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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ng Mar 10. 2021

13만 인구의 무인도

존재의 가치

기숙사 로고가 새겨진 무거운 키링이 달린 열쇠로 문을 열면 이 나라에서 주어진 유일하고 온전한 내 사적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나는 이 공간이 마음에 든다. 이 장소는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고, 나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난로를 작동시키면 금방 따뜻해지며, 요가 매트를 깔고도 남을 만큼 넓고, 테라스와 개인 화장실, 그리고 작은 주방도 있다는 점이다. 일 층 다이닝홀에서, 아니 0층 다이닝홀에서 기숙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시끌벅적한 인사를 나누고 방에 들어와, 침대 옆 -원래는 창가에 있었던- 원형 테이블에 달린 네 개의 의자 중 하나에 걸터앉아 노트를 꺼내 어제오늘 일을 생각한다.


인천에서 더니든으로 오는 길, 오클랜드 공항에서 환승해야 했는데, 국내선 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수화물을 찾아 긴 트랙을 걸어 지나야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코로 들어오는 향을 나는 그 나라 고유의 향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의 향은 어릴 적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 낙타 체험장 근처에서나 맡을 수 있었던 풀, 건초, 그리고 동물의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잘 블랜딩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콧속으로 들어와 인지되는 과정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지금까지 경험했던 나라들에 비해선 여러모로 조용하리라 판단했고, 지금 그것을 체감하며 앉아있다.


사람들은 친절했다. 어제와 오늘 만난 사람들은 내가 새로운 곳에 처음 발 디딘 사람이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자에게 못되게 굴거나 심술 맞은 얼굴로 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것은 매너 혹은 예의범절에 관련된 내용이라 도가 지나치지 않는다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그런 매너나 예의를 갖추며 살아가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내가 감사하거나 말거나 할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현재 감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마 저 매너나 예의를 탑재하지 못한, 혹은 배웠지만 지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내 뉴질랜드의 삶에는 아직은 (원컨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감정일 것이다.


현재 기숙사에서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여름방학 중이기 때문이다. 학기는 다음 달 말에 시작하는데, 이곳에 조금 일찍 오기로 한 온 이유는 조용히 혼자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이유인지라 이곳 사람들과 딱히 가깝게, 허물없이, 터놓고 지내고자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개인보다는 무리로 인식되었다. 아직 인간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의 호기심이 드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곳에서의 나의 시간은 고요하고, 당분간은 온전히 내 것이라 예상한다.


무리로 인식되는 사람들은 그들 개인으로서는 내 주관적 기준에서 무가치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객관적 가치와 그들의 주관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 그렇기에 마땅한 예를 갖추고, 필요한 상황에선 베풀고 기꺼이 돕는다. 어떤 사람이 가치가 있어 진다면 그 시점부터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말하는 가치 있음 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높이 평가되는 것들과는 무관하다. 지극히 개인적이다. 사적인 관계에서 나는 나의 부족함이나 원하는 것을 타인의 것으로 채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니까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그것에 대한 탐구가 나의 신념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면, 주저함 없이 경험하기로 한다. 호기심으로 새로운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존재에 대한 본질적 감정이 정해지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나는 존재에 대한 감정과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정을 구분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존재에 대한 감정은 알아감과는 별개로 만남의 시작점부터 정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무리가 아닌 개체로 보이게 되는 순간 생겨나는 듯하다. 최근에 어떤 친구가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요인들을 많이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한 번도 내가 그 친구를 싫어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친구가 가진 것들이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뿐이지 그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 호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가진 싫은 요인이, 인간관계의 기본적 존중을 해하지 않고, 피해의 선을 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내 삶에 없는 존재로 분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그 친구가 궁금해진다. 더니든의 인구는 13만에 가깝지만, 아직은 나에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와 같다라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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