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어둠이 내려앉은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이륙하기 전 여러 겹 껴입고도 온종일 으슬으슬 춥다 느꼈던 옷이, 내려서 나오자마자 답답하게 느껴졌다. 스타킹과 그 위에 덧신은 양말을 훌렁. 걸쳤던 남방도 훌렁. 30도의 변화를 몸이 바로 알아채는 듯했다. 겨울을 벗어나 여름으로, 따뜻한 이국으로 온 것이 새삼 실감 났다.
왠지 모르게 낯선 냄새가 나는 공항을 벗어나 공항 택시가 오가는 게이트로 갔다. 공항 택시는 번호순으로 탈 수 있어서 눈치껏 번호표를 받아 들고 기다리는데, 오는 택시의 차종이 저마다 달랐다. 차들의 크기와 모양이 너무나 들쑥날쑥해서 다음 차가 올 때마다 ‘지금 오는 저 차가 택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덕에 크고 안락한 밴을 타고 숙소로 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이제 막 도착한 나에겐 사소한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그 시스템이 조금씩 달라 처음에는 헤매기 쉬운데, 그래서 하나씩 시도해보는 것이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숙소를 나서서 쌀국수로 요기하고 난 후, 썽태우 타기에 도전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치앙마이에서는 썽태우가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썽태우는 택시와 버스를 섞은 듯한 교통수단인데,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썽태우를 잡아 세운 후 목적지를 말해서 기사 아저씨가 가는 방향과 맞으면 탈 수 있다.
얼마에 갈지 가격 흥정도 해야 하고, 가는 길이 아니면 거절당할 수도 있다. 흥정이 성사되어 타고 가다 보면 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도 태워서 각자의 목적지까지 실어다 주었다. 승객들이 타는 공간은 여닫는 문이 따로 없이 열려 있어서 뒤따라오는 오토바이 운전자들과 종종 눈이 마주쳤다.
(최근 4월부터 버스 운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쉽게 썽태우 타기에 성공했고, 무선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통신사가 있는 쇼핑몰로 갔다. 유심을 구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트래블러스 심(Traveller's Sim)’이라고 해서 여행자들을 위한 상품을,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이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자, 내 손 안에는 지도가 생겼다.
지도와 함께 길을 잃을 걱정을 덜어내고, 미리 봐 둔 동네 쪽에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월 단위로 단기계약이 가능한 집들이 많아 집을 빌리기 비교적 쉬운 편이어서 가서 구하기로 했던 것. 적당히 덥고 지내기 좋은 건기는 성수기여서 방이 많지 않았지만, 며칠의 발품으로 한 달 동안 지낼 집을 구했다. 그제야 치앙마이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미리 생각해 둔 동네보다 아늑하고 나무가 울창한 동네에 자리를 잡기로 정하고, 잠시 머물던 숙소를 떠나 한 달 동안 머물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라고 해봐야 노트북이 든 백팩 하나와 캐리어 하나. 그동안 겪어온 이사에 비해 꽤나 단출하였다.
새로 이사한 방은 내 키의 5배쯤 되는 크고 울창한 나무가 창 밖으로 보였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방에 놓인 두 개의 싱글 침대를 붙여 하나의 큰 침대로 만들고, 캐리어에 담긴 옷들을 꺼내어 붙박이장에 걸었다. 가져온 모든 옷을 다 걸고도 옷 사이로 바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듯 보였다.
새로운 곳의 길을 익히고, 익숙하지 않은 교통편을 이용해 보고, 필요한 것을 사고. 사소한 도전들을 염려했던 것에 비해 순조롭게 해냈다. 사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는 과정은 여느 여행과 다르지 않지만, 얼마간 살아보는 여행을 택한 노마드에게는 둥지를 마련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다만, 아주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