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계 모임에서 만난 김선우 작가는 의외의 깊이를 지닌 예술가였다. 처음에는 도도새를 소재로 '꿈의 실현'이라는 대중적 메시지를 전하는 젊은 작가라는 정보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며 마주한 그의 진정성과 겸허한 태도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의 사유 속에 나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었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희미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도새를 그려오면서도, 저는 여전히 작가로서의 여정이 초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감상자였던 시절, 한 주제에 오랫동안 천착하는 작가들을 보며 의문을 품곤 했습니다. "왜 계속 같은 주제일까? 언제쯤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반복 속에서 새로운 변주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더 큰 도전이며, 이러한 과정이 예술적 고민의 깊이를 더해간다는 것을.
도도새는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동시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모리셔스 섬에 실재했던 이 신비로운 새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듯, 제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저는 드로잉을 미래의 나에게 주는 창작의 단서입니다. 드로잉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서,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시각화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특히 파리와 도쿄에서의 스튜디오 시절,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낯선 환경이 선사하는 영감을 담아냈습니다. 이 시각적 기록들은 마치 미래의 제게 보내는 창작의 암호와도 같습니다."
글쓰기가 내게는 또 다른 형태의 드로잉일 수 있겠다. 문법과 형식이라는 틀 안에서 사고를 구조화하고, 문자로써 내 생각들을 이 공간에 쏟아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 업業에 대한 회고인 이 공간의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좀 더 다가가는 과정 같기도 하다. 김선우 작가가 말했듯,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차원의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명확하지 않은 이 기록들이 쌓여 언젠가 내 여정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기록들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듯, 이 글들은 미래의 내가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