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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Dec 31. 2023

나의 불완전한 친구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

상담실에 오는 친구들에게 제가 자주 묻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그 친구 이름을 '철수'라고 한다면, 이런 질문이예요.   
  
"철수야. (손가락으로 철수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철수가 앉아있어. 그래, 바로 철수 너야. 옆을 한번 볼래? 철수가 여기 있는거야. 알겠지? 
자, 너는 철수가 네곁에 있다면 친구 해줄거니? 걔가 어때보여?"  

   
이 질문은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탐구해볼수있는 좋은 주제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한조각을 찾아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질문을 저에게 던져볼까합니다. ‘이나영이라는 친구’를,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Strolling along the Seashore" by Joaquín Sorolla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어제도 사람들이 잔뜩 모인 회식자리에 끼어 있는 너를 봤어. 누군가의 싱거운 농담에도 너무 잘 웃어준다고, 주변의 누군가가 너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지. 이야기를 듣고, 끄덕여주고, 웃어주는 너를 붙잡고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라. 그렇지만 정작 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네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아. 말을 많이 한 날은 집에 가서 후회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었지?      


너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사회적 겉모습만, 혹은 너의 일부만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 예전에는 사람을 궁금해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너를 보여주는 일을 흥미로워했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런 걸 부질없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여.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너는 외로움도 많이 타잖아.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낄 땐 한없이 혼자 있고 싶어했다가도, 마음 기댈 곳이 없어 헛헛해하는 두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     


너는 언제나 조금은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지. 그래서 그런 너 자신을 채워보려고, 달라지려고, 조금은 더 안정된 사람이 되려고... 그런 노력이 아마도 평생 네가 살아온 방식이었던 것 같아. 그러느라 참 열심히 살았지? 나는 알아, 네가 너 자신을 채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네 삶의 목표같은 것이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한편으론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고, 있는 그대로의 너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말해주지 못한 게 안타까워. 그렇게 너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텅 빈 부분은 채우고, 흔들리는 부분은 잘 세우려고 애쓰는 너를 보기만 했던 것 같아.  

    

미안해. 

너라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괜찮은 편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지 못해서.  

   

나는 가끔 네가 마음에 안들었어. 너무나 잘 흔들리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일단 원하는건 저질러버린 다음에 후회를 잔뜩하는 네가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많았거든. 계획적이고 분석적인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부러워하면서도, 결국엔 마음이 가는 곳, 너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면 지나치지 못하는 너를 너무나 잘 알아. 그런 네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음 깊은 곳에선 그런 너를 좋아했는지도 몰라. 가끔은 실수하는 네가, 감정적이어서 마음 가는대로 해버리는 네가, 스스로를 자꾸만 자꾸만 돌아보며 보기 싫은 모습일까봐 걱정하는 네가... 안쓰러울 때도 있고 도닥여주고 싶은 날도 많았던 것 같아.     


너를, 나의 친구로 삼고 싶은 이유는 사실 네가 특별하다거나 완벽해서는 절대 아닐 거야. 비를 좋아하고 스누피를 좋아한다고 외치는, 나이만 많고 철없는 네가 재미있어. 사람들 앞에서 속으로는 투덜투덜하면서도 친절하게 말할 줄 아는 너의 가식이 가끔은 마음에 들기도 해. 그러면서도 진짜 싫은 상황이나 사람 앞에서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솔직한 너도 괜찮은 것 같아.     


가끔 너는 별로지만 가끔은 꽤 괜찮을 때도 있는 사람이야. 내가 언제나 너를 한결같이 좋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친구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아. 너를 좀 더 든든하게 믿어주지 못한 것은 미안해.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리가 커지고 있는 것 같아. 그건 참 다행인 것 같다.     


모든 순간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가끔씩 부는 바람처럼 괜찮을 때가 있는 너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보려고 해. 


나의 불완전하지만 다정한 친구야.

너의 모든 순간과 모든 선택를 위해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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