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기록적인 폭우 속 무사히 귀국하라

by 교교

가족들과 후쿠오카, 기타큐슈 여행을 했다. 여행 셋째 날부터 비가 슬슬 오기 시작하더니 돌아오는 날까지 계속 비가 왔다. 비는 여행을 더 운치 있게 하기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소소한 푸념의 수준이 아니었다. 귀국하는 날 규슈 지역에 300만 명이 대피권고를 받는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우리는 기타큐슈 고쿠라에서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로 넘어갈 예정이었는데 악천후로 열차가 운행을 중단해 버렸다.


현재 시각 오후 2:30분 비행기 시간은 7:20분이니 우리에겐 수속 마감까지 4시간 가량의 시간이 있었다. 어떻게든 공항까지 넘어가기에는 충분한 생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한국인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신칸센이 아닌 JR노선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곳으로 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직원에게 물으니 신칸센은 다시 운행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번호표를 기다리며 지켜보니 이곳은 새로운 티켓을 끊기 위한 줄이 분명 아닌 것 같았다. 말은 정확히 안 통하지만, 눈치상 JR노선도 모두 중단된 상황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무력감을 느낄 때 아내가 "인포메이션 센터를 가보는 건 어때?"하고 말했다. 그래서 아내는 번호표를 기다리고, 나는 센터로 향했다. 다행히 한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는 일본이 계셨고,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후쿠오카 텐진으로 1시간 30분이 걸리는 고속버스가 있다고 했다. 신칸센을 타면 15분 만에 가는 거리를 1시간 30분이라니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공항까지 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고속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다른 방법도 딱히 없었다.


고속버스 정류장을 찾는 일 또한 쉽지 않았지만, 빗 속을 뚫고 후쿠오카로 향하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은 버스에 간신히 탑승했고, 다들 후쿠오카로 돌아가야 하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인지라 줄 잘 지키지 않는다며 탑승할 때에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고속버스 탑승시간 3:11분. 원래라면 제시간에 도착하기에 충분했지만 폭우와, 천둥, 번개 등으로 버스의 속도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느렸고, 느긋하고 친절한 버스 기사님은 정류장에 정거할 때마다 "죄송합니다. 버스가 만원이라 탑승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직접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한국이었다면, 정류장에 정차하지 않은 채 쌩 하고 가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이 좋은 것인지 좋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만은 불리하게 작용하는 친절이었다.


기타큐슈를 빠져나가는 동안 정류장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직 고속도로 IC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시계는 5:10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 종점인 텐진 고속버스 정류장을 구글맵으로 찍어보니 50분이 남았다고 나온다. 중간중간 정류장을 거치고 시내에서 정체가 되면 6시가 훌쩍 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수속 마감인 1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거 안 되겠구나. 아내와 아이에게는 나중에 말해야겠다.'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도 당연히 구글맵으로 시간을 찍어보고서는 일단 무조건 공항으로 가서 사정을 말해보자고 한다. 정말 이럴 땐 나보다 더 용감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IC에 진입하자 기사님께서 과속으로 시속 80킬로(?)까지 밟아주었고, 시내까지 들어가지 않고 조금 더 일찍 내리는 판단을 내린 뒤, 운 좋게 바로 택시를 잡아 우리는 수속 마감 10분 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속을 마치자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가족여행은 즐겁고 편안한 규슈 체험기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뚫고 귀국한 이야기로 바뀌었는데, <편안함의 습격>의 저자 마이클 이스터는 이러한 경험이 죽지만 않는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나의 상황에 적용해 본다면 첫째, 열차 대신 고속버스로 대체경로 찾기를 하면서 불편함 속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둘째,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와도 이전에 해냈었다는 경험을 떠올리며 덜 불안하고 대처전략이 빨리 떠오르게 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초등학생 아들이 고속버스 안에서 2시간 이상 화장실을 참을 수 있다는 성공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불편함이 꼭 불행함은 아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불편들은 나를 더 유연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렇지만 앞으로 귀국 전날에는 무조건 공항과 가까운 숙소를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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