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원 Jul 13. 2023

티 있는 순수함

영화예찬 인물열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 무니 (Moonee)

*이 리뷰는 인물 중심의 내용으로 서술되어 영화를 본 후에 읽으시면 더욱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 편견 없이 순수하고,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언제 보아도 '티 없이' 아름답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수록 절대적인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다 보니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은 과도한 보호 속에서 '티 없는 순수함' 보다는 '영악함'을 배운 아이들도 많은 것 같아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주인공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를 비롯한 모텔촌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보여준 '순수함'은 왠지 모르게 새로웠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주인공인 무니가 보여준 그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티 있는 순수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돈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빈민으로서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무니의 웃음소리와 밝은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밝은 모습으로 세상을 대했다. 하지만 그 순수함엔, 이유 모를 '티'가 느껴졌다.  


그것은 무니와 친구들이 놀이로 차에 침을 뱉고, 여느 아이들이라면 웃으며 손을 흔들만 한 하늘 위를 나는 헬기에 가운뎃손가락을 펼치며 욕설을 내뱉는 등 짓궂은 말과 장난에 서슴없는 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시선이 아닐까 싶다. 그런 행동들은 아마 가난한 이들의 고된 삶 속에서 주로 거친 대화가 오고 가는 주변 환경 속 그런 어른들을 단순히 흉내 내는 '모방'이거나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는 이에게 그것은 '티'라기보다 순수한 '동심'으로 다가온다.


지구상 최대의 테마파크 디즈니랜드가 옆에 있지만, 뛰어놀 만한 놀이터 하나 없는 이 역설적인 곳에서 무니와 친구들은 관리인 바비와 엄마와 같은 어른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장난을 많이 쳤다. 하지만 무엇 하나 어른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저 신나게 뛰어놀았을 뿐이었다. 온 모텔이 정전되도록 차단기를 내린 것도 새로 사귀게 된 친구 젠시에게 자기 집을 구경시켜 주다가 일어난 실수였고, 풀장에 죽은 물고기를 넣어둔 것도 물고기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한 마음씨 때문이었다.



온 모텔에 정전 사태를 일으킨 무니에 대해 따지고 책임을 묻고자 헤일리의 방을 찾았던 바비. 그러다 잠시 무니와 바비가 눈이 마주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와중에도 바비에게 활짝 눈웃음을 날리는 무니에게 그는 순식간에 무장해제되어 버리고 만다. 미국을 휩쓸고 간 경제 불황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버거운 영화 속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관심과 너그러움을 보여줄 삶의 여유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무니의 그 해맑은 웃음과 성격이 아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합치될 때 왠지 모르게 짠하고 무거운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철이 일찍 든 아이들처럼, 밝기만 해 보이는 무니의 모습에서 '눈치'가 느껴지는 순간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테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 느껴지는 서글픈 감정, 내가 느낀 '티'는 바로 이것이었다. 엄마와,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다가도 무니는 자신과 가족의 앞에 놓여 있는 팍팍한 현실과 마주칠 때마다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엄마 헤일리가 사회복지사에게 일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고 있던 무니는 그런 엄마를 걱정과 연민이 담긴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엄마를 바라보는 무니의 눈빛은 엄마가 왜 화내는지에 대한 궁금함의 눈빛이 아니었다. 아이는 분명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무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이 눈빛이 보는 내내 참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그렇다고 무니가 철이 든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무니는 더 밝고 쾌활한 어린아이다운 모습을 러닝타임 내내 보여주지만, 그것은 이 영화가 더욱 가슴 아픈 이유이며, 무니가 '티 있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티 있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대목이 이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한 달 이상의 장기투숙을 할 수 없는 매직캐슬 모텔은 필히 하루를 다른 공간에서 묵은 뒤 다시 투숙해야만 하는 규칙이 있었다. 그렇지만 빈민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모텔 관리인들의 배려로 옆 모텔에서 조금 싼 가격에 하루를 묵게 해주는 이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데, 옆집 모텔의 주인이 바뀌고 이 규칙을 일방적으로 깨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무니는 어른들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자 이내 눈치를 채고는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Give us a break, Lady!
좀 봐줘요, 아줌마!


이 대사가 내게는 아이가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간절한 요청처럼 들렸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부족하나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엄마와 우리 가족에게 세상은 왜 이렇게 차가운 건지, 누구보다 날 사랑하는 세상 유쾌한 엄마와 함께 걱정 없이 살아볼 수는 없는 건지. 겉으로만 보면 이 장면을 비롯한 많은 대목에서 무니를 예의 없고 우악스러운 아이처럼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이는 특유의 기죽지 않는 밝은 모습으로 나름대로 엄마와 함께 세상에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보여주는 순수함이 '티 있는 순수함'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른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 정도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아는 속 깊은 무니는 결코 대책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명랑하고 활발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는 차갑고 비정한 세상 앞에 철든 '어른스러움'이 아닌 더욱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맞서고 있었다. 무니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때가 묻은 어른스러움이 아닌, 티가 묻어버린 '아이다움'이었다.


