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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Jun 28. 2023

일기와 편지를 쓰다 자라난 마음들에 관하여.

쓰기에 관한 쓰기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일기장들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한 장 한 장 찢었어요. 1년도 넘게 쓴 일기들이니 분량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한 장 한 장 잘게잘게 찢다가, 점점 힘들어져서 대충 한두번 북북 뜯어내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했습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커다란 통에 넣고 불태우는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실행할 수 있는 장소와 도구가 떠오르진 않았습니다. 그럴만한 용기도 없었구요. 동네에 있는 쓰레기통을 여기 저기 찾아다녔어요. 어디 한 곳에 버리면 안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서울 강동구에 있는 쓰레기통 여기, 저기에 내 일기들은 버려졌습니다.  

   

나는 내 일기가 부끄럽고, 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춘기 아이였어요. 내가 일기장에 적은 내 고민과 생각들이 너무나 유치하고, 촌스럽고, 신파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못할 비밀 일기들이었지만, 그 일기를 가장 보면 안되는 사람은 나 자신인 것만 같았어요. 그렇지만 일기장을 버리고 난 뒤, 나는 일기쓰는 것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새 일기장을 사서, 다시 또 일기를 썼습니다. 내 생각과 내 마음을, 어디엔가 적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처럼.     


***

친구들에게 가끔 편지나 쪽지를 썼습니다. 내 생각이 말로 나와버리면 무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만 같은 기분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술자리나 카페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허공에 사라지지만, 편지로 전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깝거나 그리운 누군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전화를 걸거나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것보다는 한밤중에 일어나 이메일을 쓰곤 했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써놓고 보내지 않은 편지들도 꽤 많았습니다. 한밤중에 적어내려간 내 마음을 담은 글을 다음 날 아침에 읽어보면 확, 깰때가 있잖아요. 내 글이 그렇게 부끄럽고 민망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 어딘가에 숨겨놓기 바빴습니다.


그래도 편지로 대화를 길게 주고받았던 인연도 있었고, 결국 내 마음을 알리지 못하고 보내지 못한 편지만 남은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 떠올려보니, 아무래도 내게 중요한 사람들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

언제나 그렇게, 나는 내 글이 늘 조금은 못생기고 구겨진 것만 같습니다. 예쁘게 치장을 해주고 싶기도 하고, 수려한 문장을 적고 싶은 욕심도 많은데 언제나 내 글은 나를 닮아 불안정하고 어색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내 글이 부끄럽고, 감추거나 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사람은 자신없는 일, 곤란한 기분을 주는 일은 피하며 살기 마련인데 못생기고 구겨진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자꾸 버리고 싶어하면서도 나는 매일 새 글을 썼습니다. 답답하거나 서러울 때, 외롭고 힘들 때 나는 어딘가에 내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야만 했습니다. 작은 수첩, 일기장, 편지지, 블로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이메일, 핸드폰 속 메모장 까지...  


가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갑자기 떠나게 되면 내 방 서랍장 속 수첩들과, 일기장과, 온라인 상에서 우주미아처럼 떠돌게 될지도 모르는 내 부끄러운 글들을 다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하고요.   

   

***

내가 쓴 일기가 부끄러워 찢어 버리고, 감상에 젖어 끄적인 편지를 누가볼까 부끄러워 삭제버튼을 누르던 소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언가를 어디엔가 적으며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내 글은 빈틈이 많고 불안정하지만, 나는 글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생각을 정리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설명해줍니다. 


나는 아직도 ‘글’보다 더 좋은 대화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글은 안전하게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상대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 모든 글쓰기에 대한 내 꿈의 출발은 그저 내 마음을 적은 일기와 편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찢어버렸던 일기에도, 보내지 못했던 편지에도 무언가 마음의 조각들이 묻어있었겠지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완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적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적는 것은 참으로 원대한 꿈인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살아온 내내 내 마음을 글로 옮겨적는 일을 해온 사람이니까, 그래서 여전히 나는 글로 대화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일기장을 버리고 나서도 금새 새 일기장을 사와서 무언가를 끄적이던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기를 쓰고 편지를 보내던 나는, 오늘도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무언가를 적습니다. 아마 나는 이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 자신을 ‘쓰는 사람’으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매일글쓰기 모임의 뉴스레터에 적은 <쓰기에 관한 쓰기> 글입니다. 

   좋은 기회를 준 매일글쓰기 모임 리더 이틀(@longmami )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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