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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규 Aug 08. 2021

[교내신문사 칼럼 백업] 노동과 언론

신일고등학교 교내신문사 칼럼 백업 : 노동의 현실과 언론의 역할

 얼마 전, 대선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근로자가 원한다면 주 120시간으로 2주쯤 일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마치 제가 120시간씩 일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왜곡한다”라며, “주 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데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한 것”이라 해명했다. 생산성을 위해 노동자와 이용자가 합의를 하여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씨는 매일경제지와 인터뷰 중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대선 주자들의 노동관을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 노동 환경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해명대로 노동시간 기준을 노동자와 이용자 간의 ‘합의’를 통해 유연하게 결정하게끔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더 나아가서, 현재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다른 각종 규제들까지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윤 전 총장의 발언과 주 52시간제 등의 규제 완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노동자의 선택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자들이 주 120시간이라도 일하고 그만큼 더 벌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노동시간을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현실성 없다는 것은 ‘주 52시간제’라는 명칭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분명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며,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12시간의 연장 노동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국가는 주 40시간을 노동시간으로 규정했는데 그 명칭은 ‘최대’ 노동시간인 주 52시간제가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선 ‘최대’ 노동시간이 곧 ‘최소’ 노동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즉, 현장에선 ‘넘겨선 안 되는 시간’이 아닌 ‘최소한 채워야 하는 시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 줘야 하는 시급’으로 정해졌지만 현장에선 ‘이 이상 받을 생각 하면 안 되는 시급’으로 통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노동 조건을 정하는 교섭의 주도권이 대부분의 경우 이용자 측에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다.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이용자가 최저임금만, 혹은 그보다 못한 금액을 지급하려 한다면 노동자는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주장을 더 반영한 조건을 내놓는 대신 다른 노동자로 갈아치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직장을 거부하고 다른 직장을 찾으려 해도, 학력과 경력에 따라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되는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사 간의 동등한 ‘교섭’이나 ‘합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환상이자 망상이며, 때문에 ‘주 120시간 노동에 합의’하는 것은 사측의 일방적인 규제 무시 선언이자 비열한 정당화나 다름없다. 혹자는 그러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능력’을 쌓아 좋은 조건을 보장하는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노동권은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다. 노력하여 ‘쟁취’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주 120시간 일할 선택권’ 같은 것을 현대 문명국가가 존중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더 일하고 더 벌 권리’라고 납작하게 생각해선 안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런 선택권을 노동자가 정말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스스로 장기를 떼어내 팔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자해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만들겠다며 협박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부가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18년 만에 주 68시간제에서 주 52시간제로 낮춘 것은 노동 현장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주 52시간제의 도입 이전인 2017년 대한민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2018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148시간) 다음으로 길어 2위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산재 신청 건수 중 과로사는 9964건이었고,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작년과 재작년에도 매년 300명 넘는 노동자들이 과로로 사망했다. 특히 윤 전 총장이 예시로 든 게임 업계는 문제가 심각하다. 게임 개발자가 초장시간 근무를 이어가던 중 급성심근경색 등으로 돌연사하는 일이 빈번하다. 해당 사례 중에는 주 근무 시간이 95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국의 악명 높은 산업혁명기 노동시간이 주 90시간,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주 98시간을 기록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이는 매우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수준이다.


 과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재해에 노출되어 생명을 위협받으며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오늘도 희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2.5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이다. 산재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사망자가 주휴수당도 없이 일만 있으면 휴일에도 나가야 하는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고가 장비 미지급이나 안전망 미설치 등 비용 절감을 위한 규제 무시로 일어난다. 이를 막기 위한 당국의 현장 감독 역시 허술한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인 각종 규제들을 '합의'를 통해 유연히 조정하자는 주장은 일하는 모든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언론은 이러한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취업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부당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다 다치고 죽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얼마 전에도 서울대 기숙사에서 청소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보다 이전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택항 부두에서 일하던 대학생 이선호(23) 씨가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그 이전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 계약직 김용균(24)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건이, 그 이전에는 현장 실습을 나간 공고생 김대환(19) 씨가 야간작업 중 무너진 지붕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故 이선호 씨는 평택항에서 300kg 무게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해당 사고 컨테이너는 사고 8일 전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들의 죽음보다 강변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실족한 의대생의 죽음에 더 주목했다. 실족사한 의대생의 죽음에서 억지로 타살 혐의점을 찾아내고 억울한 죽음인 것처럼 보도하며 온 나라를 뒤집은 한국 언론은 이선호 씨가 항구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했을 때엔 지면에 보도하지도 않고 단신 처리했다. 사고 2주 뒤, 유족이 기자회견을 열고 나서야 본격적인 보도가 시작됐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만 하는 젊은 청년들이 지금도 희생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언론은 부동산 문제에나 ‘청년’을 들먹이고 있다. 20대 청년들 역시 투기 수요가 몰려 가격이 오르고 있는 수도권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게끔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식이다. 한국 언론은 투기 목적의 대출을 받을 능력이 있는 청년은 걱정하면서, 마땅히 누려야 할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며 일해야 하는 청년은 외면하는 것이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언론은 소외된 약자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떻게든 인건비를 아끼려 직원을 더 고용하는 대신 한 사람에게 아우슈비츠의 노동시간에 맞먹는 주 95시간 노동을 시키는 이용자의 목소리에 집중해선 안된다. 그 대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각종 규제가 무시되는 위험한 현장에서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혹자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거나,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언론은 적극적으로 노동자와 약자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노동자와 기업이 동등한 지위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기업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언론인이 노동 시장과 노동 환경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죽음으로부터 비정치적이고 순수한 무언가를 찾으려 해선 안된다. 케네디의 발언을 인용하며 글을 맺겠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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