모든 걸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니는 자신이 속한, 하루하루 너무나 즐거운 이 세상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그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시종일관 신나고 웃음을 잃지 않는 무니의 짓궂은 모습에서 보는 마음의 한 켠에서는 아릿한 마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 헤일리가 성매매를 가장한 도둑질(?)을 통해 얻게 된 디즈니랜드 입장 밴드를 400달러에 파는 이 장면에서 돈을 받은 엄마가 무니에게 밴드를 드리라고 말하자, 무니는 아저씨에게 군말 없이 좋은 시간 보내시라며 밴드를 건넨다. 무니라고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니는 엄마 헤일리에게 단 한 번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아이는 아저씨에게 밴드를 건네며 아저씨와 밴드 그 어느 곳도 쳐다보지 않은 채 먼 허공을 응시한다. 무니 자신도 누구보다 디즈니랜드가 궁금하고, 가서 놀아보고 싶은 어린아이일진대,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장면 속 무니의 시선에선 그 숨길 수 없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얻게 된 돈으로 헤일리와 무니는 신나게 쇼핑몰에서 장난감 쇼핑을 즐긴다. 엄마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을 너무나 즐거워하는 무니에게서 그 '티 없는 순수함'의 실체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상 모두가 스트립 댄스와 성매매로 돈을 버는 헤일리를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욕했지만, 무니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자신을 키우기 위해 리조트에서 몰래 향수를 팔고 때로는 몸까지 팔아가며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딸이 갖고 싶은 장난감과 친구들의 선물까지 이것저것 함께 고르며 신나게 뛰며 놀아주는 엄마의 마음에 아이는 환한 웃음과 즐거운 몸짓으로 보답했다. 아이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엄마와 함께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곳이었고, 이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순간 엄마와, 친구들과, 이 동네와 헤어져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젠시를 찾아간 무니가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더없이 슬프게 다가온다. 아무 말도 못 하겠다며, 어렵게 '잘 있어'라는 말을 꺼내는 무니의 모습은 그 아쉬움과 절망이 고스란히 느껴져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 장면을 위해 그 모든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로 누구라도 울지 않을 수 없는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뜻하지 않은 불장난 이후 스쿠티와 놀지 말라며 스쿠티 엄마가 매몰차게 자기 앞에서 문을 쾅 닫아버렸을 때도 무니는 그저 좋아하는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게 친한 친구 한 명을 잃게 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가족의 갑작스러운 차가운 모습에 무니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무니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아이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사라지고, 너무나 소중한 자신의 세상이 점차 실제로 사라져 감을 느끼면서 조금씩 불안해졌을 테다.


자신과 엄마를 떼어놓기 위해 찾아온 아동국 직원들의 물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무니가 결국 엄마를, 마지막 남은 단짝 친구 젠시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무니가 힘겹게 지키던 그 명랑한 모습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리고 이 장면이 쓰리도록 가슴 아픈 이유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기가 속한 이 세상이 너무 소중했던 무니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느껴왔기 때문일 것이다.


'티 있는 순수함'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무니는 지금까지의 영화에서 본 적 없던 새로운 느낌의 캐릭터였다. 무니는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장난기 많고 유쾌하며,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얼굴로 벼랑 끝에 내몰린 삶에 대한 불안함과 고단함을 표현해 냈다. 그런 무니를 연기한 브루클린 프린스의 훌륭한 표현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젠시는 무니의 손을 꼭 잡고 지금껏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디즈니랜드로 향한다. 어디선가 이 마지막 장면을 무니가 더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한 미래를 그리게 된 것을 말하는 '해피 엔딩'을 표현했다고 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이가 사랑하던 세상을 그저 뭉개버린 채 새 가족에게 아이를 데려다 놓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줬다고 말한다면, 그 미래가 조금은 밝아졌을 수는 있겠지만 아이의 감정과 정서에 그것이 그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아이를 계속 두는 것이 아이의 행복을 위하는 일도 아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어쩌면 그 질문에 결국 답을 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이 세상에서 최고로 '동화적인' 곳으로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겐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빛나고 아름다울 디즈니랜드 옆의 초라한 그늘 속에서도 그보다 더 값진 행복을 만들며 살아온 무니가 동화 속 세상을 향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그저 앞으로 이 아이의 삶에 '티 없는' 행복함만이 가득하기를 깊이 바라면서 말이다. 쓰러져도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를 좋아하는 착한 무니가 어디서든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길 다시 한 번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이 전하는 진정한 공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