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새로운 아이폰, 12 pro가 출시됐다. 11 pro를 구매한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아이폰이 등장했다. 새로운 와인바가 오픈했다. 구글맵에 찍어둔 와인바들도 한 군데도 가보지 못했는데 또 맛집이 오픈을 했다. 한남동에 새로운 복합 문화 카페가 생겼다. 나인원 한남도 못 가봤는데. 2021년 다이어리가 나오고 있다. 아직 2020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넷플릭스에 새로운 드라마가 올라왔다는 알림메일이 연속해서 온다. 찜해 둔 컨텐츠는 아직 리스트가 줄줄인데도.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모두가 하루라도 더 빨리 건강해지려고 운동하고, 누구보다 먼저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기 위해 새로운 맛집에 가고,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특별한 건 없을지 고민하고 행동한다. 당장 생각나는 밥 한 끼 겨우 사러 간 빵집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하루 첫 걸음으로 내딛은 헬스장에는 바쁜 하루를 쪼개어서 운동하러 온 사람들로 화이팅이 넘쳐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무언가를 하다가도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와서 주저앉고 괴로워하는 사이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짙어지는 계절이 왔다. '올 해는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고 못한 것도 많잖아, 그러니까 없던 해로 해주면 안될까?' 하는 마음으로, 자고 일어나면 2019년 11월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밖에는 없는 채로 11월이 시작됐다.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애걸복걸 잠시만 멈춰달라고, 지난해부터가 안되면 지지난달로라도 돌아가자고 매달리고 있다.
아이폰 11 pro를 쓰는 사람들은 아직 질리지 않았을 거고, 서울 땅에만 해도 맛집과 카페는 충분히 많고, 다들 아직 선선한 가을 날씨가 좋을거야. 그러니까 나 좀 기다려줘, 천천히 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