정은 이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표정이기도 하다. 즉,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미궁 속의 사건 안에서 관객이 몰리와 완벽히 동기화되며 영화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영화 <노크>는 관객들의 그 어떤 궁금증도 제대로 해소해주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게 결말을 활짝 열어놓으며 극적인 서스펜스보다 '현실적' 서스펜스에 더 집중해 영화 속 몰리의 공포를 관객 자신의 공포와 동기화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거대한 도시 속 타인들과 사회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개인이 느낄 수밖에 없는 일상적 공포를 선사한다.


@swedeninkorea @arthousemomo

 영화 <노크>를 관통하는 거대한 담론이자 주제 의식이라 할 수 있는 '가스 라이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100명이 속한 사회에서 한 명이 진실을 봤어도, 99명이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거짓말한다면, '거짓'은 너무도 쉽게 '진실'로 둔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사회가 가지는 비합리성이며 그 비합리는 때로 영화 속 '몰리'의 모습처럼 무고하고 선량한 개인을 철저히 파괴하기도 한다.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인해 도시는 점차 비대해지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했지만 그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은 가족으로서 모여 살지 않고 '1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작게 '점조직화' 되고 있다. 아마도 아까 말한 99명 모두가 한 명을 파괴하고자 연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이러한 사건 자체에 무관심한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결국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비교적 더욱 약할 수밖에 없는 '독신 여성' 캐릭터 몰리를 통해 영화 <노크>는 도시를 살아가는 여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등골이 서늘한 서스펜스를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를 차용해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하나의 '르포르타주'와도 같다. 우리의 고정관념 속 '스릴러'의 공식을 따라가지 않는 이 영화가 답답할 수는 있겠지만, 이 찝찝함과 갑갑함이 우리의 현실에 더욱 생생히 가닿아 있다는 점에서 영화 <노크>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무서운 건, 누구도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결과적으로 몰리를 통해 무고한 피해 여성을 구해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비정하고도 거대한 도시 속에 얼마나 많은 이런 피해자들이 있을지 알 수 없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제2의 몰리, 제3의 몰리가 얼마나 많이 생겨날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영화 <노크>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공포와 서스펜스는 우리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이런 사건이 찾아올 수 있다는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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