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서 만난 길고양이
올해 3월, 아직 내가 이태원을 서울 거점으로 할 때의 일이다.
그때는 특별한 외부 미팅이 없으면 #아씨이태원이라는 이름의 작업실 겸 모임 공간에 주로 있었다. 그날 이태원 공간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느그막이 저녁을 먹으러 이태원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길 입구에서 골목 안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앉아있는 이 녀석을 만났다.
다른 곳에서도 길냥이들과 많이 마주치긴 하지만, 이 녀석은 좀 달랐다.
산책하던 강아지들이 시끄럽게 짖어도 도망가지도 않고, 내가 꽤 가까이 다가가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집중해서 안쪽을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이 녀석을 보다 무심코 말을 걸고 말았다.
너, 누구 기다리니?
이 녀석은 그제야 힐끗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내가 모르는 얼굴이네?' 라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보더니 다시 아까처럼 계속 골목 안쪽을 주시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두세 번 말을 걸었지만, 지금 누구 기다리는 중이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잠깐씩만 다시 내 얼굴을 확인할 뿐 다시 시선을 골목 안쪽으로 돌린다. 귀엽기도 하고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고 저녁 먹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누군가를 기다리던 길냥이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왜 그렇게 집중해서 골목을 주시했던 걸까? 다른 고양이 친구를 기다렸던 걸까?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늦게 와서 괜찮은 건지 걱정했던 걸까? 그냥 때가 되면 자기 저녁을 챙겨주던 사람을 기다렸던 걸까? 어쩌면 말을 걸었던 내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잠깐 봤다가 아니구나 하고 다시 기다렸던 걸까? 그게 아니면 그냥 피곤해서 멍 때리고 있던 중이었을까?
이런저런 상상으로 그 녀석의 이야기를 지어보았지만, 사실 나는 그 고양이에게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우리들은 서로 말도 안 통하잖아?!)
뉴스를 보다 보면 세상엔 참 내가 모르는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자기 가족들의 코로나가 걱정돼서 돌보던 노인들을 죽게 내버려 두었다는 스페인 요양소 이야기, 한 때 한국을 떠들썩하게 하던 n번방 운영자나 가입자, 그리고 피해자들 이야기, 4월 국회의원 총선을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이야기, 코로나 확산으로 패닉에 빠진 유럽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상황과 이야기들, 코로나 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 최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집주인과 세입자들의 이야기... 등등... 정말 열거만 하기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것이 세상이다.
그때 만났던 이태원의 길냥이 때처럼 나도 그 뉴스에서 나왔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기사에 나온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고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조금은 알게 되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그래서 난 부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자신 안에만 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 글로 쓰든디 말하든지 영상으로 만든지 여하튼! 아무리 작고 바보 같은 소리라도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아니, 당장 나부터 그래볼까?
:
2020년 3월의 어느 날 이태원 거리에서.
2020년 3월 27일 새벽에 첫 글을 쓰고,
2020년 7월 2일 저녁에 마무리 한,
#릭의어느날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