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힘든 만큼 나도 상처 받았다
처음 상담실에 찾아왔을 때 나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늘 나를 '예민하고 짜증 많은, 이기적인 둘째'라고 비난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양가적인 마음을 내비쳤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상담 선생님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가족들 때문이라고 했다. 나의 성격과 자아 형성 과정에서 잘못된 많은 부분들이 특히나 엄마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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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자랐고,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금전적인 걱정 없이 살아왔다. 한국에 와서도 좋은 집에서 혼자 살면서 친구들을 초대해 놀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살 수 있을만한 것 이상의 물건들도 많이 지니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은 모두 엄마아빠가 정서적으로 채워주지 못한 것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노력이었고, 나는 그런대로 만족하며 산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대가로 내가 해내야 할 역할과 책임감이 점점 무거워졌다. 갑작스럽게 운전을 배워야 한다거나, 외국에 있는 가족들을 대신해서 혼자 이사 갈 집과 사무실을 알아보고 계약을 준비해야 한다거나, 등등. 그와 동시에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과 인간관계에 대한 무수한 생각들 때문에 정서적으로 많이 결핍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감정의 고갈로 상담실을 찾은 것이었다.
20회기 정도 되는 상담 세션을 진행하면서, 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엄마아빠는 당시엔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 가서 맞벌이를 하며 자수성가했고, 엄마는 돈벌이와 자식 교육에 자기의 인생을 바쳤다. 사업하는 남편을 둬 매일 골프를 치거나 쇼핑몰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다른 아줌마들을 보면서, 우리 엄마의 인생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위해서라도 좋은 대학교에 가고 일찍 취업을 해서 한국에서 혼자서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다.
지금 보면, 엄마도 나도 서로를 위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채 참아왔고, 서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남부럽지 않은 집에서 살고,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니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원했던 건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와 '오늘 어땠는지' 물어봐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다른 엄마들이 학교에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내 친구들의 진로를 같이 고민하는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학원을 돌며 어중간히 성적이 맞는 과를 골랐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축하 대신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정도의 재정적인 투자가 있었는데, 그 정도 대학은 가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 이후로도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나는 혼자만의 결정으로 순간의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모두 만족스러운 선택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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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좋지, 차 있지, 맨날 좋은 가방 사주지, 뭐가 문제야?' 가끔은 나 스스로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채워지지 못한 정서적인 결핍은 너무나도 자주,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서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누군가가 나를 좋다고 하면 '왜일까?'라는 의심이 앞서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과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고 나를 버리면서까지 애정을 쏟는다. 힘들게 가족을 일궈온 엄마로부터 '힘든일은 더 많아' 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맹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철야에 주말 근무를 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고, 늘 누군가와의 의논이나 정보가 부족해 내가 '딱' 원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인 어중간한 결정을 내려가며 살아왔다.
이제까지는 '엄마를 이해해줘야 한다' 라는 생각이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 라는 생각을 이겨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엄마가 살면서 부족했던 것들을 자식에게 채워주려고 했고, 그건 자식인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경제적인 부족은 엄마의 원가족에서 풀지 못한 문제였지 자식 세대인 나에게 필요한 건 아니었다. 금전적으로 부족하다 한들 나는 엄마와의 시간, 엄마와의 대화를 더 가져야 했다. 삶의 터전이 분리된 지 1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지난 일들을 고칠 수는 없다. 이제와서 엄마와 대화를 시작하기에 나는 너무 지쳤고, 대화를 하려면 엄마도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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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나는 엄마의 인생이 불쌍하지만, 엄마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나이가 들어보니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글들도 너무 지긋지긋하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딸들이 가지고 있는 '착한 딸 컴플렉스'에서 벗어나, 엄마를 원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